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출은 지능순이다.' 요즘 저희 회사 돌아가는 모습을 보고 있자면, '저 말의 총구가 드디어 나를 겨누고 있구나...'하는 생각이 절로 듭니다. 지방에 있는 사업장들이야 아직까진 인력 이탈적 측면에서 아무 이상 없지만, 그룹 사옥에서 고작 몇 개 층밖에 쓰지 않는 서울 본사에 바야흐로 '이직 러시'가 세차게 몰아친 까닭입니다. 본사 인원이 그리 많은 것도 아닌데, 아는 면면들이 직급의 고하를 가리지 않고 올 해 들어 계속해서 회사를 떠나가는 것을 보니, 본사 전반에 '이직은 거스를 수 없는 흐름이고, 탈출은 지능순이다'는 암묵적인 흐름이 조성된 것만 같습니다. 어수선해진 분위기에서 싱숭생숭한 제 마음을 스스로 다잡아야 하는 것은 덤입니다. 더 이상 장밋빛 전망이나 미래의 비전이 없어 보이는 회사에 남느냐 떠나느냐를 고민하며 말이죠.
* 퇴사짤의 정석 : 하지만 새로운 회사에서도 현생의 굴레와 속박은 계속되겠지
직원들은 왜 퇴사를 선택하는 것일까요? 대략 4가지 정도의 이유로 생각해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것은 바로 코로나로 인한 실적 악화, IT업계를 위시한 연봉 인상의 흐름에서 만족스럽지 못한 현재의 처우, 회사의 미래 성장 가능성에 대한 회의감, 그리고 인사정책을 포함한 직원들에게 만족감을 심어주지 못하는 기업문화입니다. 우선 코로나로 인한 실적 악화야 뭐, 어쩔 수 없었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물론 코로나 확산의 와중에도 좋은 실적을 내는 회사들이 많이 있었지만, 코로나로 인한 경영 악화는 저희 회사만 겪는 어려움도 아니었고, 회사 자체적으로도 통제 가능한 영역이 아니었기 때문이죠. 그렇기에 당해 성과급이 전년 대비 대폭 삭감되어 연말연초 주머니 사정이 두둑하지 못한 것은 아쉬운 일이었지만, 아마 이것이 현재 이직러시로 인한 퇴사의 주된 요인은 아닐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보다는 오히려, IT업계 개발자들의 연봉 인상에서 시작되어, 대기업들의 급여 인상으로까지 이어진 일련의 흐름이 현 직원들의 퇴사의 보다 주된 이유라 생각합니다.(사실 인플레이션 시대에서, 지금껏 급여가 물가에 맞춰 오르지 않은 것이 어찌보면 더 문제이기도 했습니다.) 다른 회사들의 연봉은 오르는데, 인상되지 않는 본인의 현재 연봉을 보고 있자면 '벼락거지'가 될 순 없다는 'FOMO(Fear Of Missing Out)' 증후군이 뒷목을 타고 스멀스멀 올라오기 마련이니까요. 대표이사에게 공개 서한을 통해 성과급 산정의 기준을 묻는 MZ세대들의 활약상은 뉴스 등을 통해 많이들 보고 들으셨으리라 생각합니다. 그 어느 때보다도 성과에 기반한 공정한 보상을 갈구하는 문화가 강력하게 작동하는 요즘인데, '내가 이렇게까지 일하는데 이것밖에 안줘?'라는 생각이 들게 해선 안되는 것이지요. 그리고 이직하기에도 얼마나 좋은 시기인가요? 재택근무와 비대면 면접이 활성화 된 지금, 자소서와 같은 서류를 제출하고, 비대면 화상 면접만 보면 경력직 전형이 끝나는 요즘, 회사 모르게 이직을 준비하기도 너무 좋습니다. 절대적인 업무량이 많은데, 상대적으로 널널한 다른 직원들과 동일한 급여와 성과급을 받는다면 너무도 짜증나는 일이죠. 업무량이 더 많고, 일 잘하는 직원들을 보다 더 잘 챙겨주는 회사로 가는 건 어찌보면 당연한 수순일겁니다. 항상 '돈'은 이직의 가장 주된 이유 중 하나일테니까요.
