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anger)의 가벼움

측은지심으로 넘어서라

by 구쓰범프

제본한 논문을 찾아오는 데 처음 맡겼을 때와 가격이 차이가 난다.

일단 결제는 하고 왔는데 아무래도 이상해서 예전 결제 내역을 확인해 보니 단가가 다른 게 맞다.


궁금해서 문의를 했더니 부수가 적어 단가가 올라갔단다. 그렇게 예상을 하긴 했지만 미리 알지 못했다는 게 부아가 나서 문자로 "좀 아쉽네요. 미리 알았으면 아예 많은 부수를 할 걸 그랬습니다."라고 보냈다. 조심스럽게 쓰려고 했지만 상대는 기분이 나빴을 투로 쓰인 문자가 가 버린 것이다.


상대로부터 답변은 없다.


그러고 보니 '어차피 결론은 변함이 없을 일이었구나' 싶다. '그러면 뭐 하러 상대방 기분 나쁘게 그런 문자를 보냈을까' 하고 괜한 행동을 한 걸 오히려 더 후회한다.


귀책사유를 따져보면 확인을 안 한 내 잘못이 크다. 그런데도 책임을 상대에게 돌리며 불편한 심사를 드러낸 것이다.


화가 났어도 참고 지나갔으면 어땠을까. 오히려 더 화가 났을까? 아니면 슬그머니 수그러 들었을까? 시간이 조금 지나자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살다 보면 불편한 상황들에 처하는 경우가 있다. 아는 사람과의 관계에서도, 모르는 사람을 보고도, 사회 현상을 접하면서도 불만스러운 감정이 느껴질 때 우리는 '화'를 품는다.


다만 어떤 사람은 화를 참고, 어떤 사람은 화를 버럭 내면서 감정을 토해낸다.


화는 터트리는 순간 속이 후련할 수는 있을지 몰라도 대부분 자신의 체면을 깎는 경우가 많다. 싸움을 해도 더 화를 내고 달려드는 축이 논리적으로 대응하는 사람을 못 당한다. 화가 나면 이성을 잃고 감정에 의존하여 대응을 하다 보니 이성적인 논리 앞에 무력화되고 마는 것이다.


틱낫한 스님은 화를 다스리는 법으로 측은지심을 가져라. 즉 이해와 연민을 가지라고 설파하셨다. 화가 가져올 부정적 증상을 막기 위해 마음을 다잡으라는 가르침이다.


화를 겉으로 내보이진 않지만 속이 부글부글 끓는 것이 느껴질 때도 있다. 이건 그래도 봐줄 만하다. 성인군자도 아닐진대 화가 전혀 없다는 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속으로 끓인다는 건 참는 것과 다르지 않다. 스스로는 화를 다 풀지는 못해 아쉬움이 남아 있지만 상대에게 불편한 감정을 다 쏟아내지는 않았으니 나름 노력을 한 것이라 볼 수 있다. 이런 경우엔 상대도 대략 눈치를 채고 대응을 하게 되니 나름의 효과가 있기도 하다.


시간이 지나고 보면 가장 효과적인 건 그냥 모른 척 넘어가거나 속으로 참고 견딘 경우다.


화를 내는 사람들은 이유를 막론하고 감정적으로 대응하는 모습이라 옳고 그름을 떠나 좋아 보이진 않는다. 특히 나이 든 사람들이 화를 내는 것을 보면 더 안타까울 수밖에 없다. 살면서 수많은 불편함을 겪고 지나와서 나름 참을성을 갖추고 있을 것으로 기대하기 때문이다. 나이 듦과 역정을 내는 것은 반비례해야 하는 게 바람직한데 그렇지 않으니 두배로 안타깝게 느껴지는 것이다.


오랫동안 구독하던 매거진이 있었는데 이젠 볼 필요가 줄어, 해지를 하려 하는 데 해지 절차가 계속 같은 루프를 돌며 마무리가 안된다. 반복이 거듭될 때마다 짜증과 화가 올라오는 데 막상 털어놓을 데도 없다.


결국 1:1 문의 창구에 자세한 사항을 적어 메일을 보냈다. 화를 섞은 메일을 보내려다가 참고 젊잖게 보냈더니 곧바로 친절한 전화가 걸려 와 생각보다 쉽게 해결이 되었다.


이럴 때 우리는 가슴을 쓸어내린다.


만약 화를 내는 메일을 보냈어도 친절한 담당자가 응대를 해 주었을까? 설령 해결이 되었어도 화를 낸 모습은 후회를 하고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기껏해야 체면을 버리고 실리를 취한 절반의 성공처럼 말이다.


돌이켜 보면 화를 낸다고 해서 달라지는 일은 생각보다 많지 않다. 오히려 감정이 먼저 소모되고 나면 남는 건 허탈함뿐이다.


화는 폭발하기 전에 방지하는 게 최선이다. 어떻게 해야 화를 품지 않을까?


내 생각엔 긍정적인 사고가 그나마 화를 줄여주지 않을까 한다. 다 사정이 있을 테고 연유가 있을 거라는 생각으로 받아들이면 그나마 '내 탓이오'를 외칠 수 있다. '내 탓'이 되는 순간 화가 나기보다 창피한 생각이 들어 오히려 뒤로 물러서게 되지 않을까.


어차피 벌어진 일이라면 받아들이고 수습하는 데 집중하자. 그렇게 해결되고 나서 보면 모든 게 아무것도 아니다.


'화(anger)'를 멀리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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