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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이랑 Dec 20. 2021

 손의 의미

그녀의 거친 손이 내겐 제일 아름답다.

  야사에 따르면 연잉군(영조)은 어머니가 무수리(궁중에서 청소 일을 맡은 여자 종) 출신으로 출신에 대한 콤플렉스가 심했다고 한다. 콤플렉스의 피해를 본 여성이 바로 정비인 정성왕후라고 한다. 그녀와의 첫날밤, 손이 정말 희고 고와서 칭찬을 하며 비결을 물었다. 그녀는 곱게 자라서 손에 물 한 방울 묻힌 적이 없다고 대답했다. 연잉군은 이 대답을 자신의 어머니는 궁중의 고된 일을 하느라 손에 굳은살이 많은 것을 놓고 조롱했다고 여겨 그날을 계기로 아내와의 관계가 소원해졌다고 한다.


 손을 보면 그 사람의 인생을 조금은 짐작할 수 있다. 거친 피부에 굳은 살을 보면 고생을 많이 했다는 것을 알게 되고 인생의 풍파를 겪었다는 걸 알 수 있다. 나도 20살부터 알바를 해서 설거지, 편의점, 공장, 처음처럼 홍보, 캐릭터 알바 등을 했었다. 그리고 외식업에 종사를 하며 설거지나 재료 손질을 했다. 손이 고운 편은 아니지만 거칠거나 굳은살이 있진 않다.


 아내의 손은 모진 풍파를 혼자서 감내한 듯 손등은 거칠고 손바닥은 굳은살이 가득하다. 고등학교 때부터 알바를 하고 직장생활을 하면서도 투 잡을 했다고 한다. 그녀의 손을 보면 안쓰러울 때가 종종 있다. 물론 마음과 달리 아내가 도와달라고 해도 바로 하지 않을 때도 있다. 그러면 아내는 연애할 때는 원하는 것은 다 해준다고 하더니 다 잡은 물고기라고 미끼도 안 준다고 타박을 한다.


 며칠 전 지인과 식사를 했었는데 그의 손이 너무 고왔다. 손가락도 가늘고 길고 뽀얗다 못해 여자 손이라고 해도 믿을 정도였다. 그의 지속된 자랑에 그의 배우자가 말했다.

 “집에 와서 손 하나 까딱하지 않으니 그렇지. 내 손 좀 봐. 혼자 고생을 다해서 푸석 푸석해.”

 그녀의 우스개 소리와 함께 더욱 화기애애했다.


 “나랑 결혼해주면 손에 물 한 방울 안 묻히게 해 줄게.”라는 감언이설 있을 정도로 손은 고생을 도맡아 하는 주요 신체 부위 중 하나이다. 업무 때문에 손을 혹사하는 경우를 제외하고 가사 노동 시에 손에 고생의 흔적을 남겨주는 것은 크게 두 가지라고 생각을 한다.


첫 번째는 빨래이다. 지금은 세탁기가 있지만 세탁기 없던 시절 빨래하는 모습을 티브이로 보면 현대에 태어나길 다행이라고 생각을 한다. 세탁기는 가사 노동 시간을 혁신적으로 줄여준 신의 선물과 같다. 게다가 빨래를 하다 보면 손에 물과 세제들이 묻기 때문에 손이 거칠어지기 마련이다.


 두 번째로 손의 고생을 덜어주는 가전제품은 식기 세척기이다. 매장에서 대량의 설거지를 할 때 필수품이었기에 집에서 설거지를 할 때면 가끔씩 생각이 난다. 아내에게 우스개 소리를 이야기했었다.

 “자기야, 식기 세척기 하나만 사주면 자기에게 더 잘할게.”

 “누가 들으면 자기 혼자 설거지 다 하는 줄 알겠다. 얼마 되지도 않는데 하기 싫으면 내가 할게.”

“아니, 우리 자기 손에 물 안 묻히려고 했지.”


 부모님의 손이나 아내의 손을 살펴보면 그들의 고생 덕분에 우리의 현재가 있다는 걸 새삼 깨닫게 된다. 월요일은 왠지 더욱 길고 고되다. 빨리 퇴근 시간이 되어 아내의 손을 잡고 집에 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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