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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용진 Aug 06. 2024

12. 하루하루 충만한 사랑

프리다 칼로 <디에고와 프리다 1922~1944>


결혼하고 나서야 알게 되었다. 남편이 로또 같은 존재였다는 것을…. 식성에서부터 취향까지 맞는 구석이라고는 도무지 찾아볼 수 없었다.  평생 내편이 되어 줄 것이라고 믿었건만 그는 나만 빼고  모두에게 살가운 그야말로 '남의 편'이었다. 섭섭한 마음에 남편에 대한 마음은 점점 너덜너덜 해지기만 했다. 결혼 전 내 한마디라면 산이라도 옮겨줄 듯한 그였는데... 

이왕 함께 살기로 한 거 물릴 수도 없고, 비겁할지 모르지만  ‘언젠가는 맞겠지’ 하는 막연한 기대로 살아내었다. 상대방에 대한 포기와 보이지 않는 배려 덕에 강산이 세 번이 바뀌고 난 후에야 서로의 삶이 조금씩 편안해졌다. 역시 버텨내길 잘했다. 

놀랍게도, 서로를 내치지 않고 버텨낸 선물은 연애시절에는 느끼지 못했던 ‘새로운 애정’이었다. 잃어버린 퍼즐 조각들을 찾아 하나씩 맞추어 보듯, 하루하루 충만해져 가는 ‘우리’를 본다.


운명의 두 번째 사고

프리다 칼로(Frida Kahlo, 1907~1954)는 평생 남편인 디에고 리베라(Diego Rivera, 1886~1957)의 사랑을 갈구했다. 스무 살 차이가 나는 젊은 부인과 살았지만, ‘도둑놈’ 디에고의 외도는 중독 수준이었다. 프리다가 결혼 15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작은 조개 액자에 그린 두 사람의 초상에서도 그녀의 넘치는 애정이 잘 나타난다.


“내 인생에는 두 번의 큰 사고가 있었다. 하나는 나를 부스러뜨린 전차 사고, 또 하나는 디에고와의 만남이다. 그리고 디에고가 더 최악이다."   -프리다.


18살 때, 전차사고로 철근이 골반을 관통하는 치명적인 부상을 입은 프리다는 누워있는 동안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그림을 그리며 고통을 이겨냈고 그림은 그녀의 평생 친구가 되어주었다. 

운명의 두 번째 사고는 그녀가 다니고 있던 멕시코 시티 국립 예비학교(Escuela Nacional Preparatoria)에서 벽화 제작 프로젝트를 하고 있는 디에고를 만난 날이었다. 당시 민중벽화의 대가였던 디에고를 프리다는 '추앙'하고 았었고, 통통 튀는 프리다의 매력은 디에고의 마음을 설레게 했다.

나이와 성격차이를 염려하는 주위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둘은 1929년 보란 듯 결혼식을 올렸다. 

프리다는 디에고의 아이를 갖고 싶어 했다. 하지만 거듭되는 유산과 남편의 끝없는 외도는 그녀를 더욱 병들게 했다. 하다 하다 프리다의 여동생과 부적절한 관계를 가진 디에고이지만 프리다는 평생 디에고만을 사랑했다. 그녀는 침상에서 배신과 내면의 고통을 재료 삼아 초현실적인 다수의 자화상 등을 그리며 예술혼을 키워나갔다.



울혈 맺힌 심장의 초상

프리다는 액자에 결혼한 해인 ‘1929’, 그리고 15주년이 된 ‘1944’라는 숫자를 써놓았다. 그림은 이중초상화이다. ‘반반 치킨’처럼 두 사람의 얼굴을 하나로 합쳐놓았다. 왼쪽은 웃고 있는 디에고이고, 오른쪽의 프리다 얼굴은 무엇인가 할 말이 많은 듯한 표정이다. 인물 뒤에는 남편과 아내를 상징하는 해와 달이 있고, 아래쪽에는 소라와 가리비가 가시 같은 나무줄기에 연결되어 있다. 나무줄기는 마치 운명의 손길처럼, 두 사람의 목을 조르는 것같이 묶어두었다. 

맞지 않는 퍼즐을 억지로 끼워놓은 듯, 불편한 그림이다. 그림의 각 부분은 어울리지 않고, 공허와 불안으로 가득하다. 황홀해야 할 아름다운 기념일 선물이건만, ‘결혼’에 존재하는 모순과 엇갈림을 상징하고 있다. 두 사람의 모습은 디에고와 하나가 되고 싶었던 프리다의 갈망으로 울혈 맺힌 심장처럼 보인다. 프리다의 눈동자를 보면, 그녀의 영혼은 아직 이곳에 남아 우리와 함께 있는 것만 같다. 프리다의 영혼은 그림 속에 살아 숨 쉬며, 우리에게 충만한 사랑에 관해 묻는다. 


프리다 칼로, <디에고와 프리다 1929~1944>, 메이소나이트에 유채, 12.3x7.4cm, 1944, 개인 소장



<함께 듣는 곡>


La Llorona (우는 여인) -Chavela Vargas


여러 버전이 있지만

줄리 테이머 감독의 영화 <프리다>에서 차벨라 바르가스 (1919~2012)가 부르는 우는 여인(La Lorona)이 가장 쓸쓸합니다.

차벨라 바르가스는 멕시코의 전설적인 가수로 젊은 시절 프리다 칼로의 연인이었다죠.

그녀가 부르는 <우는 여인>은 아바타인양, 디에고를 향한 프리다의 힘겨운 사랑을 이야기해 주고 있습니다. 


저기 피어있는 꽃들에겐 무슨 사연이 있는 걸까

묘지에 피어난 꽃들

바람이 불어 꽃들이 흔들리 때면 

마치 흐느끼고 있는 것처럼 보여.

나는 당신이 사랑으로 울게 하지 않을 거야. 

무엇이 내게 고통일까?

사랑을 모르는 이들은 고통이라는 것도 모르지

내가 당신을 더 사랑하는 이유로 더 많이 울기를 원하는 거야?

이미 나는 당신에게 내 삶을 다 내주었는데

당신은 무엇을 더 바라는 걸까?




차벨라  바르가스의 쓸쓸한 노래 속에 , 그녀의 느린 듯 거친 음색 속에, 프리다 칼로의 못다 이룬 사랑이 살고 있습니다. 하루하루 채워져 충만해지기를 꿈꾸었던 그녀의 바람이 녹아있습니다.


차벨라 바르가스와 프리다 칼로




https://youtu.be/mwNBa40y2oA?si=NNKwC4qrWigxMWER


https://youtu.be/kqUSiM-BU_4?si=Vcgo4YF8yMQAxskW

영화 <프리다>에서의 차벨라 바르가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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