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당신은 혼자가 아니에요."

-장리석, <오후의 뜰>

by 조용진


그 이야기를 들었을 때, 나는 서른을 훌쩍 넘은 나이였다.


그 지독한 술 사랑

아버지는 ‘술꾼’이었다. 언제부터인지 모르지만, 내가 어릴 적부터 아버지는 하루도 거르지 않고 매일 술을 마셨다. 그것도 약주 몇 잔이 아닌 폭음을 하고 집에 들어오셨다. 매일 아침, 아버지의 요란한 토악질 소리에 잠을 깨곤 했다. 잠이 덜 깬 나는 ‘도대체 저렇게까지 몸을 해쳐 가면서 술을 마시는 이유는 뭘까?’ 하는 의문으로 사춘기를 보내고 성인이 되었다.

식구들에게는 더할 나위 없이 다정한 아버지였기에 우리말에 귀를 기울여 주시리라 믿고 만류도 하고 협박도 해보았다. 그러나 매일 아침 아버지의 구역질은 그칠 줄을 몰랐다. 주인을 잘못 만난 아버지의 몸이 견디지 못하고 큰 병을 얻게 된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심장에 울혈이 맺혀 몇 번이나 사망의 골짜기 근처에 다녀왔지만, 아버지는 술잔을 놓지 않으셨다. 왜 그러셨을까?


아버지 장례식에 아버지보다 열 살 많은 아버지의 외삼촌이 조문을 오셨다. 인사를 하고 마주 앉은 나에게 오래전 아버지가 겪은 이야기를 해주셨다.

“네 애비 승관이가 아홉 살 무렵이었을 거야. 점심때쯤 누이집에 가보니 아무도 없고 승관이만 방에 누워 있는 게야. 애가 아픈지 축 쳐져서 일어서지도 못하더라고…”

그렇게 시작된 이야기는 충격적이었다.


아버지 폭음의 비밀

아버지의 고향은 개성이었다. 해방이 되고, 사는 곳에 공산당이 들어온다는 소문을 들은 할아버지는 홀로 38선을 넘으셨다. 남쪽으로 가서 식구들이 살 집을 알아보기 위해서였다. 얼마 후, 기별을 받은 할머니는 네 아들과 함께 남편이 기다리는 서울 효창동으로 가기로 했다. 하지만 큰아들(내 아버지)이 문제였다. 며칠 전부터 시름시름 앓더니, 서는 것조차 힘들어했기 때문이다. 바리바리 싼 이삿짐과 어린 아들 넷을 데리고 가는 것도 큰 일인데, 걸어가야 하는 험한 길에서 꼭 아들의 죽음을 볼 것만 같았다. 고민 끝에 할머니는 악수(惡手)를 둔다. 큰아들을 집에 남겨둔 채 서울로 향했다.

집 근처에는 할머니 친정이 있었다. 누나가 서울로 잘 떠났나 살펴보러 온 할머니의 남동생이 방에서 다 죽어가는 어린 조카를 발견했다. 가만 두었다가는 큰일이 날 것만 같았다. 당시 열아홉 살 청년이었던 아버지의 외삼촌은 열이 펄펄 끓어 몸이 불덩이 같은 조카를 등에 업었다. 그리고 서울로 걸음을 재촉했다.

며칠을 걸려 효창동 누나 집에 도착했다. 조카를 업고 험한 길을 달려온 외삼촌은 마침내 땀에 젖어 축축해진 등에서 조카를 내려놓을 수 있게 되었다. 혈기 왕성한 젊은 청년은 한참 나이가 많은 누나에게 핏대가 서도록 화를 내며 고함을 질렀다. 그의 분노는 담을 넘어 온 동네 사람들이 들을 정도로 쩌렁쩌렁 울렸다.

“네가 그러고도 사람이야?”


아버지는 버림받았던 것이다. 그것도 제일 믿었던 어머니에게서.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한참 후, 바로 몇 년 전에 안 일이지만 할머니는 계모였다. 아버지의 친모는 아버지를 낳다가 돌아가셨다고 한다. 아버지를 업고 온 외삼촌(우리에게는 은인인)도 따지고 보면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완전 남’이었다.

