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는 역시 달달하게

커피 맛을 몰라도 마실 수 있어요

 커피를 처음 마신 기억은 볼링장에서 벌칙으로 마신 것입니다. 어릴 때부터 간접적으로 커피 땅콩이나 커피 사탕 등 경험을 하긴 했으나 직접 마신 것은 고등학생이 되어서였습니다. 교회에서 또래들과 팀별 내기를 했는데 지면 자판기에서 블랙커피를 뽑아 마시는 것이었습니다.

 커피를 마시며 든 생각은 이 쓴 것을 왜 돈을 주고 마시는 거지 하는 생각이었습니다. 블랙커피가 지금 생각하면 아메리카노일 텐데 그 당시에는 패배의 쓴 맛인지 더욱 쓴 것 같았습니다.

 그 이후로도 커피를 마실 일은 없었습니다. 몸이 둔한지 카페인을 마신다고 잠이 깨거나 하지도 않아서 커피를 마실 바에는 콜라를 마셨습니다. 대학생이 되니 친구들과 카페를 가는 일이 종종 생겼습니다. 캠퍼스 내 카페라 공강이나 조별 과제가 있을 때면 만남의 장소였습니다.

 카페에서 콜라를 주문할 순 없고 왠지 있어 보이는 이름 탓에 캐러멜 마끼아또를 주문했습니다. 그 이후로는 카페에 가면 캐러멜 마끼아또를 주문하곤 했습니다. 저처럼 카페를 처음 이용하는 동기 녀석들이 능숙하게 주문한다며 치켜세웠고, 캐러멜의 달달한 맛이 제 입맛을 사로잡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인지 혼자 있으면 커피를 마시지 않았습니다. 달달한 맛에 커피를 마실 거면 콜라를 마시고 말지 하는 생각이 컸기 때문입니다. 커피는 제 생각엔 가성비가 떨어지는 음료였습니다.

 커피를 가장 많이 마신 시기는 갓 직장인이 되고 나서였습니다. 자동차 공장이다 보니 사무실에서도 일을 했지만 현장 지원을 많이 했습니다. 일을 하다가 동료들이 담배를 피우고자 나서면 같이 나왔는데 비흡연자인 저는 할 것이 없었습니다. 휴게실엔 커피 자판기만 하나 있었을 뿐입니다. 자판기 커피는 달달하고 200원 밖에 하지 않아서 애용하게 되었습니다.

 패스트푸드로 이직하게 되며 원 없이 탄산음료를 마시다가 커피도 접하게 되었습니다. 커피 머신을 사용하고 디캔터에 커피를 내리기도 했습니다. 아라비카 원두에 익숙해지고 라떼만 마시다가 아메리카노를 마시게 되었습니다. 지인의 초대로 함께 커피 수업을 받기도 했습니다. 여러 사람들과 함께 커피 드립을 배우도 각자 내린 커피를 나누어 먹기도 했습니다.

 사람들은 산미에 대해 이야기하고 맛에 대해 이야기를 하는데 저는 도저히 차이를 몰랐습니다. 흥미로운 시간이었지만, 노래를 못 부르면 음치인 듯, 맛을 잘 모르는 저는 미치였기에 조금은 불편한 자리였습니다. 주위 사람들의 반응에 동조하며 시간을 보내야 했습니다. 원두의 원산지에 따라 맛이 다르고 물의 온도와 유속에 따라 맛이 다르다는 이론적인 부분을 습득하고 돌아와서 산미와 커피의 맛과는 먼 시럽 맛과 휘핑 맛으로 커피를 마십니다.

  커피를 단 맛으로 먹는 저와 달리 아내는 커피를 좋아합니다. 그래서 데이트할 때면 카페도 종종 가고 집에서도 마십니다. 액상형 커피를 마시다가 일리에서 작은 커피머신을 샀습니다. 아내도 예전에 카페에서 일한 경험이 있어 커피 내리는 것에는 익숙하지만 원두를 볶는다거나 내리는 것 자체가 일이 커진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녀는 룽고를 좋아해서 아이스 아메리카노로 마십니다. 그리고 저의 입맛을 잘 알고 있어 연유와 바닐라 시럽, 헤이즐넛 시럽 등 달달하게 준비해 줍니다.

 커피 맛은 모르지만 아직도 잘 마시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