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리는 괴로워
아내가 캣그라스 귀리 세트를 사 왔다. 캣그라스는 고양이가 좋아하는 풀을 지칭하는 말이라고 한다. 아내가 처음 사 왔을 때만 해도 시큰둥했었다. 시엘이는 육식 성향이 강하고 캣닢에도 별 반응이 없는데 호불호가 확실했기 때문에 풀을 재배한다고 반응이 있을까 싶었다.
아내는 캣그라스의 장점을 알려주었다. 신경 안정에도 좋고 그루밍을 하면서 삼킨 털(헤어볼)을 체외로 배출해준다고 말했다. 전에 티브이에서 호랑이가 소화가 안 될 때 풀을 먹는 모습을 본 적이 있다. 물론 아무리 좋아도 시엘이가 먹어야 효과가 있는 것이었다.
아내가 화분에 귀리를 심고 있는데 시엘이의 관심을 끄는 것에는 성공을 했다. 나중에 인터넷을 찾아보니 화분에 심는 것 외에도 콩나물처럼 수경재배도 가능했다. 캣그라스는 처음이라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몰라 재배 방법을 보니 간단했다. 심고 물만 주면 자라는 것이었다. 재배 조건이 까다롭지도 않았다.
며칠동안 싹이 올라오지 않아서 잠시 잊고 있었다. 3~4일 정도 지나서 아내가 싹이 올라왔다고 말했다. 아직 눈에 띄진 않았는지 시엘이도 별 반응이 없었다. 다음날 캣그라스의 발아가 눈에 띄게 보였다. 시엘이도 자신의 것을 알아채기라도 하듯 귀리를 뽑아서 먹기 시작했다. 먼저 본 것은 아내였고 신기하다는 듯 불렀다.
“자기야, 빨리 와봐. 시엘이가 캣그라스 먹는다. 거봐, 내가 먹는다고 했잖아. 쏙 뽑아서 먹는 것봐.”
전부터 시엘이는 식물 특유의 향을 좋아하는지 아내가 키우는 화분에도 관심을 가졌었다. 그 모습을 보던 아내가 시엘이 전용 화분을 준비해준 것이었다.
이제 싹이 오르는 것 같은데 지금부터 먹는 것이 맞는지 모르겠다. 시엘이가 흥미를 가지고 있고 좋아하니 그 걸로 됐다. 아내는 시엘이가 캣그라스를 먹는 모습을 보더니 나머지 두 화분에도 귀리를 심었다.
시엘이가 캣그라스에 관심을 보여하길래 먹는 모습을 사진으로 찍고 싶었지만 움직이고 있어서 어려웠다. 가까이 가면 날 신경 쓸 것 같아 무심한 척 동영상을 찍고 있었다. 그 순간 떨어진 귀리를 집기 위해 움직이다가 화분을 떨어뜨렸다. 순간 눈치를 보던 시엘이의 모습을 찍었다.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자 떨어 뜨린 채로 헤집기 시작했다. 아내도 가만히 지켜만 보았다.
“자기야, 시엘이 안 말려도 돼? 어떻게 해?”
“시엘이 거잖아. 다 먹으면 정리해줘.”
“응? 왜 그렇게 되는데?”
“원래 딸은 아빠가 챙기는 거야.”
“아, 그런 거였어? 딸내미는 떨어뜨리니 먹기 편한가 보내”
시엘이의 식사(?!)가 끝나고 뒷정리를 했다. 그리고 시엘이 옆에서 폰으로 집사일지를 적고 있었다. 시엘이가 스윽 손을 내 손에 올린다. 폰은 그만 만지고 자신을 봐달라고 하는 건지 방금 정리하느라 고생했다는 건지 모르겠지만 그 모습이 귀여웠다. 딸 바보는 오늘도 딸과의 일상을 기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