ㅡ빈센트 반 고흐의 <감자 먹는 사람들>
“이거 하나 더 먹으라우, 뜨끈할 때 먹어야디, 식으면 맛없쪄!”
낮고 차분한 목소리, 할머니표 이북 사투리에는 늘 따스함이 배어 있었다. 할머니는 냄비에서 갓 쪄낸 감자를 접시에 담으셨다. 감자를 가득 담아 주시는 손끝에는 뜨거운 김이 맺혀 있었다. 뽀얀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감자는 할머니 사랑만큼이나 큼직했다.
나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비릿하고 기분 나쁜 냄새, 거기에 목 넘김이 껄끄럽고 퍽퍽한 식감까지! 도저히 입에 넣을 수 없었다. “싫어! 나 이거 안 먹을래.” 투덜거리며 젓가락을 내려놓았다. 할머니는 아랑곳하지 않고 내 앞에 감자를 조심스럽게 밀어 놓으셨다. 하지만 손주 사랑이 뚝뚝 떨어지는 그녀의 눈빛은 너무도 간절하고 따뜻했다. 결국, 내가 졌다. 열 살 나이에 어울리지 않게 땅이 꺼질 듯한 한숨을 쉬며 숟가락을 들었다. 그리고 끔찍하게 ‘맛대가리’ 없는 감자를 꾸역꾸역 삼키듯 입에 넣었다. 할머니는 ‘옳티! 옳티!’ 하시며, 감자가 든 접시를 더 가까이 밀어주셨다. 당신이 내민 음식이 손주 입으로 들어가는 걸 바라보던 그녀의 얼굴은 환하게 빛이 났다. 그릇을 싹 비워내면, 어깨춤이라도 추실 기세였다. 할머니의 사랑을 온몸으로 받던 그 시간들, ‘니맛도 내 맛도 아닌’ 맛없는 감자를 억지로 먹던 그때가 요즘 따라 유독 그립다.
그 따뜻한 감자 내음이 불쑥 되살아난 것은 작년의 일이었다.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반 고흐 미술관에서 <감자 먹는 사람들>을 마주한 순간, 잊고 살았던 구수한 향기와 그리운 할머니의 손길이 은근히 피어올랐다.
그림은 생각보다 훨씬 어두웠다. 검게 내려앉은 땅거미가 창밖을 두드리는 시간은 저녁 7시. (그림의 왼쪽 벽에 그려진 시계가 시간을 알려주고 있다! ) 어두컴컴한 방 안에는 변변한 가구라고는 찾아보기 힘들다. 소박한 사각의 식탁에 가족들이 둘러앉아 있다.
식탁 위에 걸린 희미한 램프가 그들의 일용할 양식을 간신히 비춘다.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감자, 그리고 감자의 퍽퍽한 식감을 달래줄 따뜻한 차 한 잔. 그 외에 다른 음식은 보이지 않는다. 누구보다 이른 아침부터 흙을 일구며 고된 하루를 보냈을 그들의 식탁엔, 마른 빵 한 조각조차 놓여 있지 않다. 서로 마주 보며 감자와 차를 건네는 가족의 모습. 지금 이 거친 음식은 감사의 성찬이고 만찬이다.
그들의 남루한 옷차림, 주름진 얼굴, 툭 튀어나온 광대뼈엔 피곤이 스며 있다. 땅을 일궈 생계를 이어가는 그들의 눈망울은, 소처럼 맑고 순하다. 인물들의 표정을 자세히 살피려 캔버스 가까이 다가갔다.
그림의 왼편에는, 모자를 쓴 남자가 손가락으로 감자를 가리키고 있다. 땅에서 캐낸 감자처럼, 고단한 하루의 피로가 손끝에 매달려 있다. 옆에는 흰 두건을 쓴 젊은 여인이 하루 종일 일터에서 고생한 남편을 위해 감자를 뜨고 있다. 내 시선이 감자를 뜨는 젊은 여인의 눈동자에 한참 동안 머물렀다.
그녀의 눈빛에서, 평생 남편의 사랑을 기다려온 내 할머니의 갈망을 보았다. 할머니는 사는 동안 외사랑으로 긴 가슴앓이를 하셨다. 그분의 삶엔, 여자로서의 설렘보다는 인내의 시간이 훨씬 더 길었다. 그렇게 마음을 내주었건만, 할아버지는 좀처럼 다정해지는 법이 없었다. 그래서일까. 가끔 할아버지가 미워질 때가 있다. 할아버지를 향한 원망은 철이 들고 나서 생긴 감정인데도, 묘하게 오래가는 미움이었다.
