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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삼박자 Aug 03. 2024

내 안의 내면아이

2024.2.21 저장글



그때가 언제더라.

학부 때였던 것도 같고

대학원 땐가? 그 전인가? 아무튼


학교 도서관 책장 사이 통로에 서서

손에 잡히는 책마다 눈으로 먹어치우던 그때.


 이상하게도 도서관이나 서점같은, 책이 많은 곳에 오래 서있으면 갑자기 급x이 마려워지는 이상한 증상이 는데, 

그걸 참아가며 눈에 불을 켜고

허기진 마음을 달래줄 글귀를 찾아 헤맸랬다.


그때 내 눈에 <상처받은 내면아이 치유> 라는 책이 나타났다.

존 브래드쇼 저, 오제은 역, 학지사


그 전까지는 내 마음의 허기를 잘 설명할 수 없었는데, 이 책에서 '상처받은 내면아이'라는 개념을 보는 순간 아 이거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그 자리에 선 채로,

이 책에 쓰여진 명상기법을 따라갔다.


책에는 전문가가 음성으로 멘트를 하며 내담자를 명상으로 유도하는 것이라 나와 있었지만,

나는 바로 그 순간에 내 내면아이 만나고 싶었다.

그래서 자리에 선 채로, 눈을 감았다 떴다 하며(책 속의 멘트를 읽어야 하니까) 홀로 명상에 빠져들었다.


그리고 얼마간의 시간이 흐른 뒤,

나는 도서관 통로에 서서 울고 있었다.


내 마음 속 시원한 바람이 부는 동굴 안에는

어렸을 때 차별받은(거라 믿은),

너무 무섭게 혼나며 기가 죽었던,

내 어린 시절, 상처받은 내면아이가 울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그 아이 등 뒤에, 든든한 어른의 모습으로 서서, 내게 슬픔을 준 대상에게 말했다.


이제 이 아이는 내가 지켜낼 거라고.

더이상 혼자 울고 있게 두지 않을 거라고.

내가 왔으니, 너는 더이상 내 내면아이를 슬프게 만들 수 없다고.

너 따위는 이제 아무것도 아니라고.

너는 작아지고 작아져서 없어져 버릴 거라고.


한참을 그렇게 말했다.

명상 속에서.


다시 시원한 바람이 나오는 동굴을 뒤로 하고 나와 부드러운 풀밭을 밟으며 현실로 돌아와 눈을 떴을 때,

나는 도서관 통로에 서서 울고 있었다.


떠올리고 나서 다시 생각해보니,

나는 그때 학부생이었던 것 같다.

그때도 나름 심리학도 였지만, 공부는 등한시했던.

진로에 대한 고민도 없이 아빠가 하라는대로

시험대비 학원이나 오가던, 철 없는 이십대.


여전히 당시 상황이 정확히 기억나진 않지만,

어쨌든 이 책을 읽으며 상처받은 어린 마음을 치유받았던 것이 나중에 인생 최악의 암흑기에 바닥을 친 후, 진지하게 진로를 정하는데 영향을 끼친, 결정적인 경험이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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