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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이랑 Jun 24. 2023

누군가의 커피차

낭만인가? 현실인가?

  출근을 하다가 눈앞에 보이는 커피차(푸드트럭 형태의 출장 카페)를 보고 놀라서 살펴보았습니다. 이른 시간에 출근하는 편이라 사람들이 별로 없어 커피차를 둘러보고 사진을 찍었습니다.


 회사의 어느 차장의 부인이 남편을 위해 커피차를 보낸 것이었습니다. TV에서나 보던 커피차를 실물로 보다니 역시 서울은 스케일이 다르구나 하고 생각했습니다. 회사 1층이 카페인데 커피차라니 회사에 온 적이 없으신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남편의 기를 살려주려는 내조이겠죠.


 저는 예전에 아내 생일에 꽃을 배달할까 하는 생각을 했었는데, 아내가 일하는 곳에서의 이벤트는 질색을 하길래 실행으로 옮기지 않았습니다. 문득 그 생각이 났습니다.

 커피차를 실물 영접한 것은 처음인터라 아내에게도 소식을 알렸습니다. 아내는 저와 경제 공동체이기 때문에 거의 생각이 비슷했습니다.


 점심에 동료들과 식사를 하면서도 그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아침에 커피차가 왔는데, 비용이 100만 원이란 걸 알고, 깜짝 놀랐어요. 돈을 거의 바닥에 버린 수준이에요. “

 “와, 이 것이 P와 J의 차이인가 봐. 낭만적이지 않아요? 제가 남편이었으면 엄청 감동했을 텐데. 돈보다 아내의 남편을 생각하는 마음이 느껴지잖아요. “


 저는 P와 J나 감성과 이성의 차이보다 경제적인 효용의(소비를 통한 만족감) 차이라고 생각합니다. 저 또한 사랑하는 사람에게 100만 원을 사용하는 것은 아깝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사용 방식에 대한 생각이 다릅니다. 카톡에도 쓴 것처럼 아내가 갖고 싶어 하는 걸 선물하거나, 아내에게 현금으로 주는 편이 더 낫다고 생각합니다.


 선물 받은 남편도, 선물하는 아내도 잘 모르는 불특정 다수에게 커피를 선물하는 것보다 남편과 같은 부서에 도시락이나 커피를 보내는 게 낫다는 생각을 합니다. 물론 커피차에 대한 아내 분의 선택 또한 여러 가지를 고려하셨을 텐데 저의 생각은 그렇다는 것입니다.


 저도 비용을 듣기 전에는 낭만적이라는 생각과 함께 아내에게 이런 이벤트를 하는 건 어떨까 하는 생각을 잠시 했습니다. 비용을 듣고 나니, 갑자기 그런 생각들이 사라졌습니다.


 요즘 같은 고물가 시대에 100만 원이란 돈이 적지 않고, 그 돈이면 할 수 있는 것들이 생각났습니다. 제 돈을 쓴 것도 아닌데, 다른 사람의 기회비용을 생각하다니.. 너무 현실적인가?


 어른들은 숫자를 좋아한다. 여러분들이 새로운 친구를 사귀었다고 어른들에게 말하면, 어른들은 도무지 가장 중요한 것은 물어보지 않는다.

"그 애의 목소리는 어떠니?

그 애는 무슨 놀이를 좋아하니?

그 애도 나비를 채집하니?"  

절대로 이렇게 묻는 법이 없다.

"그 앤 나이가 몇이지?

형제들은 몇이나 되고?

몸무게는 얼마지?

그 애 아버진 얼마나 버니?"

항상 이렇게 묻는다.


이렇게 묻고 나서야 어른들은 그 친구를 속속들이 알고 있다고 생각한다.   -어린 왕자-


 <어린 왕자>의 한 문구가 떠올랐습니다. 그리고 저도 숫자로만 생각하는 어른이 되었다는 걸 새삼 깨닫습니다.


 남편에게 행복을 주기 위한 아내, 분홍색과 보라색으로 칠해져 있고 꽃장식으로 가득한 커피트럭, 사랑하는 남편을 향한 메시지가 담긴 플랫카드, 출근길에 맡을 수 있는 커피 내음, 오늘 회사에서는 연예인보다 뜨거운 관심을 받을 남편


 이름 모를 그녀의 선택은 탁월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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