할머니의 눈빛을 닮은 젊은 여인의 옆자리에는 찻잔을 든 중년의 남자가 앉아 있다. 그는 옆에서 차를 따르는 여인을 자상한 눈빛으로 바라본다. 그리고 식기 전에 어서 마시라는 듯, 여인에게 찻잔을 건네준다. 흰머릿수건을 쓰고 차를 따르는 여인의 주름진 손, 그 손동작이 낯설지 않다. 이 여인의 굵고 마디진 손은 나에게 감자를 건네던 할머니의 손이었다. 늘 뭔가를 건네는 손, 따뜻한 것을 나눠주던 바로 그 손.
그리고 그들의 중심엔 등을 보이고 앉아 있는 작은 아이가 있다. 얼굴은 보이지 않지만, 등불 아래 번지는 감자의 뜨거운 김이 아이의 존재를 부드럽게 감싸 안고 있다. 아이의 실루엣은 어린 시절, 감자를 건네받던 식탁 풍경을 떠올리게 했다. 그것은 따뜻한 김과 구수한 냄새가 피어오르던 내 기억의 한 조각이기도 했다.
이 그림은 빈센트 반 고흐(1853~1890)가 1885년에 네덜란드의 누넨에서 그린 작품이다. 그는 농민들의 삶을 가까이에서 지켜보며, 그들의 고단한 현실과 노동의 흔적을 화폭에 담고자 했다. 실제로 빈센트는 이 그림을 완성하기까지 농민의 손과 얼굴을 수 없이 연습했다. 빈센트는 동생 테오에게 보낸 편지에서 이 그림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비록 실제 그림은 비교적 짧은 시간 안에, 그리고 대부분 기억을 바탕으로 그렸지만, 그동안 머리와 손에 대한 습작을 겨울 내내 그려왔어. 그리고 지금 며칠 동안 그린 이 그림은 정말 힘든 싸움이었지만, 그만큼 큰 열정을 가지고 있어.”
빈센트는 이 작품을 테오의 생일선물로 삼고 싶어 했지만, 아직 덜 익은 그림이라며 아쉬움을 전했다. 그리고 이 그림이 단순한 장면 묘사가 아니라, 살아있는 사람들의 ‘진짜 삶’을 담으려 했다는 이야기도 털어놓았다.
“내가 강조하고 싶은 것은 등잔불 아래에서 감자를 먹는 사람들이 그릇에 대고 있는 바로 그 손이야. 그들의 손은 흙을 일구는 손이고, 그 감자는 자신들의 노동으로 정직하게 얻은 것이지.”
빈센트의 말처럼 그림 속 사람들의 손은 흙과 노동의 의미, 그리고 그들의 땀과 피로를 고스란히 보여 주고 있다. 농민들이 수확한 감자를 나누는 장면은 단순한 저녁식사가 아닌 함께 살아가는 삶의 방식이었다.
나는 그들의 소박한 식탁에서 ‘내 할머니의 손’을 보았다. 감자를 내어주던 투박하지만 다정했던 그 손을... 할머니는 농사를 짓지는 않으셨지만, 다섯 남매를 키우며 삶의 대부분을 부엌에서 보내셨다. 식구들의 끼니를 챙기고, 아이들을 먼저 먹이고, 당신은 마지막에 겨우 자리에 앉는 분이었다. 말수가 많지도 않으셨고, 무엇을 원한다고 드러내지도 않으셨다. 남편의 살가운 말 한마디 없이도 그렇게 할머니는 묵묵히 가족을 돌보셨다.
늘 엄하고 바빴던 엄마 곁보다, 나는 할머니 품이 좋았다. 어린 시절, 방학이 되면 동생과 함께 진주에 있는 외할머니댁으로 가서 개학 즈음에야 집으로 돌아오곤 했다. 헤어질 때면, 할머니는 고속버스터미널에서 우리 자매가 탄 버스가 보이지 않을 때까지, 그 자리에 서서 오래도록 손을 흔드셨다. 천리길 서울까지 오는 시간 동안, 할머니 곁이 너무도 그리워 기운이 다 빠지도록 꺽꺽 울어댔다. 울고 또 울다 지쳐, 기운 없이 멍하니 차창을 바라보았다. 창밖에 떠 있는 흰 구름이 할머니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귓가엔 감자를 건네며 하시던 그 낮은 목소리, “뜨끈할 때 먹어야디…” 하시던 정감 어린 할머니표 사투리가 맴돌았다.
