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보다는 이성
J군은 입담이 있는 친구였는데 성격이 좋아서 마당발이었다. 농구도 같이 하고 친하게 지냈다. 어느 날, 특별한 일도 아니었는데 말싸움으로 번졌다. 서로를 말로 공격하던 중 주위의 시선에 자존심 싸움이 되었다. 결국 싸우기로 했는데 보통 일어나지 않는 싸움이라 그런지 일이 커졌다. 친구들이 교실에서 싸우다가 걸리면 선생님께 혼이 나니 공터로 가자고 했다. 학교를 나와 길 건너 공터에 우르르 모여 갔다.
가는 길에 순간 화가 났던 감정이 내려앉고 이성적으로 돌아왔다. 사실 J군과 싸워서 이길 확률이 낮았다. 키도 머리 하나 가까이 컸고 태권도 유단자였다. 자존심이 뭐라고 이렇게까지 일을 키웠나 싶지만 따라 나온 친구들도 있어서 돌이킬 수 없었다.
공터에 도착했고 기선 제압을 위해 말을 했다.
“안경 벗어. 괜히 다치지 말고.”
“얼굴은 안 맞을 거니까 걱정 말고 덤비기나 하시지.”
“안경 쓴 얼굴 때려도 된다고 한 거다. 나중에 살인미수라고 하기 없기다.”
“입으로 싸움하나? 그냥 덤비기나 해.”
시작되자마자 바로 달려들어서 붙잡고 배 주위를 때렸다. 말은 그렇게 했어도 얼굴을 때리는 건 부담스러웠다. 연타를 했지만 계속 때리다 보니 때리는 나도 지쳤다. 지쳐서 살짝 멈추었을 때 거리가 떨어졌는데 순간 J군이 돌려차기를 했고 얼굴 정면에 맞아서 코피가 났다. 친구들이 놀라서 가지고 있던 휴지 등으로 응급처치를 했다.
제대로 맞은 탓에 코피는 멎었지만 눈가에 살짝 멍이 들었다. 친구들은 바로 학교로 복귀했고 나는 진정이 된 후 들어가기로 했다. 친구들을 보내고 혼자 남았는데 괜한 자존심으로 이게 무슨 꼴이지 하고 후회했다.
복귀했는데 선생님께서 멍든 얼굴을 바로 알아보셨고 J군과 나는 교무실로 끌려갔다. 평소 선도부로 모범생 이미지였던 나와 껄렁거리는 이미지였던 J 군인 데다가 내 얼굴의 멍 때문에 J군은 들어가자마자 선생님께 혼이 났다.
J군도 억울했는지 상의를 걷었고 배 쪽에 멍이 들어 있었다. J군은 맞긴 본인이 더 맞았는데 한 대 때리고 얼굴에 멍이 드는 바람에 가해자 취급을 받은 것이 억울했던 모양이었다. 사실 나는 때리긴 많이 때렸지만 마지막 한 대에 코피가 나서 친구들은 J군이 이겼다고 생각할 테니 비참했었다. 그런데 그 멍을 보고 미안함보다는 다행이라고 생각을 했다. 속 좁은 나의 찌찔함이었다.
남자들은 싸우고 나면 더 친해지는 경우도 있지만 우리는 서로 서먹해졌다. 그것이 나의 마지막 싸움이었다. 친구들도 이성적이었고 폭력으로 해결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었다. 화가 나거나 지나치게 감정적일 때는 환기를 시켜서 시간을 보내면 별 일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되고 이성적으로 생각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