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택의 문제일까
모임의 멤버 중에 카톡을 쓰지 않는 사람이 있다.
이유를 물었더니 그냥 안 쓴다고 한다.
개인의 판단이고 꼬치꼬치 따져 물을 일도 아니어서 더 이상의 설왕설래는 없다. 다만, 단체 공지를 할 때마다 번거로운 일이 반복되니, 아쉬운 마음이 드는 건 인지상정이다.
물론 단체 대화방의 알림이 늘 반가운 것만은 아니다. 오가는 메시지가 나와 직접 연관이 없는 경우도 있고, 경조사 댓글로 쉴 새 없이 울리는 알림에 피로감을 느낄 때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시간과 수고를 줄여주는 이로움이 더 크니, 몇몇 아쉬움쯤은 아량을 발휘하며 견딘다.
이런 일상의 편린들은 어느 한쪽의 옳고 그름을 가리기보다, 시시각각 변하는 세상에 어떻게 적응해야 하는가를 생각하게 하는 단서가 된다.
사회 속에서 생활하며 착각하면 안 되는 것이 있다. 세상에 변하지 않고 살아남을 수 있는 것은 없다는 사실이다. 변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것조차 실상은 작은 변화들을 받아들이며 생존을 이어간다.
폭설이 내리면 큰 나무의 가지들이 수난을 겪는다. 나뭇가지 위에 차곡차곡 쌓이는 눈의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결국 부러지고 만다. 반면 가늘고 여린 나무의 가지들은 휘어지고 늘어지며 눈의 무게를 상쇄한다. 눈이라는 상황에 맞게 처신하며 살아남는 것이다.
이것은 비단 나무만이 아니라 우리 주변의 자연이 우리에게 늘 경고하는 메시지다. 식물이건 동물이건, 강한 것이 살아남는 것이 아니라 유연하게 변하는 것이 살아남는다고.
나이를 먹어도 변화를 잘 수용하고 배우려 하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저항하고 변하지 않으려는 사람들이 있다. 생각이 그러하니 행동도 그와 다르지 않다. 천편일률적으로 시류에 편승할 필요는 없지만, 지나친 저항으로 남에게 피해를 끼치는 정도에 까지 이르는 건 곤란하다.
변하는 데는 노력이 필요하다. 하다못해 키오스크를 사용하는 것도 익혀야 하고, 때로는 그보다 더한 것도 배워야 할 때가 있다. 그저 우두커니 서 있는다고 남이 알아서 해 주지 않는다. 한두 번도 아니고 계속 남에게 의지하는 게으름이 지나치면 민폐에 이르고 만다.
얼마 전 젊은 부부가 시골의 낡은 농가 주택을 사서 개조한 집을 소개하는 방송을 봤다. 개조 전의 집은 말 그대로 폐허나 다름없었다. 그런데 개조를 하면서 옛 것은 옛 것대로 살리고, 곳곳에 현대적 요소를 섞어 놓으니, 멋스러움과 편리함이 고급스러운 조화를 이룬다.
사람도 크게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다. 고수가 가진 오랜 경험과 연륜의 숨결은 남기되, 그 위에 세상의 변화를 입히면 한결 멋스럽지 않을까.
새로운 것을 배우고 익히다 보면 시간 가는 줄 모르게 재미있는 경험도 하게 된다. 요즘은 새로운 기술조차도 사용자 편의를 중시하기 때문에 과거보다 접근하기도, 진입하기도 쉬운 편이다. 처음이 낯설어서 마음과 실행이 따로 놀뿐, 넘지 못할 산은 아닌 것이다.
멈추지 않는 자에게 주어지는 선물이 있다. 바로 "성장"이다. 배우고 익히는 동안 활력이 돌고, 그 활력은 "성장"을 가져다준다. 그러니 고단하다 생각하기보다 나를 풍요롭게 한다는 생각으로 임해서 보람과 즐거움을 누려보기 바란다.
하기 싫은 감정을 잠시 억누르고, 한번 들어가 보라. 새로운 세상이 열릴 것이다.
코미디언 이주일이 한 말이 있다.
"일단 한번 와 보시라니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