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토 자쿠추의 <군계도>
“몇 번을 말해야 알아듣겠니? 이 닭대가리야!’
머리가 나쁜 사람 혹은 지혜롭지 못한 이를 비하해 부르는 단어. ‘개 대가리’도 ‘소 대가리’도 아니고 ‘닭대가리’라니….
예로부터 닭의 울음소리는 어두운 밤을 보내고 여명을 알리는 희망의 상징이었다. 그래서 옛사람들은 그림으로 닭을 그려 애정을 과시했다. 도시화가 되면서 우렁찬 새벽닭소리는 사라져 버렸다. 대신 식탁 위의 먹거리로 아낌없이 제 몸과 새끼(계란)까지 내주는 고마운 존재가 되었다. 하지만, 배은망덕하게도 인간들에게 억울한 오명까지 쓰게 되었다. 선조들이 사랑한 동물, 닭. 그들의 붓에서 빚어진 경이로운 작품으로 그 누명을 바로 잡고 싶다.
이토 자쿠추, <군계도>, 1761~65, 비단에 채색, 142.6 ×79.7cm, 일본 궁내청 소장
교토 중심가에 자리 잡은 니시키 시장은 ‘교토의 부엌’이라는 명성답게 먹거리도 많지만 특별한 무엇인가가 있다. 그 특별함은 시장의 폐장시간에 펼쳐진다.
고된 하루를 보낸 상인들이 상점의 셔터를 내리고 귀가하면, 시장은 미술관으로 탈바꿈한다. 이 시장의 골목 미술관에서 화폭은 점포의 셔터다. 접혔던 병풍이 펼쳐지듯 셔터에 그림이 나타난다. 그것도 에도시대의 화가 이토 자쿠추(伊藤若冲, 1716~1800)의 화려한 작품이다. 고도(古都)의 운치를 더하는 옛 그림이 고풍스럽다.
발상이 기발한 ‘기상(奇想)’의 화가로 알려진 이토 자쿠추. 그는 니시키 시장의 청과물 도매상의 아들로 태어났다. 장남이어서 스물세 살 때 가업을 물려받았으나 그림에 미쳐 장사에는 도무지 관심이 없었다. 불혹의 나이에 가업을 동생에게 물려주고 은거하며, 자신이 좋아했던 그림만 그리고 살았다. 비록 전문 화가는 아니었지만 집안이 부유했던 덕에 온전히 그림에만 몰두할 수 있었다. 세밀한 묘사가 장기였던 그는 병적일 만큼 묘사에 집착했다. 이런 이토 자쿠추를 확인할 수 있는 작품이 닭 그림이다.
그는 닭을 가까이서 관찰하기 위해 마당에 닭을 풀어놓고, 그리고 또 그리기를 멈추지 않았다. 현재 도쿄의 황실 궁내청에서 소장 중인 <동식 채화 30폭> 중 하나인 <군계도(群鷄圖)>에도 닭에 대한 집요한 면모를 엿볼 수 있다.
폭이 넓고 긴 비단(142.6 ×79.7cm)에 제목 그대로 화면 가득 닭들이 무리 지어 있다. 지금 닭들은 위풍당당한 자태로 잔뜩 허세를 부리는 중이다. 그야말로 수컷들의 뿜뿜 ‘센 척 모둠세트’다. 닭은 날개와 꼬리가 마구 겹쳐져 있어, 서로 구분하기가 쉽지 않다. 풍성한 깃털과 길게 뻗어 오른 꽁지가 화려하다. 가는 붓으로 한 획 한 획 정성을 들인 티가 역력하다.
꽃처럼 붉은 닭 벼슬을 세어봤다. 모두 열세 마리다. 이 ‘수컷’들은 각기 다른 곳을 보고 있다. 도통 남의 말을 듣지 않는 고집쟁이 같다. 우리 집 ‘그냥반’이 떠올라, 실없이 웃음이 새 나왔다.
