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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이랑 Dec 27. 2022

날개를 활짝 펴고

집사일지(51)

 집에 오면 항상 반겨주는 이가 있었으니, 그녀는 저의 사랑스러운 주인 시엘입니다. 집사가 오면 츄르를 조공하라며 와서 애교를 부려주는 것이 삶의 습관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현관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을 텐데 시엘이가 나오질 않습니다. 자다가도 기지개를 켜면서 나올 텐데 무슨 일일까요?

 그녀의 마음을 사로잡은 건은 나방 한 마리였습니다. 날개를 활짝 펴고 창문 사이에 갇혀 버린 나방은 유리에 반사되는 불빛을 따라 이리저리 날아다녔습니다.


 퇴근해서 저녁을 먹고 거실에 앉아서 티브이를 보았지만 시엘이는 집사에게는 관심도 주지 않습니다. 오직 나방을 어떻게 하면 잡을 수 있을지 집중하고 따라다니며 아쉬운지 “냥냥” 거렸습니다.

 나방은 꽤 오랜 시간 동안 날아다녔고 잡힐 듯이 잡히지 않기에 시엘이는 더욱 애가 탔습니다. 장난감도 쉽게 질려하는데 오랜 시간 계속 시선을 놓치지 않는 걸 보면 사냥 본능이 남아있는 모양입니다.


여름에는 모기를 사냥해서 놀라게 하더니 움직이는 것 중에서는 날아다는 것에 유독 관심이 많은 것 같습니다. 나방의 수명이 다할 때까지 창문에서 벗어나지 않을 기세입니다.


 “아빠가 좋아? 츄르가 좋아? “에서도 츄르를 선택하는 시엘이를 시험에 들게 했습니다. 과연 나방을 택할 것인가 츄르를 택할 것인가?

 “시엘아!“

 츄르를 주기 전에 항상 이름을 불렀기에 이름만 부르면 츄르 주는 줄 알고 어디에서든 달려옵니다. 역시 츄르가 이겼습니다.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저를 바라봅니다.

 “집사야, 불렀어? 바로 온 거 알지? 그러니 츄르 줘. “

이렇게 말하는 것만 같습니다.


츄르를 먹자마자 바쁜 용무라도 생각난 듯 다시 나방을 향했습니다. 무언가에 집중한 모습마저 귀엽습니다. 날벌레를 잡아다가 한 마리씩 풀어놓아야 하나 싶을 정도로 푹 빠져있습니다. 문득 아내의 예전 아이디어가 떠올랐습니다.


 시엘이의 반려 동물로 물고기를 키워서 “물멍”을 하게 하는 것이었는데 저 정도 집착과 힘이면 웬만한 어항과 물고기들은 감당을 못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심지어 물고기에게도 못할 짓입니다. 정말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기는 것“이죠.


 시엘이는 나방을 쫓아다니느라 체력이 방전이 되었는지 우다다도- 고양이가 갑자기 무언가를 쫓거나 쫓기듯 집안 곳곳을 뛰어다니는 것-하지 않고 잠이 들었습니다. 작은 것에도 행복해하는 시엘이를 보며 저도 행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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