할머니의 ‘하나 더 먹으라우.’는 단순한 권유가 아니었다. 감자 한 조각이라도 더 주고 싶은, 살뜰한 보살핌이었다. 할머니의 감자는 그저 배를 채우는 먹거리가 아니었다. 손끝에 맺혔던 뜨거운 김처럼, 마음 깊은 곳에서 피어오르는 사랑이었다. 그 온기는 단 1밀리미터의 허기조차도 허락하지 않았다.
그녀의 넉넉한 품은 광야에서 불어오는 억센 바람을 버텨내느라, 이제는 너덜너덜해진 나를 말없이 안아준다. 그리고 말랑말랑한 숨결 하나를 슬며시 얹어주곤 한다.
Arvo Pärt 아르보 패르트 – Spiegel im Spiegel (거울 속의 거울)
미술관의 다른 그림을 천천히 돌아보고 다시 고흐의 <감자 먹는 사람들> 앞에 섭니다. 어둡기만 한 그들의 소박한 식탁 위로 하얗게 피어오르는 김을 멍하니 바라봅니다. 그 식탁 한가운데에 아르보 페르트(Arvo Pärt, 1935– )의 Spiegel im Spiegel이 살포시 가라앉습니다.
아르보 페르트. 에스토니아에서 태어난 그는 젊은 시절에는 현대적인 음악을 실험했지만 오랜 침묵 끝에 아주 단순한 세계로 돌아옵니다. 그가 만든 ‘틴티나불리(tintinnabuli)’라는 기법은, 반복되는 아르페지오 위에 단 하나의 선율만을 조용히 얹는 방식이지요. 복잡함을 걷어낸 그의 선율은 마치 새벽에 널리 널리 퍼지는 종소리처럼, 혹은 기도문처럼, 긴 여운을 남깁니다.
그의 음악엔 번뜩이는 장식도 노골적인 위로도 없습니다. 단순하기만 한 현악기와 피아노의 선율은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빈센트의 그림처럼, 우리들의 아스라한 기억을 천천히 데워줍니다. 첼로의 음은 오래된 기억을 조심스레 더듬어 가듯 천천히 흘러갑니다.(원곡은 바이올린과 피아노의 이중주로 작곡되었지만, 첼로 버전으로 소개합니다.)
“도 다음에 레, 레 다음에 미…” 이 지극히 단조로운 첼로의 진행 속엔, 고단한 시간을 꿋꿋이 지나온 우리들의 정직한 인생 여정이 겹쳐 있습니다.
첼로와 함께 걸어가는 피아노의 아르페지오 선율은 피어오르는 감자의 김처럼 은근하게 번져갑니다. 반복되는 그 움직임은 되풀이되는 노동의 리듬입니다. 묵묵히 살아내야 했던 우리에게 익숙한 하루하루이기도 합니다.
두 악기의 멜로디는 빈센트의 그림 속 어두운 방, 둥그렇게 원을 만들어 앉은 가족들, 그들의 주름진 손으로 나를 천천히 이끕니다. 어떠한 기억도 강요하지 않을 것 같았던 선율은 내 눈을 감게 합니다. 그리고 ‘까꿍’ 이라도 하는 듯, 김이 피어오르던 식탁과 감자를 내어 주시던 손을 ‘짜안!’ 하고 보여줍니다. 이제는 볼 수 없는 할머니의 모습을, 마치 거울 속에서 마주하듯 하염없이 바라봅니다. 마술처럼, 첼로의 선율은 “뜨끈할 때 먹어야디…” 하시던 다정하고 익숙한 그 한마디를 슬며시 끌어올립니다. 그 목소리를 다시 들을 수 있다면, 나는 기꺼이 감자 한 접시를 다 비울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뜨거운 감자는 이제 내 손에 들려 있지 않지만, 내 안에 담겨 있는 할머니의 손길은 여전히 폭삭 익은 채로 남아있습니다. 할머니표 이북 사투리가 사무치게 그립습니다. 이제는 들을 수 없지만, 그 말 한마디가 그리워 견딜 수 없는 그런 날들이 있습니다.
https://youtu.be/FZe3mXlnfNc?si=8r2JssHgKcuSSg_z