섬세하고도 세밀한 묘사는 발군이다. 감탄을 넘어 징그러울 정도이다. 부유했던 만큼 비싼 안료를 아낌없이 사용했나 보다. 채색이 비까번쩍하다. 마치 성장(盛裝)을 하고 사교모임에 나온 사내들 같다. 특히 그가 만든 ‘빨간색’은 눈부시게 화려하다. 살아 움직이는 듯한 피사체의 형태와 색상에 대한 남다른 감각은 쉬지 않고 붓을 들었던 노력의 결과이리라. 진홍빛 벼슬들이 맨드라미처럼 붉다.
닭은 그러나 ‘만물의 영장’을 위해 냉장고에 들어가면서부터 업신여김을 당하기 시작한 것 같다. 해마다 가족의 몸보신을 위해 삼계탕을 끓일 때 ‘올해도 더위를 잘 이겨 내야 할 텐데’ 하는 바람과 인간을 위해 고귀한 생명을 내준 그들의 희생에 ‘내가 이걸 먹어도 되나?’ 하는 미안함 사이를 오가며 마음이 소란해지곤 한다.
최근 연구 결과에 따르면, 닭의 지능은 일곱 살 아이 수준으로, 동물 중에서도 높은 편이라고 한다. 또 모성도 뛰어나서 새끼들 입에 먹을 것이 들어가기 전에 먼저 배를 채우는 법은 없다고 한다. 병아리들이 고통을 받으면 어미 닭이 스트레스를 받는다는 연구도 있다.
박혁거세나 김알지 설화에서 알 수 있듯이 닭들의 우렁찬 소리는 어둠에서 광명의 도래를 알리는 희망의 신호탄이었고, 장차 세상을 바꿀 인물의 탄생을 예고하는 영물의 소리였다.
그들의 ‘꼬끼오!’는 이렇게 외치고 있다.
“그래! 난 위대한 닭대가리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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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 말복을 하루 앞두고 닭들에 대한 미안함에 쓴 뻘글..
Opera Carmen <Toréador Song 투우사의 노래 > - Georges Bizet
처음 그림을 보았을 때, 헛것을 본 양 13마리의 닭들이 걷고 있는 듯해 화들짝 놀랐습니다.
닭들은 마치 살아 움직이는 듯 고개를 뻣뻣이 들고 한껏 거드름을 피워대고 있었습니다.
바로 이 노래에 맞추어 행진하듯이 말이죠.
그 노래는 비제의 유명한 오페라 <카르멘>의 '투우사의 노래'입니다.
"투우사의 노래"는 투우사인 에스카미요가 자신의 직업과 '남성다움'에 대한 자부심을 표현하는 아리아입니다. 노래의 내용도 투우에서의 위엄과 용기에 대한 찬양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가사는 동영상에 첨부되어있습니다.)
왜 이 노래가 떠올랐을까요?
이유는 너무나도 선명한 빨간 색 때문이것 같습니다. 투우사가 휘두르는 빨간 천이 마치 그림 속 붉은 닭 벼슬을 떠오르게 하기도 하고 끔찍하지만 창에 찔린 황소의 선연한 피가 연상되기도 했습니다.
그림의 닭들은 강한 자신감의 옷을 입고 정장을 한 투우사마냥 빨간 닭 벼슬을 자랑하고 있습니다.
닭 벼슬은 그림이 세상에 첫 모습을 보였을 당시 사회가 정한 남성의 역할에 대한 기대를 보여줍니다.
경쟁을 통해 자신의 가치를 증명하려는 듯 마초적인 분위기를 물씬 풍기고 있지요.
경기에 임해 한껏 정장을 차려입은 투우사처럼 강인해 보이지만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 수탉들의 모습이 왠지 부담스러워 보이기만 합니다.
https://youtu.be/smcUJMdjAUk?si=Pqw0DY1jvK25chH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