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와 변화의 사이에서
느리고, 조용히, 심심하게
며칠 전 신문 인터뷰에서 전 LG인화원장을 지낸 이병남 원장이 한 말이다. 그는 치열하고 치밀하고 집요하게(치치집) 살아왔던 시절을 접고, 자신의 삶을 찾기 위해 느조심(느리고, 조용히, 심심하게)의 마음으로 살아가면서 오늘도 성장하고 있다고 말한다(중앙일보, 2025.10.22).
그리고 인정 욕구를 사회나 남의 시선보다 자신의 성장을 위한 쓸모에 맞추고, 남이 필요로 하는 사람이 되기 위해 스스로 작아지려고 노력하다 보니 삶이 달라졌다는 말도 덧붙인다.
변할 수만 있다면, 그것도 바람직한 방향으로 변할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하지만 익숙한 것들과 결별하는 건 그리 만만한 일이 아니다. 특히 스스로의 힘으로 성공을 경험한 사람에게는 나름의 신념이 자리 잡기 마련이어서 이걸 바꾸는 게 쉬운 일이 아니다.
A는 철저하게 자기 이익을 따지는 사람이다. 자신에게 이익이 되면 입안의 혀처럼 굴다가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판단하면 뒤도 안 돌아보는 행태를 보인다. 자신의 행동을 남이 어떻게 생각하는지 알고 행하는지 모르겠지만, 당해 본 사람들은 어금니를 깨물게 된다.
그런 방식으로 조직에서 영원할 줄 알았던 A도 어느덧 은퇴를 앞두고 있다. 그리고 연락이 왔다. 한번 모시고 싶다 한다. 모신다는 의미가 뭔지도 모호하고 별로 내키지는 않았지만, 과거 일은 과거 일이고 이 사람도 약해졌구나 하는 짠한 생각에 만나기로 한다.
그런데 오랜만에 만난 A가 보여주는 모습은 과거와 별반 다르지 않다. 말로는 호기로운데 뭔가를 찾고 있는 눈치고 과거 자신이 저지른 잘못들은 까맣게 잊은 듯했다. 심지어 만나자고 해 놓고 밥값을 낼 시점엔 화장실을 다녀오겠다며 내뺀다.
헛웃음이 절로 나오게 만드는 행동을 계속하니 변했을 거란 기대는 어느새 허공으로 흩어진다. '애초부터 변했을 거라 기대하고 나온 게 잘못이었나?' 하는 생각으로 마무리하고 만다.
B는 어딜 가나 남을 가르치려 드는 사람이다. 자기 맘에 안 들면 지적하지 않고는 직성이 안 풀려 마음에 들 때까지 같은 말을 계속 반복한다. 한 번은 하도 심해서 '그만 좀 하면 안 되나?' 하고 면박 아닌 면박을 주었더니 그제야 입을 다문다.
치열하고 치밀하게 살던 시절의 습관과 태도가 몸과 마음에서 떨어지질 않고 있는 거다. 아직도 현직에 있을 때의 지위로 착각하고 지적과 훈계를 계속 휘두르며 다닌다. 자신은 정의롭고 세상에 유익한 일을 한다 생각할지 모르나 자신이 생활한 조직과 지금 접하는 세계가 다른 곳임은 아직 깨닫지 못하고 있는 느낌이다.
그런데 이런 모습들은 스스로 깨닫고 벗겨내지 않으면 누구도 대신 바꿔줄 수가 없다.
솔직히 나 역시 다르지 않다. 내 생각과 맞지 않으면 논쟁을 피하지 않는 편이라 사람들 사이에선 불편한 축에 드는 편이다. 스스로는 부드럽고 여유 있는 모습으로 변하길 바란다고 하지만 시도 때도 없이 드러나는 낡은 습관을 보면 '아직 멀었구나'하는 생각이 드는 게 한두 번이 아니다.
그때마다 반성 모드로 전환해 보지만, 성장하지 못하고 제자리를 맴돌고 있는 모습이 답답하기 짝이 없다. '사람은 변하지 않는다'는 것을 스스로 증명하고 있는 꼴이다.
