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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꿈은 무엇일까?

40대임에도 알아가는 중입니다.

by 진이랑

인천이라 그런지 오고 가며, 해기사에 대한 공고를 봅니다. 해기사를 하고 싶다거나 하는 생각을 해 본 적은 없습니다. 단지 그것은 선택하지 않은 삶에 대한 상상을 하게 합니다. 고3 시절, 함께 공주 교육대학교를 목표로 하던 친구 M군이 있었습니다. 우리는 수능을 본 후, 목표가 현실적으로 어려울 거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한 껏 어려웠던 수능을 탓해도 달라지는 것은 없었습니다. 월드컵이란 분위기에 취해, 공부를 게을리한 저의 탓이니까요. 담임 선생님은 재수를 권유하셨지만, 가정 형편 상 재수는 어려웠습니다.

고민 중이던 저에게 M군은 한국해양대학교를 지원하며, 함께 지원하자고 했습니다. 부산에 있는 생소한 학교를 친구 따라 강남 가듯 갈 순 없었습니다. 게다가 저는 수영을 못할뿐더러 물을 무서워합니다. 결국 각자의 선택을 했습니다. M군은 대학을 졸업하고, 배를 탄 이후로 연락이 끊겼습니다. 그 이후로 해기사 공고를 볼 때면 그 친구를 떠올리곤 합니다.


꿈 많던 학창 시절, 선생님이 되고자 했습니다. 누군가를 가르치는 것에 대한 보람을 느낀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선생님과 비슷한 직무를 하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M사에서는 직원 트레이닝에 애썼고, 점장이 되어 본사 교육팀으로 지원하겠다는 목표를 가졌습니다. 점장이 돼서도 교육팀이 되는 것은 쉽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점장이 되는 것 또한 쉽지 않았습니다.


이직을 하고서도 W사에서도 점장이 된 후, 본사 교육팀을 가는 것을 목표로 했습니다. 교육팀으로 가기 위한 최소 조건이 점장이 되어 교육팀을 지원한 후, W사 교육팀에서는 여성을 선호한다는 걸 알게 되고, 가능성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다른 방법을 찾다가 한국어 교원 자격증을 취득했습니다. 자격증은 취득했지만, 새로운 도전을 하기엔 어리지도,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현실과 타협하며, 상담 업무를 하고 있습니다. 신입 교육을 하며, 선생님에 대한 꿈을 대리 만족했습니다. 일주일에 두 시간 정도 과정을 배정받아 신입 대상으로 강의를 했습니다. 준비 없이 갑자기 하게 된 거라 교육 자료를 나누어주고 판서를 하며, 강의를 합니다.


그토록 바라던 선생님의 업무 중 일부를 하게 되었습니다. 주어진 시간 동안 어떻게 하면, 쉽게 알려줄 수 있을까 고민했습니다. 전화만 받으면 되겠지 하고, 쉽게 생각했던 교육생은 실전에서 예상치 못한 어려움에. 포기해 버리기 때문입니다.


몇몇 교육생을 스쳐 보내고, 제가 원했던 선생님이란 직업은 직무 자체보다 학생들이 성장하는 모습을 보며 성취감을 느끼고, 그들과의 관계에서 느끼는 보람이었다는 걸 깨닫게 되었습니다.


비록 원했던 선생님이란 직업을 갖지 못했지만, 꾸준히 무언가를 배워 가고 있습니다. 예전에 중국어 문정아 선생님의 말처럼 “나는 매일 조금씩 성장하고 있다.”는 말을 새겨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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