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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용진 May 30. 2024

7. 그 시절과 우리 자매

존 싱어 사전트, <카네이션, 백합, 백합, 장미>

엄마는 두 딸을 ‘남’과 다르게 키우고 싶어 하셨다. 어릴 때부터 두 살 터울인 동생과 나는 쌍둥이처럼 엄마가 동네 양장점에서 맞춘 옷을 입었다. 딸들에게 꼭 같은 옷을 입히고 외출할 때마다 받는 ‘남들의 시선’은 엄마의 큰 즐거움이었다. 하지만 우리 자매는 행복하지 않았다. 


동생과 나는 학교에서 돌아오면 집에만 있어야 했다. 서울이지만 변두리지역이라 동네 아이들이 촌스럽다며 함께 놀지 못하게 하셨다. 학교도 스쿨버스가 있는, 집에서 먼 사립학교를 보내주셨다. 학교 친구들이랑 놀지 못하는 방학이 너무 싫었다.

가장 견디기 힘든 것은 눈 오는 날이었다. 동네아이들은 눈사람을 만들며 옷이 흠뻑 젖도록 눈싸움을 했다. 하얗게 변한 동네 골목은 아이들이 웃음소리로 활기가 가득했다. 동생과 나는 창문 안에서 그 광경을 조용히 바라볼 뿐이었다. 창밖의 세상은 우리가 꿈꾸지 못하는 ‘별세계’였다. 창문 밖 아이들과 신나게 놀고 싶었지만 감히 나가 놀겠다는 말은 꺼내보지도 못했다. 엄마의 뜻을 거스를 때마다 돌아오는 가혹한 매질은 우리에게 개미 털만한 자유도 허락하지 않았다.


두 자매의 그림


두 자매가 있는 아름다운 그림들을 보면, 마음 한구석으로 애잔하고도 서늘한 바람이 스쳐 지나간다. 가장 아름다운 시절, 맘껏 놀지도 못하고 갇혀 있던 나와 동생이 떠오른다. 

고운 흰 옷을 입은 두 자매가 백합과 꽃들이 가득한 정원에서 등에 불을 밝히고 있다. 초저녁의 어스름한 햇살에 소녀들이 든 등불은 희붐하게 빛을 발한다. 낮의 햇살과 밤이 교차되는 순간은 어느덧 아득해져 버린 어린 시절로 이끈다.

햇빛을 받지 못해 얼굴이 하얀 우리 자매는 천사같이 새하얀 옷을 입고 있다. 카네이션, 백합, 장미가 가득 핀 정원에서 까르륵 대며 맨발로 마음껏 뛰어노는 동생과 나는 이 세상 누구보다도 행복하다.       


   

존 싱어 사전트, <카네이션, 백합, 백합, 장미>, 1885~86, 캔버스에 유채, 174.0x153.0cm, 런던 테이트브리튼 소장



<함께 듣는 곡>

First of May  - Bee Gees



5월,

한참 물오른 연두 나뭇잎은 세상을 훤하게 비추어 줍니다. 아름다운 계절이 짧은 듯하여  5월의 끝자락을 부여잡고 가지 말라고 가지 말라고 애원하고픈 심정입니다.


5월의 첫날 (First of May), 

추억 속  아련한 어린 시절의 크리스마스를 노래한 비지스(Bee Gees).

부드럽고 섬세한 로빈 깁(Robin Gibb)의 목소리는  지나간 시간의 애틋한 감성을 일깨워줍니다.  손을 꼬옥 잡고 그 시절의 따뜻한 기억 속으로 데려갑니다.


비록 나의 어린 시절은  그렇게 아름 답지못했고 가여웠지만 이 노래를 듣고 있으면 어둡기만 했던 그 시간은 눈이 부실만큼 순수한 하얀 옷으로 갈아입습니다.



When I was small, and Christmas trees were tall, 

we used to love while others used to play. 

Don't ask me why, the time has passed us by, 

some one else moved in from far away. 

내가 어렸을 때 크리스마스트리는 내 키보다 컸었지.

다른 친구들이 놀고 있는 동안 우리는 사랑을 하고 있었어요.

나에게 묻지 마세요. 모르는 사이에 그 시절은 우리의 곁을 지나가 버리고.

누군가가 멀리에서 다가왔어요.



Now we are tall, and Christmas trees are small, 

and you don't ask the time of day. 

But you and I, our love will never die, 

but guess who'll cry come first of May. 

이제 우리는 자라서 크리스마스트리를 내려다보게 되고.

당신은 그 시절을 얘기하지 않는군요.

그러나 당신과 나 우리의 사랑은 결코 잊어지지 않을 거예요.

5월의 첫날이 오면 우리는 울게 될 것 같아요!



삶은 선물이라고 합니다. 나이가 들어간다는 것은 지나온 순간들이 찰나가 아니라 선물이었다는 것을 깨닫는 것입니다. 비록 그 순간이 슬픔과 피로와 분노의 시간일지라도 잠식당하지 않고 작은 빛이라도 찾는 훈련을 해야 합니다. 행복하지 않으면 나만 손해니까요. 


https://youtu.be/yGxDx8ftX1I?si=1ApdETgWK8mj9hY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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