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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이랑 Feb 28. 2022

[북리뷰]101살의 마지막 인사

한 명의 역사를 통해

 “내가 얼마나 바쁜지 자넨 상상도 못 할 거야. 지금 내 꼴이 어떤지 돌아볼 겨를도, 심지어 죽을 시간도 없다니까.”


 노년 하면 왠지 작물을 가꾸며 가끔 내려오는 자녀나 손녀를 보는 재미로 살 것 같은 한가함이 연상되는데 벤자민 페렌츠는 인터뷰 요청을 바쁘다는 이유로 번번이 거절합니다. 신문 기자 나디아 코마미는 70년 전 재판 영상을 우연히 보게 되고 개인적인 관심에서 인터뷰를 시도합니다.


 이 책을 읽고자 했을 때 벤자민 페렌츠에 대한 사전 지식은 전혀 없었습니다. 이 책에 끌렸던 이유는 순전히 [101살의 마지막 인사]라는 제목에서였습니다. 요즘 나이가 들고 있다는 것을 체감하면서 약간의 우울함이 몰려왔는데 나보다 인생을 두 배 이상 산 선배는 어떤 이야기를 전하고 싶을 것인지 궁금했습니다.


벤자민 프렌츠는 뉘른베르크 법정의 유일한 생존 검사로서, 상식이 살인을 이기기를 간절히 바라는 이들을 위해 그는 ‘전쟁이 아닌 법’이라는 슬로건을 내세웁니다. 유대인 출신으로 독일 전범 재판인 뉘른베르크 법정에서 검사로 그들의 죄를 기소했습니다. 그 이후에도 꾸준히 활동해서 국제적인 법 기관이 형성되는데 기여를 합니다.


그가 전하고 싶은 삶의 메시지는 하나였습니다.

“아주 간단한 것들이라네. 첫째, 절대 포기하지 말 것, 둘째, 절대 포기하지 말 것, 셋째, 절대 포기하지 말 것.”


 포기하지 말라는 말은 누구나 알고 있지만 실천이 어렵습니다. 삶을 살다 보면 타협을 하는 일이 많으니까요. 하지만 그는 옳다고 생각하는 일을 절대 포기하지 말라며 세 번 강조합니다. 그리고 자녀들에게 오늘은 세상에 어떤 도움이 되었는지 물어보곤 합니다.


나로 말할 것 같으면, 한 사람의 인격은 신념과 의지는 물론이고, 주변 사람들이나 각자에게 주어진 기회를 포함한 다른 많은 것들이 결합되어 형성된다는 생각이다.


 지금은 망국인 트란실바니아에서 부모님이 미국으로 이주했습니다. 그의 부모는 영어도 할 줄 몰랐고 학력도 낮았습니다. 집도 직업도 없이 맨손으로 시작해서 그의 어린 시절은 어려웠고 어려운 이웃들이 많았습니다. 그들 중에 사기꾼이나 범죄자가 되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그는 범죄자가 되고 싶진 않았습니다.


 남들보다 조금은 늦은 나이에 입학했지만 월반을 하며 진학했고 머리가 좋아서 장학금을 받으며 뉴욕시립대로 진학을 합니다. 주위에 대학을 간 사람이 없었지만 그는 자신만의 길을 개척한 것입니다.


150센티미터 남짓 되는 작은 키 때문에 종종 몸집이 큰 사람들에게 괴롭힘을 당하곤 했는데, 내가 그들과 경쟁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그들보다 훌륭한 사람이 되는 것뿐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약점을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원동력으로 이용할 수 있다면, 그 약점은 강점이 될 수 있다.


환경 탓이나 주어진 것에 대한 만족을 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는 자신의 주어진 것을 만족할 줄 알고 오히려 원동력으로 삼았습니다.


 철학 시간에는 올더스 헉슬리의 <목적과 수단>을 읽어야 했다. 정당한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는 오직 정당한 수단만이 쓰여야 한다는 결론을 내리게 된 것은 바로 이 책을 통해서였다.


 할아버지, 할머니에게 6.25 전쟁 이야기를 들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의 글에서 전쟁에 대한 이야기를 볼 때는 옛 기억이 떠올랐습니다. 그리고 최근 일어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대한 일이 상기되었습니다.


 하지만 히틀러는 알고 있었습니다. 총통에겐 나보다 정보가 많았으니까요. 볼셰비키들이 우리를 공격하려 준비하고 있었으니 우리가 먼저 공격하는 것이 낫겠다고 판단한 것입니다. 그것은 합법적인 선제공격이었습니다.”


전범인 올렌도르프의 주장입니다. 유대인을 7만 명이나 죽였다고 알려졌으나 그는 자신의 행동에 대해 끝까지 정당성을 부여하며 후회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아마 우크라이나를 공격한 러시아의 입장도 그러하겠죠. 3자의 입장에서는 어떠한 전쟁도, 어떠한 살인도 정당화될 수 없고 천인공노할 만행이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전쟁은, 전쟁이 아니었다면 꽤 괜찮은 사람이었을 이들을 살인자로 만든다. 올렌도르프가 바로 그 본보기였다. 그는 잘 생긴 신사였으며, 다섯 아이의 아버지였고, 경제학 학위도 갖고 있었다.


 환경의 영향을 받을 수 있지만 같은 환경이라고 모두 같은 선택을 하는 것은 아닙니다. 올바른 가치관을 가지고 있어야 옳은 선택을 하는 것입니다. 행동이 결국 그 사람입니다.


 그녀의 사진을 늘 지니고 있다. 다른 사진 속 그녀는 마치 영화배우 같아 보인다. 하지만 그녀는 내면 역시 아름다웠고, 그 사실이 더욱 중요하다. 그녀에게는 고마운 것이 너무 많다. 결혼을 전제로 10년간 연애를 하고 또,

74년 동안 결혼 생활을 유지하면서도 우리는 단 한 번도 다툼이 없었다. 나는 운이 좋은 사람이었다. 그녀가 숨을 거둘 때, 나는 곁에서 밤새 그녀의 손을 잡고 있었다. 지금도 너무나 그립다.


 이 책을 보며 가장 마음에 들었던 부분은 이 대목이었습니다. 위인과도 같은 삶을 살았던 그에게 존경심은 생겼지만 와닿진 않았었는데 위의 내용은 꽤 와닿았습니다. 미사여구가 아님에도 와닿았던 것은 글로는 표현할 수 없는 시간들이 그려지는 것 같았습니다.


 아내에게도 글귀를 옮겨 적어서 보내고 우리도 저렇게 오래오래 사랑하자고 메시지를 보냈습니다. 101살, 와닿지 않는 나이입니다. 제가 그렇게 오래 살 거라는 기대를 하진 않습니다. 하지만 저자의 아내를 향한 사랑처럼 저의 사랑도 한결같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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