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애들은 싸우며 자란다.
남자아이들은 서열에 관심이 많다. 어렸을 때는 누가 뭐라고 해도 싸움을 잘하는 사람이 일등이었다. 누가 더 센지에 대한 관심사는 자신들의 아빠가 제일 세다는 자랑으로 시작하다가 만화 주인공의 등수까지 매기기도 했다.
시골 동네인 데다가 두 살 아래인 남동생이 있었고 또래 중에서 발육이 좋은 편이라 골목대장이었다. 남동생과 아웅다웅하다가도 남동생을 울리면 여러 일 제쳐두고 쫓아갔었다. 나보다 2~3살 많았던 형을 남동생과 합심하여 세워져 있던 리어카와 벽 사이에 잘못했다고 울고 빌 때까지 가두었던 일화도 있었다.
국민학교에 입학하며 우물 안 개구리였다는 것을 알았다. 같은 학년에 유달리 발육이 좋은 친구가 있었다. 형들과 싸워도 이긴다는 소문이 있을 정도였다. 나보다 머리 하나는 컸고 체격도 좋아서 6학년 때 선생님과의 팔씨름도 이길 정도였다. 딱히 충돌할 일도 없었는데 여러 이유로 종종 L군에게 맞았다.
일방적인 폭력 앞에 얼굴이 멍이 들거나 코피가 나는 일은 다반사였다. 집에서도 L군에게 종종 맞고 온다는 것을 알았지만 애들은 싸우면서 큰다고 대수롭지 않게 생각을 했다. 친구들도 L군을 무서워했기 때문에 누구 하나 말리지 않았다.
하루는 축구를 하다가 시비가 붙었다. 축구는 주로 홀수와 짝수로 나누어서 하는데 L군은 홀수였고 나는 짝수였다. 지는 것을 싫어하던 둘은 태클이 깊었고 서로 넘어졌다. 축구가 끝나고 L군이 내게 말했다.
“네가 때릴 수 있는 최대한으로 세게 때려. 맞아줄게.”
난 정말 있는 힘껏 때렸고 맞아주던 L군은
“계집애냐? 하나도 안 아파.”
하고 말하며 한 대 때렸을 뿐인데 난 바로 쓰러졌다. 심지어 맞은 곳은 멍들었다.
자존심이 너무 상하고 아프기도 너무 아팠지만 방법이 없었다. 하루빨리 시간이 흘러 다른 중학교로 가길 바랄 뿐이었다. 우리는 한 학급밖에 없어서 5년 동안(2학년 때 전학 와서) 같은 반이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은 항상 1등을 하던 L군이 내가 전학 온 이후로 2등이 되었고 L군의 아버지께서는 수재였던 L군의 형과 늘 비교했었는데 이젠 여자한테도 진다고 핀잔을 들었다고 했다. (이름만 듣고 하신 오해이다.)
중학생이 되고 L군의 폭력에서 벗어났다. 가끔 우연히 만나면 인사를 하고 근황을 나누었다. 신체적인 거리가 생기 고나서야 마음의 거리가 가까워졌다.
다른 중학교였던 L군의 무용담은 계속 들려왔다. 고등학교에서 다시 만났는데 문과와 이과로 나누어져 만나는 일은 많지 않았다. 지역에서 싸움을 제일 잘한다는 소문을 들었다. 학교의 유명인사였기 때문에 친구들을 통해 여러 부풀려진 L군의 전설을 들었다.
이후, L군은 특전사로 입대해 이라크 파병까지 다녀와서 안 그래도 강한 이미지가 더욱 강해졌다. 그는 내 인생에 나를 가장 많이 때린 사람이고 내가 아는 가장 강한 사람이었다. 지금은 보고 싶은 친구 중 하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