그래도 모두가 돈만 보고 움직이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업무에서의 자유도가 높고, 워라밸도 좋다면 사실 약간의 돈은 포기하더라도 지금의 생활에 충분히 만족할 수도 있죠. 하지만 회사의 '미래'를 생각했을 때 신사업적 측면에서 명확한 로드맵이 그려지지 않는다면 그 때 역시 이직을 생각하게 될 것입니다. 코로나로 인해 플랫폼과 같은 언택트 산업의 가치가 부각되는 반면, 정유∙철강∙건설∙조선 등과 같은 기존의 중후장대 컨택트 산업들은 더이상 기존의 밸류를 인정받지 못하는 요즘입니다. 특히 정유사와 같은 에너지 산업들은 전기차 및 수소산업 등의 부상으로 일종의 패러다임의 전환이라는 기로에 선 상황인 것 같습니다. 기존의 캐시카우를 담당하던, 회사의 든든한 자산들이, 이제는 회사의 성장을 저해하는 '좌초자산'의 성격을 띠게 될지도 모른다는 근원적인 불안감이 자라나고 있는 것이죠. 많은 사람들이 주식투자에 열중하는 시기이니, 이젠 다들 아실겁니다. PBR(주가순자산비율, 주가/주당 순자산가치)로 지금의 주가를 평가한다는 것은 너무나 올드한 일이죠. 비록 지금은 돈을 잘 벌고 있다 해도, 계속 실적이 우하향 할 것임이 예측되는 회사라면, 과연 직원들은 그래도 회사의 미래에 자신을 한번 걸어 볼까요? 아닐 겁니다. 그래도 과거의 명성으로 현 직장의 가치를 인정해 줄 때, 기회를 놓치지 않고 몸값을 올려 이직을 택할 가능성이 오히려 높겠죠. 그리고 그것이 실제로 일어나고 있기도 하구요. 열심히도 자신을 갈아넣는 회사인데 그 결과가 보이지 않는 미래라면, 그 노력들의 의미는 퇴색되고, 개인의 근로 의욕도 잃을 것임은 너무도 당연하지 않을까요.
지금까지 코로나로 인한 경영악화, 연봉인상의 사회흐름, 그리고 산업의 미래와 같은 회사 '대외적'인 요인들에서 이직의 요인들을 살펴봤다면, 이제 지적할 것은 '대내적' 요인입니다. "직원들은 그냥 언제건 갈아 치우는 부품일 뿐이고, 회사가 바라봐야 할 대상은 오직 주주님들 뿐이다."는 말은 우리같은 일반 직원들 입장에서는 정말이지 듣기 싫은 말입니다. (대부분의 경영학도들이 장래 어느 회사의 직원이 될 터인데, 경영학입문이나 회계원리 등의 초기 교과과정에서부터 경영자의 마인드를 대변하는 저 말을 배운다는 것이 참 아이러니하긴 합니다.) 하지만 아무리 회사가 더럽고 치사해도, 직원들이 회사에 나름 충성하는 이유는 바로 '돈'이죠. '곳간에서 인심난다'는 말처럼, 회사의 이익창출 능력이 활발하면, 직원들은 연말에 터질 성과급을 기대하며 불만을 삭이고 회사에 남습니다. 하지만 현재는 예전과 같은 성과급을 기대할 수 없는 산업상황. 그렇다면 개인적으로는 회사에서 직원들을 위한다는 명목의(비록 보여주기식이라 할 지라도), 어떠한 대/내외적 스탠스라도 보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사람이나 회사나 '어려울 때 어떻게 대응 하느냐'에 따라 그에 대한 평판이 갈리는 것처럼 말이죠.
사실 회사에 대한 직원들의 부정적 기류변화는 사소한 것들로부터 시작되는 법입니다. 어려운 경영환경을 강조하며 직원들의 성과급은 줄어들지만 임원들의 성과급은 오히려 높아진다던가, 부서별 성과나 본부(팀)별 고생의 정도를 무시하고 항상 동일하고 평등하게 산정되는 성과급이라던가, 초과근무가 잦은 부서에 대한 적절한 보상이 없다던가... 평소라면 참고 넘어갔을 것들이, 회사의 곳간이 비기 시작하면 불만으로 표출되기 마련입니다. 이런 직원들의 심리를 이해하고, '우리가 잘 케어하겠다'는 방향성을 제시하는 경영진이라도 있으면 좀 힘이 날 텐데, 그렇지도 않습니다. 그저 보수적으로 적당히 돈이 잘 들어오는 현재를 유지하며 '버티기'에 몰두할 뿐, 성과 창출을 위한 방향 제시를 하는 경영진이 없습니다. 우리의 본업이 향후 언젠가 사양산업이 될 것임은 꽤 자명하나, 그저 복지부동의 자세로, 모험하지 않고 현실을 즐기다 퇴직하면 그만이라 생각하나 봅니다. 이렇게 신사업에 대한 투자검토, 분석, 보고를 거듭하며 '간'만 보다가 서랍 깊숙이 들어간 안들만 대체 몇개인지 모르겠네요. 이렇게 우리가 버티고만 있을 때 다른 회사들은 치고나가며 시장에서 그 가치를 인정 받고 있으니, 직원들이 회사의 미래에 믿음을 갖지 못하고 이직을 선택하는 것은 지극히 합리적인 선택일 것입니다.
