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사일지(4)
걷는 것을 좋아하시나요? 저는 걷는 것을 좋아합니다.
혼자 걷는 것도 좋아하고, 누군가와 함께 걷는 것도 좋아합니다. 걷다 보면, 이런저런 생각들을 하게 됩니다. 글쓰기에 익숙했다면, 글소재로 연결할 수 있지 않았을까 싶기도 합니다. 가끔은 떠오르는 생각을 핸드폰에 메모하기도 합니다.
떠오르는 생각들을 뇌파로 인식해서 메모해 주는 기기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상상을 해 본 적도 있습니다. 문장이나 문법에 구애받지 않고 떠오르는 생각들을 메모로 옮기기 어려울 때도 종종 있기 때문입니다. 가공되지 않은 생각들을 단어 위주로 메모하다가 Ai를 이용하면 정제된 문장으로 만들기 쉽지 않을까 하고 생각해 봅니다.
Ai로 글을 써볼까 했지만, 해보지 않은 것에 대한 생소함은 행동으로 이어지 않습니다. 아직은 직접 글로 옮기는 것이 더 익숙합니다. 문득 글은 시대의 산물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글을 쓰는 도구들이 바뀜에 따라 작가들의 글들도 바뀌었을 테니까요.
붓으로 글을 쓰던 시대에 태어났다면, 글로 옮기기 전에 생각을 더 많이 했을 것입니다. 종이가 귀하던 시대에 부자로 태어나지 않는 한, 생각나는 대로 글로 적기에는 제한적인 물자로 인해 어려웠을 것입니다. 게다가 글씨를 작게 쓰기도 어려웠을 테고, 먹을 갈아서 쓰다가 실수라도 하면 처음부터 다시 쓰는 일도 다반사였을 것입니다.
펜으로 글을 쓰게 된 후에도 수정이 쉽지 않았습니다.
단편적인 예로 <사랑을 쓰려면, 연필로 쓰세요>라는 노래의 가사에서도 알 수 있습니다. 지금은 핸드폰이나 컴퓨터로 손쉽게 수정할 수 있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특히 핸드폰은 걸으며, 생각나는 것들을 바로바로 메모할 수 있게 해 줍니다. 걷기와 글쓰기의 훌륭한 매개가 아닐까 합니다.
글 쓰는 수단이 바뀌어도, 걷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공간의 변화와 함께 글의 소재가 됩니다. 물론 달리기 혹은 운전을 하며 영감을 찾는 작가들도 있습니다. 그래도 걷는 것은 천천히 주위를 둘러보며,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풍경을 음미할 수 있습니다.
풍경을 음미하다 보면, 의도하지 않아도 무의식 속에 여러 생각들이 떠오릅니다. 여러 생각 중에 좋은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