얼마 전 사람을 소개해 달라는 부탁을 받았다. 생각나는 후배가 있어 추천을 했더니 대뜸 '그 사람은 아랫사람들에게 평판이 안 좋아서...' 하고 정중히 거절을 한다. 평소 신중하고 조용한 성격이라 잘 맞겠다 싶어 소개를 한 건데 과거의 평판이 발목을 잡은 것이다. 지금은 다를 거라고 얘기를 할 수도 없는 게 장담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옛 모습이 다시 나오면 '거 봐라'하는 소리만 들을게 뻔하니 말이다.
갈수록 사람을 쓸 때 평판조회를 중요시하는 것을 보면 역시 사람은 한번 보여준 모습에서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고 보는 게 일반적인 시선인가 보다.
프로축구 울산 구단의 감독이 해임되면서 말이 많다. 선수들이 왕따 시켜서 자신을 몰아냈다는 감독의 말이 언론을 타자마자, 같은 팀의 유명 선수가 골을 넣고는 감독을 비꼬는 세리머니를 해서 도마에 올랐다.
그런데 이 해프닝이 단초가 되어 그 선수의 과거 문제 행동들이 줄줄이 소환된다. 오래 전의 잘못된 행동들이 회자되는 걸 보면 시간이 많이 흘렀음에도 그는 변하지 않은 것이다.
그리고 결정적인 순간에 자신의 본모습이 모두에게 드러나버린 것이다. 이 선수를 봐도 '사람은 안 변하는가 보다'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렇다고 변하지 않는 것을 무조건 탓할 일만도 아니다. 좋은 생각과 행동이 변하지 않는 것은 오히려 칭송받아 마땅하기 때문이다.
조선 세종 때 정갑손이라는 인물이 있었다. 그의 부친 정흠지는 김종서와 함께 6진을 개척한 공신이었는데 곧은 말과 행동으로 널리 알려진 사람이다. 그 피를 이어받았는지 정갑손도 말과 일을 모두 정직하게 했다고 한다. 어느 날, 이조판서가 자기 아들을 무리하게 승진시키려 하자, 정갑손은 어전회의에서 '인사 담당자가 이 모양이니 어찌 나라의 기강이 바로 서겠습니까?'라고 하며 그의 잘못을 통렬히 비판한다. 사헌부 감찰이 되어서는 전국에서 올라온 쌀 중에서 조정에 바치고 남은 것을 사헌부 관원들의 회식비로 쓰던 오랜 관행을 깨고 국고에 집어넣은 일화로도 유명하다. 그는 언제, 어떤 자리에 있건 한결같이 공직자의 자세를 잃지 않는 모습으로 일관한 것이다.
하나를 보면 열을 안다 하듯이 그의 과거를 보면 앞으로의 행보가 대충 그려지는 것도 같은 이치일 테다.
인성과 태도는 삶을 거치면서 형성되는 그 사람의 특징이다. 시간이 흐를수록 몸과 마음에 녹아들어 어떤 상황에서든 비슷하게 반응하는 게 이상하지 않다. 하루아침에 새로운 모습이 나타나리라고 기대하는 건 희망일 뿐 대체로 본모습을 다시 보게 될 뿐이다.
리더는 이러한 인간의 본성을 어느 정도 감안해서 사람을 기용할 필요가 있다. 지금의 모습이 전부가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으로 바라보아야 실수를 줄일 수 있다. 누군가를 써야 한다면 그의 과거를 면밀히 살펴보는 것도 괜찮은 방법이다.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는 말처럼, 과거에 배우고 익힌 것이 그의 미래에도 함께 할 가능성이 농후하기 때문이다. 아니면 도박을 하는 심정으로 리스크를 감수해야 한다.
좋은 사람을 써도 언제 위험한 일이 발생할지 모르는데, 과거 기록이 안 좋은 사람을 덥석 쓴다는 건 호기가 아니라 리스크 관리가 안 되는 것이라고 보아야 한다.
과거의 행적으로 오늘을 평가받는 것이 가혹하다고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스스로 고쳐야 할 부분을 끝까지 깨닫지 못하고 외면한다면, 지속적으로 남에게 해를 끼칠 수 있으므로 이를 경계해야 함을 이르는 것이다.
자신의 과거가 떳떳하다면 그것을 유지하면 될 일이고, 그렇지 않다면 반성하고 고치기를 계속해야 하지 않을까. 그게 어지간히 쉽지 않은 일이지만 그렇게라도 해야 중간이라도 갈까 말까다.
'느리고, 조용히, 심심하게 그리고 바로잡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