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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이랑 Dec 27. 2023

임산부석 논쟁(in subway)

이 말도 맞고, 저 말도 맞구나

 출근길, 만원 지하철의 하루가 시작되었습니다. 다행히 자리에 앉아서 핸드폰을 만지며 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옆 칸에서 한 중년의 여성 분이 건너오며, 시끌 시끌해졌습니다.


 임산부석에 앉아있던 다른 노년의 여성 분에게 일어나라고 하며, 실랑이가 벌어졌습니다.

 “당신만 힘들어요? 여기 탄 모두가 힘들어. 차라리 노약자석을 앉아요. 임산부석은 비워두는 거야. 빨리 일어나요. “

 “임산부 자리인 건 알지. 그런데 여기 없잖아. 임산부가 오면 일어날 거야.”

 “비워두어야 앉지. 자리 차지하고 있는데 이 사람 많은 곳에서 어떻게 임산부석 앞으로 이동해서 양보를 해달라고 해요. 얼른 일어나요. “

 “나만 앉는 것도 아닌데, 왜 나한테 그래요. 임산부 보이면 양보할게요.”

 “아이들이 우리의 미래인데, 이러니 출산율이 낮아지지. 비워두면 내가 임산부 찾아와서 앉힐 테니 일어나요.”

 

 지하철의 온 시선이 집중되었고, 중년의 여성 분도 물러날 기색이 없습니다. 노년의 여성 분은 못 본 척 말을 무시하고 앉아 있었습니다. 그러자 중년 여성은 동요를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앞으로, 앞으로, 앞으로 지구는 둥그니까, 자꾸 걸어 나가면, 온 세상 어린이들 다 만나고 오겠네.”


 노년 여성도 도저히 못 버티겠는지 항복하고, 일어났습니다. 그럼에도 중년 여성은 그분을 따라다니며, 동요를 이어서 불렀습니다. 결국 노년 여성은 내릴 곳이 아니었을 텐데 문이 열리자마자 내렸습니다.


 그 사이에 다른 노년 여성이 임산부석을 앉았습니다. 다시 중년 여성은 이어 앉은 여성에게 일어나라고 했습니다.

 “이번에 내릴 거야. 너무 다리가 아파서 그래. 잠깐만 앉을게.”

 “안 돼요. 일어나요. 임산부석은 비워두는 거예요. 자리 양보를 받거나, 노약자석을 앉아요.”


 이를 지켜본 노부부는 자신들끼리 말했습니다.

 “저 아줌마 틀린 말은 아닌데, 너무 과한 거 아니야? 아침부터 할머니들은 무슨 봉변이래.”

 

 그 앞에 있던 중년 여성이 대화를 듣고, 말했습니다.

 “과한 거 아니에요. 요즘은 임산부 배지 보고도 양보를 안 해서 인형을 앉혀놓았는데, 인형을 치우고 앉는데요. 임산부석에 앉아있다가 양보를 안 하니까 저렇게 해야 비워둬야 한다고 인식 개선이 돼요. “


 출퇴근 만원 지하철에서 임산부석을 비워두긴 쉽진 않겠지만, 임산부를 보면 양보하는 건 당연하다는 인식이 자리를 잡아야 할 것 같습니다. 가끔 저렇게까지 한다고 놀랄 경험도 있지만, 다양한 사람들이 함께 어우러져 살아가니, 어제와는 다른 하루가 펼쳐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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