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심타법

진정한 리드

by 구쓰범프

다수의 사람이 모이는 곳에는 바람 잘 날이 없다.

나는 한 모임의 총무를 맡고 있다. 주로 하는 일이 회원들로부터 회비를 받고 관리하면서, 해마다 서너 차례의 행사를 준비하고 주관하는 일이다. 얼마 전에도 두 번의 행사를 연달아 준비하면서 흥미로운 경험을 했다.


행사를 준비하다 보면 사람들의 다양한 조언과 제안, 요구가 들어온다. 단체로 이동하는 버스 출발지를 회원들이 가장 접근하기 쉬운 양재와 분당으로 정해서 공지를 했다. 그랬더니 이런 지적이 들어온다.


조언) 출발하는 장소가 통상으로 생각하는 남쪽 방향이 아니라 북쪽 방향에 있으니 사람들이 착각하지

않도록 한번 더 알려주는 게 좋겠다.

제안) 나는 버스가 지나가는 중간쯤에서 타고 싶으니 그곳을 경유해 달라.

요구) 우리 집은 ㅇㅇ지역인데 거기서 태워달라.


예전 같았으면, 첫 번째 조언에 대해서는 다들 알아서 찾아올 텐데 또 공지를 해줘야 하나? 하는 귀차니즘이 작용했을 것이다. 두 번째 제안은 형평성에 위배된다는 논리를 들어 두 곳 중의 한 군데서 탑승하도록 권했을게 뻔하다. 세 번째 사람에게는 조목조목 왜 안되는지를 들어 거절했을 터이다.


하지만, 이번엔 좀 달랐다. 첫 번째는 내가 생각해도 그럴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반드시 네이버 지도를 통해 위치를 확인하고 탑승하라'고 재차 공지를 했다. 두 번째는 솔직히 받아들이기가 좀 마뜩지 않았다. 다른 사람들은 출발지로 이동해서 탑승하는데 자기만 가까운 곳에서 타겠다는 마음이 좀 밉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어차피 지나가는 길이니 그냥 받아들여서 버스를 경유하게 했다. 세 번째 요구는 좀 어처구니가 없었다. 눈치가 없는 건지 몽니를 부리는 건지 제안 자체가 황당하다는 생각에 아예 농담으로 받아들이고 대꾸를 안했다.


그런데 이렇게 정리를 하고나니 아무 불만이 없고 내 마음도 불편하지 않다. 만약 일일이 따지고 규칙을 강조했다면, 괜한 감정의 골만 깊어졌을 것이다. 이처럼 때로는 칼 같은 원칙보다 모르는 척 넘어가는 무딘 해결책이 더 나을 때도 있다. 물론 행사에 방해가 되거나 문제가 될만한 사안이라면 심각하게 반응하고 면밀하게 검토해야 한다. 하지만 대세에 지장이 없는 일이라면 그저 '이런들 어떠하리 저런들 어떠하리' 하고 받아들이는 것도 나쁘지 않다.




직장에서도 비슷한 일이 벌어진다.

중요한 일이 있고 사소한 일이 있게 마련이다. 어떤 리더는 중요하지 않은 일에 많은 시간과 정력, 그리고 감정을 낭비하는가 하면 어떤 리더는 철저하게 중요한 일에만 집중하는 경향을 보인다. 당연히 후자가 바람직하다는 것은 삼척동자도 다 안다. 그런데 희한하게도 꼭 반대로 행하는 리더들이 있다.


A는 중요한 일과 사소한 일을 잘 구별하지 못하는 듯한 행동을 한다. 어떤 날은 중요한 일에 신경을 쓰다가도 어떤 날은 지극히 사소한 일에 매달린다. 주변 사람들이 '그 시간에 차라리 다른 일을 도와주면 좋겠다'라고 할 정도로 일의 경중을 제대로 구분하지 못한다.


그러다 보니 그는 늘 얼굴에 수심이 가득하다. 믿고 맡겨야 할 것도 잘 못 맡기고 어떤 것에 신경을 써야 하는지를 헷갈려하다 보니 늘 불안한 것이다. 같이 일하는 사람들은 그가 언제 다시 나타날지 노심초사한다. 나타나면 또 난데없이 어떤 소리를 할지 걱정되기 때문이다


B는 그 반대다. 항상 중요한 것을 먼저 강조하고 챙겨야 할 것을 알려주고는 빠진다. 그리고 사소한 것은 '알아서 결정하라.'라고 선언을 해 버린다. 속으로는 그도 때때로 불안함을 느끼기도 한다. 하지만 자기가 한 말이 있으니 끝까지 참고 견딘다. 이럴수록 함께 일하는 사람들은 자신들이 신경을 쓰고 해야 할 일을 명확히 인지하고 스스로 결정할 부분에 책임감을 갖고 임하게 된다. 의욕이 하늘을 찌르는 건 덤이다.




