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나만 빼고 다 짰네!

-조르주 드 라투르 <다이아몬드 에이스를 숨긴 속임수꾼>

by 조용진

“성현 말씀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요. 그 판에서 누가 호구인지 모르겄으면 니가 바로 그 호구다.”


드라마 <미스터 선샤인>을 보다가 웃음을 터뜨린 장면이다. 주인공 고애신(김태리 분)의 사촌언니가 도박할 판돈이 모자라 허겁지겁 전당포에 물건을 맡기러 간다. 그때, 전당포 주인 '일식'이 그녀의 가락지를 슬쩍 들여다보더니, 의미심장하게 툭 던진 말이다.

처음엔 이 유쾌한 장면을 보고 그저 ‘풋’ 하고 웃었다. 그런데 이상하게 웃으면서도 개운하지만 않았다. 가슴 한쪽이 서늘해졌다. ‘호구’라는 단어에 꽂힌 것이다. 드라마 속 '일식'이 나를 보고 이야기하는 것 같았다.

‘그려, 바로 너 말이여.’


너, 완전 허당이야

호구인데 ‘호구처럼 안 보이게’ 애쓰는 사람. 그게 바로 나다.

사람들은 나를 보고 말한다.

"너는 바늘로 찔러도 피 한 방울 안 나올 것 같아."

칭찬인 줄 알았다. 이어지는 말이 그만 허를 찌른다.

"그런데 알고 보면 너, 완전 허당이야."

사실이었다. 겉으로는 냉정하고 온갖 쿨한 척 다해도, 실은 ‘청맹과니 과’다. 귀가 얇아 칭찬엔 금방 녹고, 눈빛 한 번에 마음 흔들리고. 세상 사람들이 카드를 숨길 때 나 혼자 꺼내놓는, 그러니까 완전 ‘봉’인 것이다.

이런 나와 상당히 비슷한 그림을 만났다. 어느 날, 프랑스 파리 루브르미술관을 소개하는 책을 펼쳤다가, 그림 하나와 딱 눈이 마주쳤다. 대충 훑어보려던 얄팍한 책장이 갑자기 무겁게 느껴졌다. 페이지를 넘기려는데, 그림 속에서 누군가가 외쳤다.

“이봐, 어디 가?”


나 빼고 모두 한편 먹었네

고요하고 어두운 조명 아래, 네 명의 인물이 테이블에 모여 있다. 누가 봐도 점잖은 카드놀이다.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은근한 사기극이 벌어지고 있다. 이건 그냥 그림이 아니고, 거의 'CCTV'를 보고 있는 것만 같다.

조용한 정적 속에서 가장 먼저 눈길을 끄는 건, 왼편에 앉아 있는 남자다. 이 남자, 왼손을 뒤로한 채 카드 두 장을 슬쩍 숨기고 있다. 한 장도 아니고 두 장이다. 작정하고 수를 쓰는 거다.

남자 옆에 서 있는 술병과 술잔을 들고 있는 하녀는 은근슬쩍 수상한 눈빛을 보낸다. 얘네 둘은 분명 공범이다.

가운데에 앉은 여인은 겉보기엔 아주 점잖다. 금빛 드레스를 차려입고, 우아하게 진주목걸이로 치장했다. 앙다문 입술에, 무표정이다. 하지만 눈빛은 달랐다. 눈이 찢어질 듯 옆으로 향한 그녀의 시선. 그 눈빛은 수화(手話)였다.

"지금이야, 어서 바꿔치기해. 티 나면 우린 다 끝장이라구!"

그녀의 손끝도 심상치 않다. 마치 ‘지금이야!’ 하고, 미리 짜둔 수신호를 보내는 것만 같다. 그녀는 이 판을 조종하는 진짜 ‘타짜’ 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이 자리에 가장 진지하게 앉아 있는 사람이 있다. 그림의 오른쪽, 화려하게 차려입은 청년이 그 인물이다. 눈은 카드에 고정돼 있고, 표정엔 ‘이번에야말로!’ 하는 확실한 기대감이 묻어난다.

‘아… 저 사람, 나구나.’

나는 늘 저 자리에 앉아 있었다. 손에 카드도 안 숨기고, 하녀랑 눈빛도 주고받지 않고, 그냥 혼자 “화이팅!” 하고 있다가 당하는 스타일. 거기다 진지하기까지 하다. 그리고 판이 끝나고 한참 후에야 깨닫는다.

"아뿔싸, 나만 빼고 다 짰네."


la-tour-le-tricheur-louvre-rf1972-8.jpg!Large.jpg 조르주 드 라투르, <다이아몬드 에이스를 숨긴 속임수꾼> ,1635, 캔버스에 유채. 106 x 146 cm 루브르 미술관 소장.



'미술판'의 호구

이 그림은 조르주 드 라 투르(Georges de La Tour, 1593~1652)가 1635년경에 그린 《다이아몬드 에이스를 숨긴 속임수꾼(The Cheat with the Ace of Diamonds)》이다.

