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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이랑 Jan 16. 2022

[북리뷰] 밀라논나 이야기

햇빛은 찬란하고 인생은 귀하니까요

 밀리의 서재를 구독하고 있어 추천 책으로 <햇빛은 찬란하고 인생은 귀하니까요>라는 제목을 보았습니다. 내 서재에 담아놓은 책들이 있어 제목과 표지만 보고 지나쳤습니다. 녹색의 잔디 위에 짧은 머리의 할머니가 안경을 쓴 채 해맑게 웃는 모습이 인상 깊었습니다. 사전 지식이 없던 상태라 저자는 어떤 사람인지 어떤 내용의 책인지도 몰랐기 때문에 인기가 있는 책 중 하나로 치부했습니다. 그리고 잠시 잊고 있었습니다.

 

 아내와 함께 서점을 들렸습니다. 아내가 읽고 싶은 책이 있다고 하여 함께 들렸고 서로 그 간 나온 책들을 돌아보았습니다. 연애 전 아내가 책 읽는 모습을 보고 새로운 모습을 알게 되어 더 호감을 느꼈었습니다. 제 주위에는 책을 즐겨보는 사람이 많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아내는 법정 스님의 책처럼 흥미 위주가 아닌 잔잔하며 읽고 사색을 할 수 있게 해주는 책을 좋아합니다. 이번에 읽고 싶다는 책도 그런 책일 거라고 생각을 했습니다. 아내가 들고 온 책은 며칠 전 저도 잠시 스쳐 지나간  <햇빛은 찬란하고 인생은 귀하니까요>였습니다.


 책 표지 하단에 구독자 88만 유튜버 밀라논나의 인생 내공 에세이라고 적혀있었습니다. 유튜브는 중국어 동영상이나 고양이 동영상 외에는 보고 있지 않아 유명 유튜버에 대해서는 잘 모르지만 적지 않은 구독자를 보유하고 있는 연세가 있는 어른이라는 것은 알 수 있었습니다. 에세이는 자신의 삶과 생각들이 투영되기 때문에 인생을 엿볼 수 있습니다. 연세가 있어 보이는데 이렇게 환하게 웃을 수 있는 사람의 인생은 어땟을지 들여다보고 싶었습니다.


 장명숙 님은 1952년 생으로 저희 아버지보다 2년 더 일찍 태어났습니다. 저자 소개를 보니 밀라노로 패션유학을 떠난 첫 번째 인물이었습니다. 패션의 선구자라고 볼 수 있습니다. 실제로 이탈리아의 패션을 전하고 유명 브랜드를 론칭하기도 했습니다.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의 런웨이 편집장 미란다처럼 화려한 인생을 살았을 거라고 유추하게 되었습니다. 우리나라와 이탈리아의 교류에 이바지한 공으로 명예 기사도 받았습니다.


 저자 소개만 보았을 때는 위인전을 보는 것과 같은 느낌과 거리감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읽을 때마다 장명숙 님의 됨됨이를 알게 되고 마음이 따뜻한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서두를 (울고 있는 제자)에게로 시작했습니다.  제자가 스승을 찾아왔습니다. 사실 힘이   스승을 생각하고 찾아간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만큼 마음을 열고 교류했었기 때문에 스승에게 찾아가서 하소연도 하고 고민도 털어놓을  있는 것입니다.


옛날에는 암묵지들이 많았습니다. 농경 지식이나 기상에 대한 지식을 인생을  살아온 노인들이 많이 알고 있었습니다. 그들에게 지식을 물어보며 인생 선배인 어른의 지혜를 빌렸습니다. 요즘에는 지혜보다는 지식을 추구하고 힘들어도 힘든 내색을 하지 않습니다. 빠르게 변화한 현실 속에 어른이 알고 있는 것은 별로 쓸모가 없다고 생각을 합니다. 우리나라는 전쟁을 겪고 빠른 성장 속에 어른들의 지혜가 대물림 되지 않았던 것은 아닐까 생각합니다.


