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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이랑 Dec 19. 2021

첫눈이 내리는 어느 날

미리 크리스마스

 전날 모임이 있어 새벽에야 잠이 들었다. 아침을 먹고 시엘이와 오붓하게 낮잠을 자고 있었다.

 “눈 온다. 밖에 눈이 오고 있어.”

 일기 예보로 눈이 많이 올 거라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눈이 온다는 건 왠지 모를 설렘이 있다.

 졸린 눈을 비비고 일어났다. 내 품에서 자고 있던 시엘이를 살포시 안아 올렸다. 졸지에 봉변을 당한 시엘이는 졸리다는 듯 나를 올려보았다. 여름에 태어난 시엘이에게 눈은 처음이라 눈 오는 모습을 함께 보기 위해 거실로 옮겼다.  시엘이는 캣타워에 올라가 눈이 오는 모습을 신기한지 한참을 지켜보았다.


 아침을 먹을 때, 아내는 스타벅스에 예약한 다이어리를 받으러 가자고 했었다. 나는 귀찮은 마음에 가기 싫다고 했었는데 아내가 재차 부탁하길래 어쩔 수 없이 가겠다고 했었다. 눈이 오는 걸 보니, 마음이 변해 눈이 멈추기 전에 아내와 함께 눈을 맞으며 걷고 싶어졌다.


시엘이는 눈 멍을 하고 있었고 나는 눈을 보는 시엘이의 모습을 보며 냥멍을 하고 있었다. 처음 보는 눈에 신기해하는 시엘이의 모습을 보고 데리고 나갈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자기야, 참아. 시엘이는 데리고 나가면 병원 가는 줄 알고 놀랄걸. 나가는 것보다 보는 걸 더 좋아할 거야.”


아내와 눈을 맞으며 걸음을 옮겼다. 눈이 그 사이에 소복소복 쌓였다. 그리고 우리는 그 눈에 처음으로 발자국을 남기며 걷고 있었다. 뽀드득뽀드득 듣기 좋은 소리가 났다. 가끔 미끄러질 뻔했지만 그것만으로도 웃음이 나왔다. 오랜만에 많이 내리는 눈이었다.

 “크리스마스에도 눈이 왔으면 좋겠다.”                                  

 “크리스마스에는 어딜 가도 사람들이 많아서 집에 있을 텐데.”

 “눈이 오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으니까.”

 “난 벌써 월요일에 출근할 때 미끄러울 것 같아 걱정이 되는데.”


 아내는 낭만을 느끼며 이야기를 했고 난 현실적인 이야기를 했다. 스타벅스에 가는 길에 지역 노래 예선을 하는지 간이 무대에선 성시경의 감미로운 노래를 하는 청년이 있었다. 잠시 발걸음을 멈추고 노래를 들었다. 요즘 오디션 프로그램으로 노래 잘 부르는 사람들이 많아서 입상할진 모르겠지만 눈이 오는 날 듣기에 좋았다.  


 거리에서 캐럴송이 나오는 곳도 있었다. 머라이어 캐리의 “All I Want For Christmas Is You”가 나오고 있었는데 눈까지 오고 있어 크리스마스 느낌이 물씬 났다. 자주 걷는 길임에도 눈이 내리고 캐럴이 나오니 어딘가 여행이라도 온 것 같았다.


 강아지를 데리고 산책 나온 사람들도 있었는데 강아지가 신이 나서 돌아다니는 모습이 귀여웠다. 부모 손 잡고 나온 아이들도 신이 났는지 눈사람을 만드기도 하고 썰매를 가지고 나와서 아이를 태우고 끌어주는 아버지도 있었다. 눈이 오니 세상이 밝아졌고 마음도 밝아진다. 아내 말대로 크리스마스에도 눈이 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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