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육강식
중학교는 시내로 통학을 하게 되었다. 버스를 30~40분 정도 타고 가서 도보로 5~10분 정도 걸었다. 같은 초등학교 출신이 6명이 함께 왔지만 반이 12반까지 있어서 같은 반에 배정된 친구는 없었다. 내내 같은 반이었던 친구들이 흩어져 아쉬웠던 차에 P군이 옆 반이 되었다.
이동 수업이 있었는데 내 짝꿍이었던 녀석과 P군이 시비가 있었다. P군이 일방적으로 맞아서 울고 있었다. P군을 달래고 짝꿍이었던 R군에게 사과하도록 이야기를 했지만 감정이 격해있던 터라 나에게 불똥이 튀었다.
중재를 하려던 나는 도리어 R군과 싸우게 되었고 키 순서로 앉았던 터라 비슷한 양상이었다. 문제는 주위에 있던 R군의 초등학교 동창이 내 잠바를 아래에서 위로 올려서 순간에 시야가 보이지 않았다. R군의 초등학교 친구들이 순식간에 모여서 나를 함께 때렸다.
나중에 R군이 이렇게 될 줄은 몰랐다고 사과를 했지만 P군은 도리어 모르는 체했다. 믿는 도끼에 발등 찍힌 느낌이었다. P군을 위해 나섰는데 어쩜 그럴 수가 있지 하는 생각을 했다. 그 이후 약육강식이라는 생각을 했고 센 척을 하며 시비가 붙으면 물러서지 않았다. 2학년이 되어 반이 바뀌었다. 처음 보는 친구들이 서로 눈치를 보던 중이었다.
한 녀석이 우리 반에 들어와서 여자 친구와 22일이라며 돈을 걷기 시작했다. 처음 보는 녀석이었는데 뭐지 하고 바라만 보았다.
“야, 친구한테 보태주는 게 아깝냐? 표정이 별로인데 너 잘 나가냐? 뒤로 따라 나와.”
“너 나 알아? 그래 나왔다. 어쩔래?”
“아니, 그냥 친하게 지내자고 난 옆 반의 J야.”
기세 등등하게 나서니 J군은 주위 친구들에게 괜히 성질부리고 반을 나섰다. 알고 보니 일진 중 하나였는데 싸움 잘하는 아이의 친구라고 했다. 주위 시선이 달라진 것이 느껴졌다. 그 일 이후로 반에서 나에게 시비를 거는 친구들은 없었다. 1학년 때와 달리 친구들과 싸울 일도 없었다.
사춘기의 혈기왕성한 서열 정리에서 다행히 발을 뺄 수 있었던 것이다. 서로 다른 초등학교에서 모여서 그런지 시내에서 진학한 초등학교 출신이 많은 아이들이 분위기를 이끌었다.
성장의 시기들이 서로 다르다 보니 신체적인 조건이나 지연, 학연에 의한 폭력들이 많았다. 누군가 하나가 타깃이 되면 심하게 괴롭혔다. 남학생들만 있어서 그런지 짓궂었고 선생님께서 안 계신 곳에는 여러 명의 왕들이 있었다. 그들과 엮이지 않는 것이 최선이었다.
스스로 지키기 위해서는 센 척해야 한다는 것이 당시의 깨달음이었다. 만약 그때로 돌아간다면 나는 지인 찬스를 적극적으로 사용할 것이다. 초등학교 동창 L군은 우리 중학교에서도 이름을 날렸지만 자존심 때문에 도움을 받진 않았다. 그 무렵 대부분 강자에게는 약하고 약자에게는 강했다.
약육강식이 종지부를 찍은 것은 중3 이후였다. 다들 성장하던 시기라 3학년이 되니 지금까지 작다고 괴롭힘 받던 친구들 중 키가 180이 넘는 친구들도 생겼다. 운동을 배운 친구들도 있었고 1, 2학년 때 싸움 좀 한다던 녀석들도 잘 알려지지 않은 친구에게 지기도 했다. 진학을 앞두어서 그런지 서열 정리도 시들해졌다.
돌아보면 사춘기의 가장 예민할 때 만났던 친구들이다 보니 충돌도 가장 많았던 것 같다. 이성보다는 감정이 시키는 대로 행동을 했던 시기이고 요즘 학교 폭력 이야기를 접하면 그래도 그 시절 우리는 무난하게 보낸 것 같다는 생각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