비단 경영진만의 문제는 아닐테죠. 인사 업무를 담당하는 직원들의 태도도 타 직원들의 불만을 가중시키는 주된 요인일 것입니다. 인사팀이 욕먹지 않는 회사가 어디 있겠냐 싶으면서도, 그럼에도 욕을 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너무 많아서 다 적지도 못하겠네요ㅎㅎ 아직도 저희 회사의 이직 러시는 현재 진행형입니다. 안정적인 산업 기반과 견조한 현금창출능력을 지닌 회사에서 이렇게 이직이 급증하는 자체가, 회사로서도 처음 겪는 미증유의 사태일테죠.(인사부문이 이직이 급증하는 것을 '문제'라 인식해야 '사태'라 할 수 있을진대, 아직 이를 문제라 인식하지 않고 있는 것을 보면, 그들은 일 잘하는 직원들이 떠나가는 것이 별 것 아니라 생각하나 봅니다.) 떠나는 직원들의 퇴사 계기는 대외환경의 변화에서 비롯된 것일수도, 바뀌지 않는 대내적 시스템에 질린 것에서 비롯된 것일 수도 있을 것이지만, 이직 러시가 실존하는 상황에서 더 이상 따지고 드는게 무슨 실익이 있을까 싶습니다.
그렇다면 이제 저 자신은 이 상황에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요. 사실 이직을 하려 하면 자소서를 제출하고, 면접을 반복하는 지난한 과정과, 새로 마주할 인간관계의 정립이 귀찮을 뿐이지(사실 이건 작은 문제는 아니지만), 이직 자체가 어려울 것은 없을 것 같긴 합니다. 지금의 이직 러시가 있기 전이라고, 회사에 대한 불만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거든요. 다들 아시다시피 재무부서는 특성상 야근이 많을 수밖에 없습니다. 칼퇴하는 부서는 언제나 칼퇴하고, 재무부서를 포함한 몇몇 부서들은 수시로 야근을 하는데, '포괄임금제'(a.k.a 공짜야근)라는 명목하에 동일한 임금을 받는다는 자체가 짜증나는 일이었죠. 암만 불만을 제기해도 인사쪽에서는(본인들이 항상 칼퇴하니) 개선의지가 없으니, 그저 '일한만큼 보상받는 회사'에서 일하고 싶은 생각은 항상 있긴 했습니다. 하지만 '직장인'으로서 '지금의 회사를 탈출한다고 해서 뭔가 크게 바뀔까?'하는 생각이 기저에 깔려 있는 것도 사실이긴 합니다. 그럼에도 아무것도 하지 않고 안주하는 것이 더 좋지 않은 선택일 수도 있음을 인식했고, 어떠한 행동을 취할 시점이 점점 다가오고 있음을 느끼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탈출은 지능순'이라는 웃자고(?) 하던 말이 요즘 들어 현실이 되어 가는 것을 보며, 이런 저런 생각에 싱숭생숭한 지금입니다.
역시... 맘에 안 들면 퇴사(이직)가 답인가??
"그래 봤자 결국 '회사원' 아니냐?"는 자조섞인 말이 이 글을 쓰면서도 머리를 맴돕니다. 연봉 1~2천 높여서 이직을 한다 해서 제 삶의 질이 크게 달라질까요? 좋다고 생각해서 찾아간 다른 회사에서는 직원들을 위하는 엄청난 기업문화가 과연 튼튼히 자리잡혀 있을까요? 아마 아닐 것입니다. 그저 비슷한 스트레스를 받으며 똑같은 업무를 할 것이라면, 돈이라도 조금 더 많이 받자는 생각으로 움직일 뿐일 겁니다. 큰 틀에서 체감상 뭐가 많이 바뀔리 없겠죠. 어찌 보면 개인의 전부라고도 볼 수 있는 '회사'라는 공간이지만, 달리 보면 그저 자그마한 '역할 놀이' 세계 속에서, 서로 비교하며 아웅다웅하는 제 자신의 모습이 초라해지는 요즘입니다. 과연 어떠한 선택을 내리는 것이 저 자신을 행복하게 만들어 줄 수 있을까요?
회사에서의 이직 바람을 타고, 저의 줏대없는 생각은 오늘도 갈피를 잡지 못하고 이리 저리 흔들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