이 사실을, 아버지는 알고 세상을 떠나신 건지 알 수는 없지만, 버림받았다는 충격과 배신의 상처는 아홉 살 이후 아버지의 삶을 마구 흔들어 놓았다. 가슴 저미도록 아픈 아버지의 상처는 반대로 나와 동생에게 폭포수 같은 사랑으로 쏟아졌다.

아버지는 평생 혼자가 된 듯, 사랑에 목말라하셨다.


잠든 소년과 아홉 살 아버지

한 달 전, 제주도의 한 미술관에서 아홉 살 내 아버지를 만났다.

뜰에 놓인 평상에 어린 소년이 잠들어 있다. 소년의 등 뒤로 한여름의 빛을 받아 푸릇푸릇한 화초들이 보인다. 아담한 꽃과 풀들은 잘 정리된 화단에서 옹기종이 모에 있다. 화단 옆에는 봄에 담가두었을 장을 품고 있는 독이 보인다. 소년이 누운 곳은 넓지 않아 평상이라기보다는 긴 의자에 가깝다. 두 팔을 벌리고 편하게 눕지도 못하고 웅크린 채 쪽잠을 자고 있는 소년. 멀리 보이는 방 앞 댓돌에는 신발 한 켤레 없이 휑하다. 집에는 소년 혼자만 남겨진 듯하다. 모로 누운 아이의 모습이 측은하다.

소년의 옆에는 먹다 남은 포도송이가 놓여 있다. 집을 나간 식구들을 기다리던 소년은 지루해서 포도를 먹다가 잠이 든 모양이다. 소년의 얼굴에 긴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다.

지극히 고요하고 평화로운 풍경이다. 하지만, 내 눈에는 식구들이 떠난 것도 모르고 잠들어 있는 한없이 가여운 내 아버지로 보인다. 소년의 얼굴에 깃든 그림자에는 아홉 살 이후 겪어야 할 아버지의 한과 슬픔이 복선처럼 깔려있다.


KakaoTalk_Photo_2024-11-22-12-06-54.jpeg 장리석, <오루의 뜰> .1968. 97x145.5cm. 캔버스에 유채. 제주 도립미술관 소장.



북에 두고 온 아들과 화가

이 그림은 ‘서민의 애환을 좇는 시대적 증인’이라고 평가되고 있는 화가 장리석(1916~2019)의 작품 <오후의 뜰>이다. 화가는 100년이 넘는 세월을 살면서 자신이 보고 겪은 시대와 서민들의 일상 풍경을 화폭에 담았다.

1916년 평양에서 태어나, 어린 나이에 부모를 잃었다. 네 살 터울의 형과 외가에서 외롭게 자랐지만 일찍부터 그림에 대한 재능을 보였다. 1942년, 26세의 나이에 조선미술전람회에 출품한 작품이 입선하면서 ‘시대의 그림쟁이’로 입지를 다진다.

하지만 굴곡진 시대는 화가를 곱게 두지 않았다. 해방이 되고, 그가 사는 곳을 사회주의가 점령하면서 인생은 굴절되기 시작했다. 1950년, 당의 명령에 의해 금강산 호텔에 벽화를 그리던 그는 북진해 오는 국군에 편입된다. 국군 해군사령부 소속 종군화가로, 반공 포스터 등을 그리며 화가가 ‘할 수 있는 일’을 한다.

이듬해 1월 4일, 압록강으로 중공군이 밀고 들어오자 그는 퇴각하는 국군 트럭에 실려 부산을 거쳐 제주도로 보내진다. 이때 아내와 생때같은 자식들과 이별한다. 이후로 그는 가족의 얼굴을 볼 수 없었다. 남쪽에 살면서 두 차례 결혼을 하지만 화가는 북에 두고 온, 생사를 모르는 남매 외에 ‘살붙이’를 두지 않았다.

당시 제주에는 피난 온 화가들이 많았다. 고향을 잃은 화가는 이곳을 ‘제2의 고향’ 삼아 화가로서의 삶을 다시 시작했다. 전쟁이 끝난 이듬해에는, 새 가정을 꾸리고 서울로 이주하여 대학에서 후학을 양성하며 작업을 계속했다.

