험담이 압도하는 세상 건너기

옥석을 가려내는 '매의 눈'

by 구쓰범프

나는 원래 말을 많이 하는 편이 아니다.

그러나 정적이 흐르는 묵음(pause) 상태 또한 견디지를 못한다. 간혹 이 어색함을 깨고자 말을 먼저 던지다 보면 실없는 소리가 나올 때도 있다. 괜한 소리를 했나 싶어 나중에 후회를 하기도 하지만, 머리보다 입이 먼저 작동하는 게 아닌가 싶다.




말을 꺼낼 때 가장 쉬운 것 중 하나가 남에 관한 이야기다.

"A는 요즘 어떻게 지내나?"라고 말을 꺼내면 상대방이 자연스럽게 말을 받으며 대화가 이어진다. 그런데 남 얘기를 하다 보면 그 사람의 허물을 들춰내야 이야기가 길어진다. 둘이 서로 공감하는 A의 허물이 있을 땐 날을 샐 수도 있다. 여기에 A가 둘의 경쟁자라도 되면 험담의 양과 속도는 엄청난 기세로 불어난다.


남을 험담하고 마음이 편할리는 없다. 하지만 그건 나중의 문제이고 당장은 어색함을 몰아내는데 이만한 먹잇감도 없다. 완벽하지 않으면 자신 또한 언젠가 피해자가 될 수 있음을 알면서도 입이 방정이니 어쩌랴.


이렇게 나온 말은 결국 돌고 돌아 A의 귀에 들어가게 마련이다. 낮말은 새가 듣고 밤말은 쥐가 듣는다는 속담이 존재하는 건 세상의 흐름이 그렇기 때문이다. 언젠가 그 피해자 리스트 안에 자신의 이름도 들어가 있을 걸 뻔히 알면서도 멈추지를 못한다.




사람에 대한 평가는 함부로 해서는 안된다. 개개인은 모두 장단점을 가지고 있어 어떤 눈으로 보느냐에 따라 단점이 부각되기도 하고, 장점이 강조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B는 다른 사람에 대한 평가를 많이 하는 편이라 그를 만나면 몰랐던 소식들을 전해 듣게 된다. 문제는 칭찬보다 험담을 하는 경우가 많아서 듣는 입장에서 귀가 편치 않다. 아무 감정도 없던 사람조차 그의 이야기를 한번 듣고 나면 알게 모르게 선입견을 갖게 되는 걸 경험한다. 그렇다고 B가 어디 가서 좋은 평을 듣는 것도 아니다. 결국 제 머리에 난 뿔은 못 보고 남의 뿔만 보고 시비를 거는 셈이다.


C는 까칠하기로 이름이 난 사람이다. 일의 완벽을 추구하고 조금이라도 빈틈이 있으면 호되게 야단을 치는 성향이라 사람들은 그를 대하기 두려워한다. 그런 C로부터 한 두 차례 싫은 소리를 듣지 않은 자가 없으니 사람들이 모인 자리에서 C는 늘 안주거리가 된다. 그런 점을 C도 잘 알고 있는 듯하지만 그는 일을 전투하듯 하는 자기 방식을 바꿀 기미가 없다. 그러니 그에 대한 험담과 악평도 끊이질 않는다. 간혹 그를 두둔하는 사람도 있긴 하지만 그들 또한 부정적인 면을 먼저 말하고 나중에 일부를 변호해 주는 정도일 뿐이다.


그런데 남들로부터 뒷담화의 대상이 되고 있는 C에게 불가사의한 점이 있다. 그는 남을 험하는 말을 하지 않는다. 업무적으로 상대의 잘못을 대놓고 지적하는 경우는 있어도, 뒤에서 비방을 하지는 않는다. 남들이 다른 사람을 욕해도 그는 그저 듣고 있다가 욕먹는 사람을 오히려 변호하는 말을 했으면 했지 덩달아 비난을 하는 일은 본 적이 없다.


자신은 남에게 욕먹는 것을 알면서도 스스로는 절대 남을 비방하지 않는 모습에서 수차례 궁금증을 가졌지만, '왜 그런가?'라고 질문을 던질 수가 없다. 남 얘기 하기 좋아하는 세상에 희귀종을 보존하고 싶은 마음이 그런 호기심을 억누르게 한다.


매번 그를 따라 해 보려 하지만 쉽지 않은 걸 보면, 보통 내공이 아니면 남 얘기 안 하는 게 쉬운 일은 아닌 것 같다.




조직 안에는 남을 헐뜯고 깎아내리는 것으로 상대를 이기려는 사람들이 존재한다. 경쟁 속에서 살아남아야 한다는 강박이 자기 경쟁력보다 상대의 장점을 희석시키고 단점을 부각하는데 치중하게 만든다.


정상적인 조직이라면 당연히 개인 경쟁력이 뛰어난 사람이 인정받는 게 맞지만, 그렇지 못한 조직에선 상식보다 비상식이 더 활개를 치는 법이다. 그래서 비정상적인 조직이라는 평가가 따라다니고 그런 사람들이 중심을 차지하는 일이 발생한다.


이럴 때 필요한 게 있다. '매의 눈'으로 정상과 비정상을 가려내는 능력이다.


특히 리더에게는 중심을 잡고 인재의 옥석을 가려낼 줄 아는 선구안이 요구되지만, 많은 사람들 속에서 완벽하게 좋은 사람을 구별해 낸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다. 그래서 유능한 리더들은 스스로 모든 걸 해결하려 하기보다 그런 능력을 가진 참모를 곁에 두고 그의 천거를 거쳐서 새 사람을 받아들이곤 했다.


조선시대 정승 황희는 태종과 세종대에 적재적소에 유능한 인물을 천거하여 왕들로 하여금 활용케 한 점에서 공로가 큰 인물이다.


자신도 태종이 첫째 아들 양녕을 폐위하는 데 반대하다 '세자에게 아부하려는 자'라는 모함을 받아 관직에서 추방되고 유배생활까지 한 적이 있다.


다행히 그의 재능을 아깝게 여긴 태종이 죽기 3개월 전에 다시 불러 세종에게 그를 중용할 것을 당부한다. 이로부터 20여 년간 정승의 자리를 맡은 황희는 주변의 오해와 반대에도 굽히지 않고 평가가 엇갈리던 허조, 최윤덕, 안승선, 그리고 장영실과 같은 인물들을 뚝심 있게 추천하여 왕을 충실히 보좌하도록 만든다. 세종 또한 이들의 단점을 알지만 황희의 눈을 믿고 그들이 공을 세워 허물을 덮을 수 있도록 보호해 준다.




예나 지금이나 남과 비교하기를 즐겨하는 인간은 자신을 높이려는 노력도 하지만 한편으론 남을 낮추려는 것도 게을리하지 않는다. 그래야 두배로 격차를 벌릴 수 있어서인가.


그러니 험담과 비방이 난무하는 세상에 그나마 제대로 된 인재를 가려내는 눈조차 없으면, 헛것을 보게 되고 거짓으로 포장된 자가 성공하는 사회가 된다. 이런 사회나 조직은 오래갈 수 없다.


우선은 남을 헐뜯는 말부터 경계해야 할 일이고, 다음은 그 조차도 걸러내는 눈을 가진 이들이 많아져야 건강한 조직, 바른 사회로 갈 수 있다.


할 말이 없으면 묵음(pause)이 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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