  장명숙 님은 제자에게 단순히 조언만을  것이 아니라 그녀의 심정을 알아채고 이해한  자신의 인생 고군분투기를 이야기했습니다. 단순히 조언만을 했다면 요즘 말로 '라떼는' 되어 제자도 어려울  찾아올지 못했을 것입니다. 제자의 상황과 심정을 이해하고 들어준  자신의 이야기를 꺼내고 응원과 지지를 하는 모습에서 참된 어른이라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그녀의 됨됨이는 남편과의 언쟁에서도 엿볼  있습니다. 남의 시선에 구애받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패션업에 오래 종사했기 때문에 남의 시선을 많이 신경   같지만 오히려 소박합니다. 염색하지 않아 흰색의 짧은 머리 또한 할아버지로 오해받는 일이 종종 있지만 시간 절약과 관리의 용이성으로 그녀가 선택한 것입니다.


 "사는 게 특별하지 않다. 배고프면 간단히 요기하고, 추우면 따뜻하게 입고 더우면 시원하게 입고, 자고 싶을 때는 작은 내 한 몸 편안하게 누울 잠자리만 있으면 되는 것 아닌가."

그녀의 인생관을 엿볼 수 있는 글귀였습니다. 고등학교 때 주로 배우는 시조의 단골 주제로 나오는 '안빈낙도'가 생각났습니다. 그리고 위 글 귀는 욜로족과 파이어족에게 보내는 응원의 글귀입니다. 사회 구성원으로서의 그들을 응원하는 장명숙 님의 따뜻한 마음도 느껴집니다.


 그녀의 따뜻한 마음은 25년 넘게 이어진 보육원 봉사활동에서도 느낄 수 있습니다. 장명숙 님은 봉사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봉사는 남을 위해 노력하는 행위인데 취미라고 생각합니다. "갈 때 즐겁고, 가서 즐겁고, 돌아올 때 즐거우니, 이런 멋진 취미가 또 있을까."


 우리나라와 이탈리아의 문화 교류에 이바지한 분답게 이탈리아 문화도 간간히 소개하고 일주일에 한 권의 책을 읽기 위해 노력하는 분답게 그녀의 교양을 엿볼 수 있게 여러 좋은 글귀들도 인용을 많이 했습니다.

"인간이 죽음을 뛰어넘는 일에는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좋은 글을 남기는 것이고 또 하나는 좋은 자식을 남기는 것이다." -움베르토 에코-


 죽음에 대해서도 초연해서 자식들에게도 후에 장례를 간소하게 해 달라며 그 비용은 사회복지 기관으로 보내달라고 당부했습니다. 사후 장기 기증센터에 기증 서약을 가족의 반대를 무릅쓰고 동의를 받아 진행했습니다. "그렇게 나의 죽음이 누군가에게 선물이 되기를, 충만한 기쁨이 되기를"


 300페이지가 넘는 글을 집중해서 한 시간 정도만에 다 보았습니다. 아내는 옆에서 보고 벌써 다 읽었는지 물었습니다. 그만큼 흡입력이 있어서 집중이 되었습니다.

 

 요즘 글쓰기 강의를 보면서 저의 글쓰기에 대한 고찰을 하고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누군가 보아 주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글을 편하게 적어서 하루에 한 편의 글을 올릴 수 있었습니다. 좋은 기회로 공동저자로 첫 출간을 한 뒤 욕심이 생기니 글을 잘 쓰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오히려 글을 쓰는 것이 어려워지는 것이었습니다. 약간의 슬럼프가 왔다고 생각할 때 롤 모델이 되는 에세이를 만났습니다.


 밀라논나님의 에세이를 읽으니 짧은 글에서도 전하는 메시지가 있고 생각을 오롯이 느낄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잔잔한 호수에 돌을 던져 그 흐름이 건너편까지 전달되는 것 같습니다. 담담하지만 진솔한 인생의 향기를 느낄 수 있는 그녀와 같은 에세이를 쓰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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