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진이랑”
예능을 즐겨 보는 편이 아니지만 작년 여름 아내와 싹 3가 나오는 방송을 보았다. 비, 유재석, 이효리가 프로젝트 그룹으로 앨범 작업을 하는 것이었다. 부캐가 유행이라며 부캐명을 정했다.
게임 중 롤플레이 게임을 하면 직업을 선택할 수 있다. 직업마다 강함과 특징이 다르기 때문에 주 캐릭터 외에도 부캐릭터를 육성한다. 이런 부캐에 대한 개념이 현실에도 반영되었나 보다.
예전에는 만능 엔터테이너라고 해서 한 사람이 여러 가지 직업을 갖춘 것을 나타내는 말이었다. 반면 부캐는 한 사람인 걸 누구나 알지만 다른 인격으로 대우를 한다.
사실 내가 연예인도 아니고 부캐가 나랑 무슨 상관이겠어라는 생각을 했었다. 물론 현실에서도 이름보다는 직책이나 지위로 불리는 일이 많다. 집에서는 “자기”, 직장에서는 “상담사”로 불린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불리는 호칭은 당연히 기분이 좋다.
아직 “상담사”로서의 나는 누군가 앞에 나설 때 살짝 민망할 때가 종종 있었다. 예전 직장동료에게 연락이 와서 나의 안부를 묻다가 무슨 일을 하는지 물을 때 그랬었다. 그래도
“점장”까지 했었는데 고객센터에서 전화를 받는다고 하기 부끄럽다고 느꼈었다.
직업에 귀천이 없었지만 “점장”은 경력과 자리가 있어야 하고 인정받아야 할 수 있지만 “상담사”는 상대적으로 진입장벽이 낮다고 스스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처음에 맥도날드에 입사했을 때도 친구들이 물으면 회사에 입사했다고 대답했었다.
공채로 입사해서 매니저로 근무하고 있는데도 친구들이 알바로 오인하지는 않을까 생각했기 때문이다. 나는 주위 사람들에게 어떻게 보일지에 대해서 크게 생각하는 편은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그런 것도 아닌가 보다.
하긴 어렸을 때 부모님 직업란을 기재할 때 다른 친구들은 “회사원”이라고 기재할 때, 나는 꼭 “이사”라고 적었다. 물론 아버지께서 작은 공장에 “이사”라는 직함을 맡았고 허울뿐이었지만 그런 아버지를 자랑스러워했었다.
어렸을 때 아버지의 직업에 대한 생각이 뿌리를 내린지도 모른다. 학창 시절부터 감투에 대한 욕심이 많았다. 학교와 교회에서 맡는 작은 “장” 자리에도 최선을 다했다. 직위 그 자체보다 주위에서 인정받는 걸 좋아했다.
매니저로 근무할 때 주위에서는 힘들다고 이직을 할 때도 “점장”이 되기 위해 근무 시간 외에 내 시간을 사용하며 준비했었다. 사실 “점장”이란 타이틀은 피천득의 “은전 한 닢” 같은 것이었다. 서비스업에 종사했으니 “점장”해보아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강했다.
“점장”에 가까워졌다고 느꼈을 때부터 이직을 준비했다. 돈을 벌기 위한 직업이 아닌 하고 싶은 직업을 하자고 생각을 했다. 정말 내가 하고 싶었던 직업은 “선생님”이었다.. 교원 자격증을 갖추고 있던 것도 아니고 서비스업만 하던 내가 갑자기 선생님이 될 순 없었다.
알아보던 중 [한국어 교원 자격증] 과정을 알게 되어 설레는 마음을 가지고 준비했다. 꿈에 한 발자국 다가간다는 생각을 품었다. 학점 운영제로 2급을 준비했다. 대학생으로 돌아간 느낌이었다.
정점은 역시 실습과정이었다. “선생님”을 준비하는 학생들이 모여서 서로 “선생님”이란 호칭으로 부를 때 왠지 기분이 좋았다. 어렸을 때 꿈이 “선생님”이었기 때문일까? 불러 주기만 해도 기분이 좋고 다른 “선생님”을 부를 때도 친근했다.
꿈에서 한 발자국 물러나기로 생각한 것은 취업이 쉽지도 않은데 정년 후에 봉사활동이나 취미생활로 생각하는 분들이 적지 않았다. 생계를 놓지 못하는 상태에서 하기에는 무모하다고 생각을 했다.
아내는 나의 꿈을 응원했지만 주말 봉사활동이나 노년에도 할 수 있다고 괜찮다고 대답했다. 사실 많이 아쉬웠다. 그러던 중 브런치를 알게 되었고 글을 쓰기 시작했다.
생계와 관계없이 글을 쓰기 때문에 나의 글은 자유로웠다. 쓰고 싶을 때 쓰고 그날, 그날 소재가 달라도 괜찮다. “작가”라는 호칭도 내 마음에 쏙 든다. 내가 좋아하고 아내가 응원하는 나의 부캐는 작가 “진이랑”이다. 돈이 되지 않아도 누군가 나의 글을 읽어준다면 앞으로도 글을 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