최근 인기를 끌고 있는 '신인감독 김연경'이라는 TV프로그램이 있다. '배구가 저렇게 작전이 통하는 거였구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감독의 생각대로 플레이가 이루어지고 성공을 하는 모습이 신기하기까지 하다. 게다가 김연경 팀을 상대하는 팀의 감독들이 보여주는 리더십도 제각각이어서 이걸 관찰하는 재미 또한 쏠쏠하다.


프로그램에 나오는 C감독은 코트 옆에서 선수 개개인에게 매 순간 수비와 공격 일거수일투족을 목청높여 지시한다. 마치 경기의 처음과 끝을 혼자 다 하는 것처럼 보일 정도다. 그런 지도 방식으로 단기간에 팀의 우승을 이끈 감독이라 하니 뭐라 말하기는 조심스럽지만 좀 다른 생각이 드는 것도 솔직한 심정이다.


과연 감독이 모든 것을 저렇게 관여하면 선수들이 스스로 할 수 있는 건 무엇일까?. 모든 경기에 이런 모습이 반복되어 '지시대로만 해도 이길 수 있다'는 생각에 빠지는 순간, 이보다 더 큰 낭패가 없다. 방송에서야 편집이라는 기술로 족집게처럼 집어내는 신기를 보여줄 수 있지만, 현실에서 모든 장면을 예측한다는 건 불가능한 이야기다.


한편, D감독은 매 순간을 일일이 지시하기보다 코트 밖에서 경기를 지켜보며 전체적인 흐름을 본다. 그리고 작전 타임에 부족한 점과 상대에 맞는 대응 요령을 알려준다. 하긴 코트 안에서 벌어지는 경우의 수가 한두 가지가 아닐진대, 그 모든 것을 감독의 입에 의존할 수는 없는 일이다. 오히려 이렇게 하는 과정이 선수들에게는 상황에 대처하는 능력을 키워주고 더 크게 성장하도록 만드는 길이 아닐까?




리더는 들어갈 때와 물러설 때를 알아야 한다.

한 없이 관여하며 경험을 일러주려 하기보다, 적당히 알려주고 스스로 깨달아 가게 해 주는 능력이 있다면 그걸 발휘해 보는 것도 좋겠다. 하나부터 열까지 지시받은 대로 일하는 걸 당연하게 여기는 부하는 리더가 없을 때 스스로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허수아비가 된다.


특히 리더에게 있어 중요한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을 구분하는 일은 끊임없이 갈고 닦아야 하는 역량이다. '그걸 구분 못하겠느냐'고 우습게 볼지 모르나 그건 자신의 착각일 뿐인 경우가 많다. 부하의 입장에서 보면 '이건 내가 할 일인데 왜 이것까지 자기가 하지?' 하는 생각이 드는 일이 드물지 않다. 상사가 선을 넘은 것이다. 그건 도와주는 것이 아니라 방해하고 간섭하는 것이 된다. 과도한 개입은 갈등과 무력감을 낳게 되어 있다.




오래전 선배가 해준 말이 있다. '앞으로 상사의 위치가 되거든 절대로 부하의 일을 뺏어서 하는 사람이 되지 말라.'는 것이었다. 그때는 '이게 무슨 말인가? 상사가 되면 당연히 상사의 일을 하지, 누가 부하의 일을 뺏는단 말인가?' 하고 의문을 가졌다.


하지만 오랜 시간이 흐르면서 부하의 일을 뺏어서 하는 사람이 의외로 많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들은 익숙하고 경험한 부분에서 자신의 역량을 보여주고 싶어서 그러는 것이겠지만, 사실 이게 조직의 입장에선 도움이 되지 않는 일이다. 상사는 상사의 일을, 부하는 부하의 일을 하라고 상사와 부하가 있는 것이니 말이다.




'피터의 법칙'이란 게 있다.

승진을 했지만 이전 지위의 일을 하고 있을 때를 이르는 말이다. 이런 리더가 조직에 많을수록 앞으로 나아가기보다 그 자리에 머물거나 퇴보하는 조직이 되기 쉽다. 하지만 이걸 부하들이 일깨워 줄 수는 없다. 자칫 저항하는 모습으로 비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바른 리더라면 스스로 자신이 하는 일을 돌아볼 일이다. 내가 부하의 일을 빼앗아하면서 희열을 느끼고 있는 것은 아닌지 말이다.


모르는 척하는 건 역으로 강한 신뢰를 느끼게 할 수 있다. 리더의 역할은 직접 잡아끌기보다 성장이 일어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 주고 빠져주는 것이 아닐까.


때로는 무심한 것도 괜찮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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