평소 위트가 넘치고 쾌활한 성격으로 주변 사람들을 환하게 밝혀준 화가였지만 내면에는 불안과 연민 그리고 고독이 자리 잡고 있었다. 가족의 이별과 월남화가로 살아온 고단했던 삶은 그림에 그대로 투영되었다.


1968년 작품인 <오후의 뜰>도 북에 두고 온 아들을 가까이 두고 싶은 마음에 붓을 든 작품으로 보인다. 해가 뉘엿뉘엿 지는 뜰에 잠자고 있는 소년은 보고 싶은 아들을 그림 속에 영원히 살게 하고픈 화가의 염원일지도 모른다. 잠든 아이 옆에 놓인 포도송이는 아들의 건강과 안녕을 기원하는 아버지의 기도문이다. 화가는 가혹한 운명으로 고향을 떠나왔을 때의 아들의 모습을 애써 더듬어가며 캔버스에 담아냈을 것이다. 아들을 그리워하는 애절함과 미안함 그리고 눈물겨운 부정이 그대로 녹아있다.


'아버지는 혼자가 아니에요'

미술관 폐관시간이 다 되었다. 이제는 아홉 살 내 아버지 곁을 떠나야 할 시간이다. 아버지를 홀로 두고 가는 것 같아 발길이 떨어지지 않았다. 그림자가 드리운 소년의 얼굴을 축축한 눈빛으로 쓰다듬었다. 가까이 다가가서 아홉 살 소년인 아버지에게 아주 조용히 속삭였다.

“아버지, 당신은 혼자가 아니에요. 영원히 당신 곁에 제가 있어요. 아버지의 큰 사랑으로 큰딸은 오늘도 잘 버티며 살고 있어요. 사랑해요. 아버지!”




<함께 듣는 곡>

You are not alone ㅡ마이클 잭슨 노래 (R. Kelly 작곡, 작사)



또 하루가 지나갔어요. 저는 여전히 혼자예요.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나요? 당신은 이제 여기 없어요.

당신은 안녕이라고 말하지도 않았어요.

누군가 내게 그 이유를 말해 줘 봐요.

당신은 그렇게 날 떠나야만 했나요,

이렇게 차가운 곳에 날 남겨둔 채로.

매일 나는 앉아서 스스로에게 물어봐요.

어떻게 사랑이 그렇게 사라져 버렸는지

무언가 내 귀에 대고 속삭이며 말하네요.

“넌 혼자가 아니야, 난 너와 함께 있어"라고 말이에요.



비록 우리가 멀리 떨어져 있지만

당신은 항상 제 맘속에 있으니 당신은 혼자가 아니에요.

어느 날 밤이었어요 당신의 울음소리를 들은 것 같았죠.

와서 당신을 안아달라고 부탁하는 듯한

난 당신의 기도를 들을 수 있어요. 당신의 짐을 제가 지겠어요.

하지만 우선 당신의 손을 잡고 싶어요

그러면 영원히 시작할 수 있어요.

나는 매일 앉아서 스스로에게 묻죠

어떻게 사랑이 그렇게 조용히 가 버릴 수 있는지를

무언가 내 귀에 대고 속삭여요

“당신은 혼자가 아니에요 내가 여기에 당신과 함께 있어.”라고 말이에요.


가사 한 줄 한 줄, 감성을 어루만지는 따스한 발라드 곡이지만, 제 귀에는 두 명의 마이클 잭슨이 부르고 있는 듯합니다. 첫 소절은 세상천지에 홀로 떨어진 것 같은, 이제는 기꺼이 내 편이 되어주는 ‘비빌 언덕’을 잃어버린 슬픔에 잠긴 아홉 살 아버지의 노래. 그리고 다음 소절은 비록 몸은 떨어져 있지만 마음만은 영원히 아버지 곁에 머물겠다는 나의 고백으로 다가옵니다.

얼어붙은 마음을 녹여주는 마이클 잭슨의 부드러운 위로는 작은 불씨가 되어 마법처럼 마음을 밝혀줍니다. 서정적인 멜로디를 좇아, 허밍으로 아버지의 상처받은 마음을 다독이며 노래합니다.


https://youtu.be/pAyKJAtDNCw?si=j9FLh1o-VMOLltO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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