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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이랑 Nov 25. 2021

보고 싶은 엘 군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어느덧 제대한 지 15년이 넘게 흘렀다. 남자들이 모이면 가장 많이 하는 이야기는 군대 이야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20대에는 군대 이야기를 정말 많이 했었다. 그만큼 군대에 대한 기억은 강렬한 것이다. 물론 시간이 흐른 나에게는 군대에 대한 기억은 이미 빛바랜 추억일 뿐이다.


 가장 빛나던 시기인 20대의 시간 중 2년을 가장 힘들고 치열하게 보냈다. 누구에게나 자신의 군생활이 가장 힘들었다고 한다. 친구와 함께 셋이 동반입대로 의무경찰을 지원했었다. 다행히 셋 다 합격했고 같은 부대로 가진 못했지만 가끔 시위 현장에서 마주치긴 했었다.


 엘 군을 만난 건 소대에 배치받고 나서였다. 군대 선임 중 하나였는데 초소 근무를 같이 나가게 되었다. 천안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한 엘 군은 같은 천안 출신의 나에게 호감을 보였다. 초소 근무의 로망은  근무 시간 외 간식을 사 먹을 수 있다는 것이었다.


엘 군은 웃으며 물었다.

 “먹고 싶은 거 있어? 다 말해. 형이 다 사줄게.”

 “괜찮습니다.”

 “사양하지 않아도 돼. 뭐든 말해봐.”


지나가던 길에 보았던 피자 학교의 피자 냄새에 먹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개념 없다는 소리를 들을까 싶어 눈치를 보다가 용기 내어 말했다. 평소라면 먹고 싶어 할 정도는 아니었을 텐데 음식에 대한 제한이 걸리고 활동량은 많아져서 계속 무언가 먹고 싶었다. 피자나 치킨 등 군대에서 쉽게 접하지 않는 음식에 대한 욕망이 커졌었다.


 “피자가 먹고 싶습니다.”

 “아, 정말?! 그럼 빵 먹을까? 형이 사실 돈이 없어. 정말 사주고 싶은데 다음에 사줄게.”

 “괜찮으시다면 제가 내겠습니다.”

 “정말 먹고 싶은가 보네. 그래도 형이랑 같이 나왔는데 아꼈다가 나중에 휴가 나가서 쓰고 이번에는 빵으로 때우자.”

 알고 보니 엘 군은 10년 지기에 보증을 서주었는데 친구가 빚을 갚다가 버거우니 도망을 가 버리는 바람에  어머니와 둘이 아등바등 갚아나갔다고 한다. 빚을 갚느라 3년 정도를 허비해서 다른 선임들보다 나이가 많았다. 나보다 3살 많은 형이었지만 4개월밖에 차이가 나지 않았다.


 힘든 시기를 서로 의지하며 보냈고 엘 군은 여러모로 나를 챙겨주었다. 후에 형편이 나아졌는지 정말 약속했던 피자도 사주었다. 엘 군이 외박을 나가게 되었는데  외박 며칠 전에 소대의 후임들에게 자신에게 10만 원을 투자하면 12만 5천원을 만들어서 주겠다며 투자를 하라고 했었다. 2박 3일 후에 2만 5천원을 더 준다고 하니 3일에 25%라는 믿기 어려운 고수익을 이야기해서 다들 내켜하진 않았다.


 그동안 잘 챙겨준 선임이었고 돈으로 장난칠 사람은 아니어서 10만 원을 투자했다. 당시 나를 포함해서 4명이 10만 원씩 투자했다. 다들 친했던 엘 군의 후임이었다. 그리고 정말 외박이 끝나고 돌아와서 약속했던 12만 5천 원을 주고 고맙다고 했다. 정말 약속한 돈을 받는 모습을 보고 다른 소대원들이 부러워했다. 하지만 이미 배는 떠나갔다가 돌아온 후였다.


 다들 투자받았던 돈을 어떻게 불렸는지 궁금해했다. 당시 인터넷에 상품권이 급매로 저렴하게 올라온 것을 보고 구매한 후 되팔면 시세차익을 볼 수 있을 거라고 생각을 했다고 했다고 한다. 본인 수수료를 빼고 우리에게 약속한 이익도 챙겨주었으니 실제 수익은 엘 군만이 알 것이다.


 다른 소대원들이 오해할까 이야기하지 않았다며 나에게만 이야기해주었는데 시세 차익을 본 후 판돈으로 삼아 경마장에서 경마도 하고 포커도 했는데 3일 사이에 본전의 몇 배를 불렸다고 했다. 대신 자는 것도 아까워서 잠도 안 자고 하느라 많이 피곤하다고 했다.


 그가 어느 날 로또를 어떻게 하면 확률이 높을지 계산했다며 2차 투자를 유치했다. 우리는 그의 이니셜을 따서 HS펀드라고 했다. 로또는 확률 게임인 데다가 운빨이라 그의

이야기만 듣고 진행하기엔 쉽지 않았다. 수익을 내 준 적이 있고 재미 삼아할 겸 만 원만 투자했다. 이번에는 참여 인원이 많아서 10명 정도 참여했는데 5등 하나 걸려서 5천 원이었다.


수익은 참패였지만 다들 일주를 기대하고 재미있었다. 5천 원은 나누기도 뭐하고 뭔가 사 먹기도 애매한 금액이었던 터라 랜던으로 다시 해보았지만 역시 꽝이었다. 엘 군은 제대하고 동대문에서 옷 가게에 취업했던 오토바이를 한 대 장만해서 출퇴근을 했었다. 나도 제대 후 몇 번 찾아가서 만났었다. 이제 빚을 거의 다 갚았다며 돈 모으는 일만 남았다고 했었다. 열심히 살던 그에게 마지막 연락이 왔다.


 “큰일 났어.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

 “형, 무슨 일이야?”

 “신호 대기 중에 잠깐 졸았는데 수입차를 뒤에서 받아버렸어.”

 “형은 괜찮아?”

 “난 괜찮은데.. 에휴. 난 왜 자꾸 이런 일만 생기지.”


 그 뒤로 엘 군과의 연락은 두절되었다. 핸드폰도 없는 번호라고 나오고 싸이월드도 탈퇴하였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시간이 지나서 페이스북을 하진 않을까 하고 찾아보았으나 찾을 수가 없었다. 그는 나에게 좋은 선임이자 좋은 형이었는데 그렇게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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