조르주 드 라 투르는 1593년, 프랑스 동북부의 작은 시골 마을에서 태어났다. 어릴 때부터 그림을 곧잘 그렸고, 한때는 루이 13세의 궁정화가가 될 정도로 꽤 잘나갔다.

특히 명암 대비와 고요한 정적을 화폭에 담아내는 데 뛰어났다. 그의 그림은 한눈에 보기에 고요하다. 하지만 그 안에는 숨죽인 음모와 속삭임이 도사리고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는 생전에 꽤 성공한 화가였지만 죽고 나서는 완전히 잊혔다. 그것도 수백 년 동안이나. 그의 작품들은 한동안 카라바조(1571~1610)의 화풍과 비슷하다는 이유로 엉뚱한 화가들의 이름으로 통용되기까지 했다. 그러다 20세기 초, 독일의 미술사가 헤르만 포스 (Hermann Voss , 1884~ 1969) 가 "이건 조르주 드 라 투르의 작품이다!"라고 했고, 세상은 마침내 그의 이름을 다시 불러주었다.

그러고 보니 그도 한때는 '미술사라는 도박판'에서 호구였던 셈이다. 오랜 세월 잊혀졌다가 긴 시간을 돌고 돌아 겨우 이름을 되찾은 화가.



너도 이제 우리랑 한패야

나는 지금 그의 그림 앞에서 내 삶을 돌아본다. 숨죽인 표정, 은밀한 공모, 그 가운데 눈치채지 못하고 있는 나. 다만, 나는 그 안에서 눈만 꿈뻑거리고 있는 귀공자였다. 왠지 내 일기장을 온 세상 사람들이 다 읽은 듯했다. 숨기고 싶은 것도, 들키고 싶지 않았던 것도, 다 펼쳐진 기분이다.

카드 두 장을 뒤로 숨긴 남자의 두 눈동자에 내 시선이 붙잡혔다. 그 남자의 눈은 분명 나를 향하고 있었다. 피할 수도, 모른 척할 수도 없다. 그 눈빛은 능글맞게 속삭인다.

"허참! 본 거야? 그럼 너도 이제 우리랑 한패야."





<함께 듣는 음악>


드미트리 쇼스타코비치ㅡ<Waltz No. 2>



이 그림과 마주했을 때, 이미 그 안에서는 이 왈츠가 흐르고 있었습니다. 귀족의 무도회장에서 흘러나올 법한 격식 있는 음악입니다.

조용한 테이블, 교묘한 눈빛, 숨겨진 카드, 그리고 눈만 꿈뻑거리는 귀공자…

우아한 척하고는 있었지만, 어딘가 비틀린 리듬이 음모가 가득한 공간 속에서 조심스럽게 울려 퍼지고 있었습니다.

이 곡은 처음 들으면 마치 화려한 무도회의 한 장면처럼 느껴집니다. 리듬은 부드럽고, 선율은 경쾌하여 누구나 가볍게 어깨를 들썩이게 만듭니다. 하지만 귀를 기울이면 금세 알게 됩니다. 이 음악은 단순히 흥겹기만 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왈츠의 부드러운 선율 사이로, 삐걱거리는 불협화음처럼 묘한 쓸쓸함이 스며 있습니다.

쇼스타코비치는 시대의 요구에 따라 겉으로는 웃어야만 했던 예술가였습니다. 소련 체제 아래, 그의 음악은 생존을 위해 가장 아름다운 얼굴로 가장(假裝)해야만 했지요. 그래서 그의 곡들은 언제나 두 개의 얼굴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겉으로는 화려하고 유쾌하게 들리지만, 그 속에는 가늘게 떨리는 긴장과 허탈함이 조용히 숨쉽니다.

<Waltz No. 2>는 그런 쇼스타코비치의 이중 감정을 고스란히 담아낸 곡입니다. 화려한 외투를 입고 있지만, 그 안에서는 쓸쓸함이 춤을 추고 있지요.

왈츠는 빙글빙글 흘러갑니다. 그림은 조용히 웃습니다. 악기들도 리듬에 맞춰 비틀거리며 웃습니다. 왈츠에 몸을 맡긴 나도 웃습니다.

비록 이 판에서 진심으로 카드를 고르고 있는 이는 나뿐일지 몰라도. '이번엔 진짜겠지?' 하는 확신으로 웃으며, 조금 늦은 스텝으로 이 왈츠에 발을 맞춰봅니다.

다 짜놓은 '판'이었지만, 당한 것도 나답고, 혼자 진심이었던 것도 ‘나다운’ 것이었습니다. 이제는 귀엽게 보이기까지 합니다. 어설프지만, 그래도 춤은 계속됩니다. 속은 김에, 그냥 끝까지 놀아보기로 합니다.


https://youtu.be/gYSRrer6iO8?si=dEZ-58RMbcLM_Fq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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