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표를 천명하라
"앞으로 뭐 할 건데?"
요즘 가장 자주 듣는 질문이다. 내심 생각하는 것이 있지만, 막상 입 밖으로 꺼내기는 망설여진다. 괜히 말했다가 뜻한대로 이루지 못하면 실없는 경우가 될까 봐 두려움이 앞서는 것이다.
아무 말도 하지 않으면 편하다. 실패하면 조용히 넘어가고, 성공하면 그때 가서 '짠'하고 나타나면 된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은 공언의 리스크를 회피하는 전략을 취한다. 나도 다르지 않다.
이런 태도는 겸손이라기보다 개인의 성향에 더 가깝다. 어떤 사람은 일단 내 지르고 도전하는 타입이고, 어떤 사람은 이루어진 후에 드러내기를 선호한다. 누가 맞고 틀리고의 정답은 없다. 다만 목표를 달성하는 방법론 측면에서 무엇이 더 효과적인지는 생각해 볼 여지가 있다.
스티브 잡스는 아이폰 개발을 극비로 진행해 성과를 만들었다. 애플 내부에서도 일부 핵심 인력만 프로젝트의 전체 그림을 알고 있었을 정도로 세상에 공개되기 전까지 철저히 숨긴 채 완성도를 끌어올리는 방식이었다. 성공은 조용히 준비하는 것이지, 떠벌린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는 주장에 힘이 실리는 경우다.
하지만 정말 이루고 싶다면, 오히려 먼저 드러내는 편이 더 낫지 않을까.
황유민이라는 여자 프로골퍼는 2023년 KLPGA 첫 우승 인터뷰에서 꿈을 물으니 "LPGA에서 많은 우승으로 영구 시드를 받고 싶다"라고 당차게 얘기한다. 이 말은 자신의 의지를 대내외에 알리는 모종의 선언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런데 다음 날 우연히 이 선수의 1년 전 3부 투어 우승 인터뷰를 보게 되었는데, 똑같은 얘기를 하고 있는 게 아닌가. 한번 목표한 것을 꾸준히 천명하며 스스로 담금질을 하는 것처럼 여겨졌다. 결국 그녀는 2025년 후원사가 주최하는 대회에서 깜짝 우승을 하며 꿈에 그리던 LPGA로 직행했다. 2026년 현재 출전한 경기마다 꾸준히 존재감을 드러내며 초기 목표를 향해 착실히 나아가고 있다.
키가 163cm로 운동선수 치고 큰 체구는 아니지만, 목표를 다짐하고 이뤄내는 방법은 거침이 없고 도전적이다. 그녀의 별명이 '돌격대장'인데, 플레이뿐 아니라 목표를 달성하는 모습도 이와 다르지 않다.
공개적으로 목표를 말하는 순간, 그 말은 자신을 향한 약속이 된다. 짧은 시간 안에 그녀가 꿈에 좀 더 다가가게 된 데는 '목표'를 과감하게 드러낸 담대함도 한 역할을 하지 않았을까.
삼성의 이건희 회장은 1987년 12월 1일 취임사에서 "우리 세대 안에 삼성을 세계 최고의 기업으로 만드는 데 견인차가 되겠다"라고 대 놓고 선언을 한다. 당시만 해도 세계 최고가 되겠다는 꿈은 엄두도 못 내던 시절이었던 것을 생각하면, 취임일성으로 자신과 임직원들에게 선전포고를 한 것이다.
그가 취임식에서 떨리는 목소리로 또렷하게 읽어 나가던 문장들에선 비장함을 넘은 결기가 느껴진다. 그렇게 비전을 조직에 이해시키며 한 방향으로 나아가도록 이끈 신경영의 결과는 세계 초일류 기업 삼성이라는 결실로 나타났다.
로버트 치알디니는『설득의 심리학』에서 사람은 공개적으로 한 말과 행동을 일관되게 유지하려는 경향이 있다는 ‘일관성의 원칙’을 설명한다. 한 번 선언을 하면, 그 선언과 어긋나는 행동을 할 때 심리적 불편을 느낀다고 한다. 그래서 무의식적으로라도 그 말을 지키려는 방향으로 행동하게 된다는 것이다.
물론 모든 목표를 떠벌리는 것이 능사는 아니다. 준비되지 않은 허언은 공허해진다. 그러나 정말 이루고 싶은 일이라면, 마음속에만 묻어 두는 것보다 대내외에 분명히 밝히는 편이 더 강한 추진력을 만든다. 목표를 말하는 순간 우리는 그 말에 책임을 지기 때문이다.
초한지에 나오는 '파부침주'(破釜沈舟: 항우가 거록대전에서 강을 건넌 뒤 솥을 깨고 배를 가라앉혀 후퇴할 수 없게 만듦)의 자세로 임하면 행동에 타협이 자리할 틈이 없다. 물러설 수 없게 만들면 결기는 배가된다. 그리고 그 결기가 우리를 움직인다.
마음속에 간직한 목표가 있다면 누군가에게 한번 말해보라. 그러면 스스로 뭔가 달라짐을 느낀다.
황유민의 우승이 더 기대되는 이유는
그녀가 이미 세상 앞에서 자신의 목표를 말해 버렸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