세 번째 남자-3

by Siesta



집에 있는 유선 전화가 다였던 이 시기에 전화요금 많이 나올까 봐 간단하게 용건만 말하던 그 시절 이 학생이 나에게 자신의 마음을 전하는 일은 편지였다.


마치 요즘 톡을 보내는 것처럼 종이에 자신의 하루의 일과나 나에게 하고 싶은 말들을 종이에 써서 내게 보내는 것이 이 학생의 일과처럼 되었다.


나도 가끔 답장을 썼다.


슬로 커뮤니케이션의 장점은 마음의 생각을 숙성시킬 수 있어서 더욱 깊은 관계를 유지해 나갈 수 있는 것 같다.


하루는 이 학생이 나에게 같이 영화를 보러 가자고 했다.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여배우 줄리아 로봇이 새로 만든 영화 프리티 워맨을 보자고 했다.


그 당시 대 히트를 치던 영화였다.


나는 원래 사랑이야기 할리우드 영화를 정말 좋아하지 않지만 이 학생이 삼촌에게 받았다는 영화티켓이 마침 있다고 해서 나는 이 영화를 보러 같이 갔다.



1980년대 1990년대의 남녀관계에 대한 사랑이야기를 다룬 할리우드 영화는 내겐 마치 외계인들을 보는 것과 다르지 않게 느껴지곤 했었다.


프리티 워맨의 영화를 보면서 나는 도대체 여성의 성 정체성을 아무도 이해하지 못하는 이 무서운 세상에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나의 존재와 정체성을 찾으면서 사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을 더더욱 느꼈다.


특히 아직도 군사정권이 있고 이단종교들과 잘못된 유교적 관습등으로 여성이란

성 자체가 "죄" 인 것처럼 취급되는 사회 분위기 안에서 결혼과 출산 그리고 진정으로 마음에 맞는 남자를 만나서 가정을 이루는 것은 외계에서나 가능한 것 같이 느껴졌다.


나의 부모님들은 시대와 관습 그리고 윤리와 전통마저도 절대적 삶의 기준이 아닐 수 있다는 생각을 우리에게 심어준 예술가 부부였다.


그래서 나의 진정한 사랑과 삶의 의미는 보통 그때 사람들과 다를 수밖에 없었던 것 같다.


자본주의가 빠르게 발달하고 있던 대한민국의 1980년대 1990년대...


그리고 미국의 자본주의 원리에 의한 사랑이 대 히트를 치는 할리우드의 영화들이 대중들에게 다가왔던 이 시기...



아름다운 여인에 대한 사회의 생각이 이런 것들이라면...


사회가 여성에게 해 줄 수 있는 것이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엄청 부자 만나서 예쁜 옷 예쁜 보석 그리고 피아노 위에 앉아서 긴 다리를 쫙 벌리고 정사를 하는 장면에 사람들이 특히 여지들이 찬사를 보내며


"나도 저런 행운을 가질 수 있을까... 돈 엄청 많은 남자 만나서 예쁘게 단장하고 멋진 성관계를 가진다면 나는 예쁘고 행복한 여자가 될 수 있겠지... "


라는 환상에 빠져 이 세상을 산다면 사회가 어떤 벼랑으로 떨어질 것인가 그리고 여성의 권리가 어떻게 될 것인가 생각만 해도 아찔했다.


1960년대 1970년대 머저리 같은 두뇌가 없는 여자, 몸만 있는 여자들을 다룬 영화들 마릴린 몬로 같은 말도 안 되는 여성상에 이어 1980년대 1990년대에도 여성은 부자들을 위해 열심히 긴 다리를 쫙 벌리고 정사를 해서 ( 이 장면이 이 영화에서 가장 유명한 장면 그리고 가장 아름다운 장면으로 묘사되곤 했다) 그 남자의 돈을 마음대로 쓸 수 있게 되는 것이 예쁜 여자라는 이 영화에 나는 정말 많은 상처를 받았다.


영화를 보고 나오면서 나는 좋지 않은 기분을 숨길 수가 없었다.


이 의대생은 나를 보면서 물었다.


" 재미없었어? 난 줄리아 로봇 몸 더 볼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아무것도 안 보여서 좀 시시했지만... 그래도 볼만 하지 않았어? "


" 차라리 포르노 영화 보는 게 더 적게 수치심이 들 것 같아요. 정말 너무 창피하네요... 이런 생각을 가진 여성들이 정말 존재한다면..."


나의 대답에 이 의대생은 놀란 눈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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