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 편 말고 님 편
<응답하라, 1994>를 보다 보면, 남녀의 생각 차이를 보여주는 장면이 있습니다.
여자친구의 Q: 내가 오늘 이사를 했는데 문을 닫으면 페인트 냄새 때문에 머리가 깨질 거 같고, 문을 열면 매연 때문에 죽을 거 같다. 문을 여는 게 좋겠나? 닫는 게 좋겠나?
남자들의 답변
A:그래도 차라리 매연이 낫지 않나?
B: 아니지, 문 닫고 페인트가 낫지.
현명한 답변
- 근데 너 괜찮아?
드라마를 볼 때만 해도 전 현명한 남자라고 생각했습니다. 점심시간에 아내에게 메신저가 왔습니다.
아내의 Q: 자기야, 나 힘들어서 못하겠어. 퇴사할래.
남편의 A: 지금 그만둔다고? 준비를 하고 나오는 게 낫지 않겠어?(아내는 이직한 지 얼마 안 되었고, 현재 발목도 안 좋아서 서서 하는 일은 어렵고, 상담사를 오래 했는데, 상담사는 급여 조건이 지금보다 더 안 좋을 텐데.. 1년을 채우고 연차와 퇴직금을 이용해서 여유 있게 이직을 하는 것이 합리적인데..)
아내의 Q: 민원 고객이 걸렸는데, 내가 처리할 수 없는 일을 요구해. 알아보고 어렵다고 안내했는데, 다시 알아보래. 매뉴얼 상으로는 안내할 수 없고, 고객은 안내해 달라고 하고, 중간에 끼어서 너무 힘들어. 금요일까지 알아보고 연락하라는데 그만두고 싶어.
남편의 A: 상급자한테 도움을 요청하면 되지 않아?
아내의 Q: 상급자한테 보고하고 해 줄 수 있는 것이 없다는 안내를 다시 해드리도록 피드백받았어. 하지만 고객은 꼭 안내해 달래.
남편의 A: 그럼 할 수 있는 것이 없으니 연락 안 하면 되잖아. 양해 문자 남겨.
아내의 Q: 우린 전담제라서 그 고객이 다시 연락하면 나에게 전달이 돼. 너무 시달려서 힘들어. 할 수 없는 것을 할 수 없다고 하는데도 말이 안 통해.
남편의 A: 그럼 더 이상 스트레스받지 말고 퇴사해요.
과연, 남편의 답변은 현명한 답변일까요? 어떻게 답변해야 했을까요?
아내는 ‘나 힘들어, 퇴사할 만큼 힘들어.’라고 말을 한 것입니다. 저는 문맥의 숨은 뜻인 ‘힘들어’를 받아들이지 않고, ’나 퇴사하고 싶어.‘로 이해했습니다.
아내의 ‘힘들어’란 말을 받아들였다면, “자기야, 괜찮아? 무슨 일 있어?”라는 말이 나왔을 것이고, 그녀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맞장구를 하며, 고객에 대한 뒷담화도 하며, 서로 동질감을 느꼈을 것입니다.
하지만 ‘퇴사할래 ‘로 받아들였기 때문에 위와 같은 대화의 양상이 벌어졌습니다. 물론 ’ 퇴사할래 ‘로 받아들였더라도 ’그럼 퇴사하자. 오죽 힘들면 자기가 퇴사하겠다는 말이 나오겠어.‘라고 이해해 주었다면 더 좋았을 텐데 하는 후회가 생깁니다.
아내의 말에 공감하고, 그 감정을 헤아려야 하는데, 저는 상황과 해결책을 제시하려고 했습니다. 비슷한 상황을 여러 번 겪어도 공감보다는 해결책을 제시하는 건 남녀의 차이일까요? 성격의 차이일까요?
오늘도 아내와 오고 가는 대화 속에 하나를 깨닫습니다. 그리고 또 한 번 남편 말고 님편을 하겠다고 다짐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