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리길도 한 걸음부터
오늘도 아내는 변함없이 식탁 한쪽에 앉아 그림을 그리고 있다.
주방에 물을 마시러 간 나는 넋을 놓고 서서 그림을 바라본다. 처음엔 연필선조차 흔들렸던 것 같은데 이제는 섬세한 그림자와 질감까지 자연스럽게 표현해 낸다. 하긴 벌써 백화점 문화센터에서 그림을 시작한 지 9년째다.
요즘은 그림 수업에 가면 "저도 나중에 이만큼 그릴 수 있을까요?"하고 물어보는 사람까지 생겼다고 한다. 그러면 아내는 "그럼요. 시작을 하셨으니 금방 잘 그리실 거예요"라고 대답을 해 준단다. '시작을 하셨으니'라는 말이 재밌다.
우리는 늘 모든 것을 다 하고 사는 것 같아도 막상 들여다보면 시작조차 하지 못하고 지나 보내는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매번 합리적인(?) 이유를 들어 넘어가지만, 그렇게 미룬 시작이 생각보다 많다는 걸 깨달을 때가 있다. 더 한심한 건 깨달았을 때라도 시작하면 되었을 일을 그때마저도 지나쳐 결국 가슴을 치고 후회하는 일이 발생한다.
특히 남과 동일한 선상에 서 있었지만, 상대방은 시작을 하고 나는 시작을 하지 않았는데 시간이 흐르고 나서 보니 그와 나의 격차가 범접할 수 조차 없는 수준으로 벌어져 있을 때, 우리는 후회스러운 마음을 달래느라 밤잠을 설친다.
소유하고 있는 시간은 동일하지만 누구는 무언가를 하는 데 사용하고 누구는 무심히 흘려보낸다. 시간과 노력이 들어간 축적의 시간은 무엇이든 결과물을 만들어 내게 되어 있다. 그래서 무섭다. 이런 단순한 원리를 알면서도 사람들은 막상 실행 앞에 서면 주저함이 앞선다.
실천을 위해서는 일정 부분 현재의 삶을 양보해야 하기 때문이다. 시간, 돈, 관계 그리고 때로는 약간의 자존심까지. 하지만 선뜻 내놓기가 생각보다 쉽지 않으니 자연스럽게 이유를 만든다. '바쁜 시간이 조금 지나면 하자', '준비를 더해서 시작하자'와 같은 핑계를 대지만 시간이 흘러도 상황은 나아지지 않는다. 그 상황은 자신이 마음 속에서 만든 것이기 때문이다. 스스로 변하지 않는 한, 상황은 영원히 바뀌지 않고 당연히 실행은 뒷전으로 밀린다.
하다못해 피트니스에 등록하고 다니는 것도 시간과 돈을 집어넣어야 실행이 된다. 그러니 그 앞에서 우물쭈물하다가 결국 적당히 핑계를 대고 한발 물러서는 게 대다수 사람들의 모습이다. 당장은 별일이 없지만 그렇게 보낸 시간은 성인병으로 다가온다. 그제서 후회해 본들 지나간 시간과 건강을 되돌릴 수는 없다.
내가 아는 청년 A는 7년을 보낸 안정적인 직장을 접고 자신이 꿈꿔 오던 일을 하겠다고 나섰다. 매달 통장에 꽂히는 돈은 직장생활을 할 때와 비교가 안되지만 지금이 너무 행복하다고 한다. 아직 쓴 맛을 덜 보아서 그런 생각을 할 수도 있겠지만 결심을 실천으로 옮긴 자신에 대한 자부심이 그를 지탱해 주고 있는 게 아닐까.
미래에 어떤 상황을 맞이하게 될지 아무도 모르기에 그가 한 선택의 성공여부도 알 길이 없다. 하지만 하고 싶었던 일을 끝내 시도하지 못한 사람의 후회보다는 낫지 않을까 추측을 해 본다.
B는 승진에서 멀어지면서부터 퇴직 이후의 삶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그는 자신이 남을 가르치는 데 흥미가 있다는 것을 알고 강사가 되기로 마음을 먹는다. 회사에 있는 동안 교육부서에 부탁을 하여 사내 강사로 활동을 하는데, 누구보다도 열정적으로 임하니 회사도 역할을 계속 맡겨 준다.
어느 정도 실력이 쌓이자 자신감을 갖고 회사를 나와 프리랜서 강사로 전국을 누비기 시작한다. 페이스북에 올라오는 그의 활약을 보면 해가 갈수록 풍부해지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얼마 전에는 그동안 해 온 강의를 바탕으로 책도 한 권 출간을 했다. 처음에는 크게 주목하지 않았던 사람들도 지금은 그를 부러워한다.
고려 말, 명나라가 요동에 철령위를 설치하여 관할하겠다고 통고를 해오자, 안 그래도 명의 무리한 요구에 불만이 쌓여 가던 우왕과 최영을 비롯한 대신들은 요동 정벌을 기획한다. 논의 과정에서 이성계는 작은 나라가 큰 나라에 대항하는 것은 옳지 않고, 여름철의 군사 동원은 부적절하다는 등의 4 불가론을 들어 반대한다. 그러나 그의 간언은 받아들여지지 않고 결국 요동 정벌군의 총사령관이 되어 출정을 한다.
압록강 하류의 위화도에 도착했을 때, 큰 비를 만나 도강이 어려워지자 두 차례 출병 취소를 요청했지만 이마저 거부당한다. 이때 그는 회군을 결심하고 군대를 돌려 개경으로 향한다. 왕명을 거역하는 행위였다. 실패하면 역적으로 죽음을 맞이할 일이었기에 망설임이 없었을 리 없다. 하지만 목숨을 건 실행이 그를 조선 500년 역사의 개국왕으로 만들었다.
직장에서도 도전해야 할 일을 부딪치지 않고 늘 돌아가는 길을 택하는 리더들이 있다. 마치 실행할 것처럼 부하들에게 많은 검토를 시키지만, 결국 그 서류들은 그의 책상 속에서 잠자고 당장은 안전하고 무리가 따르지 않는 길로 가 버린다.
나중에 실행을 안 한 것이 문제가 되면 이런 리더들이 하는 말이 있다. '그때 더 강하게 주장을 하지 그랬냐'는 것이다. 반대로 실행을 안 한 것이 도움이 되는 경우엔 슬그머니 서류를 내놓으며 '이럴까 봐 내가 막고 있었다'라고 목소리를 높인다.
이런 리더들이 조직의 상층부를 차지하고 있으면 당장은 별일이 없는 것처럼 보여도 조직은 곳곳에서 무사안일주의로 치닫는다. 시간이 흘러서 돌아보면 너무 먼 길을 돌아온 게 보이지만 그땐 어찌해 볼 수가 없다.
해 보지도 않고 당하면 그것만큼 억울한 게 없다. 하지만 해 보기라도 하면 최소한 한(恨)이 되지는 않는다. 성공과 실패는 종이 한 장 차이라고 하는데 그것도 실행을 했을 때 얘기다. 실천을 하지 않으면 아예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모름지기 성공을 원한다면 일단 실행부터 하고 보자.
천리길도 한 걸음부터라는 생각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