능력자를 활용하는 능력
선후배가 모여 앉아 다양한 대화가 오가는 중에 주식 투자에 관한 얘기가 나왔다.
한 두 가지 궁금한 것이 있어서 질문을 했더니 직접 해 보는 것도 좋다는 권유를 한다. 투자를 하다 보면 기업이나 경제가 돌아가는 것에 눈이 트이고 세상 일에 대한 안목이 넓어진다는 논리였다. 틀린 말은 아니기에 '전문가가 투자 종목을 추천해 달라.'라고 장난스럽게 던져보았다.
그랬더니 다음 날 투자에 대한 세세한 설명과 더불어 큰 부담 없이 투자할 수 있는 종목 몇 개를 추천하는 메일을 보내왔다. 전날 얘기를 했던 것을 기억하고 친절하게 그러면서도 조심스럽게 도움을 주고자 하는 마음이 느껴졌다.
전문가가 내 성향까지 세심하게 고려해서 종목도 추천을 해 주었는데 이번에는 한번 직접 해볼까? 하는 생각이 머릿속을 맴돈다. 세상 돌아가는 것을 파악하는데도 도움이 된다 하니 더 솔깃해지기까지 한다.
은퇴 직후 시간여유가 있어 아주 적은 금액으로 잠시 주식을 사 본 경험이 있다. 그런데 이게 사람을 무심할 수 없게 만드는 마력이 있어 노심초사하다 결국 한 달을 못 넘기고 모두 팔아치웠다. 그 이후로 주식은 물론 투자에 관심을 끊은 지 오래이던 차에 이번에 다시 관심이 가는 제안을 받은 것이다.
아내는 사람마다 각자에게 주어진 재물의 양이 정해져 있어서 욕심을 내 본들 헛 것이라는 믿음을 갖고 있다. 가끔 우리 집에서 일어나는 금전과 관련된 일들을 떠 올려보면 맞는 거 같기도 하고 틀린 거 같기도 하다. 그런 자신의 생각을 철석같이 믿어서인지 아내는 투자를 과하게 하지도 즐기지도 않는다. 그저 신문 경제면을 꼼꼼히 읽으며 자기만의 방식으로 귀엽게(?)하는 식이어서 큰 걱정도 큰 기대도 안 하게 한다.
그런 아내가 나에게 꼭 명심해 달라고 신신당부하는 말이 있다. 그중 하나가 '투자하지 마라.'이다. 나를 가장 잘 아는 아내가 직장 밖으로 나온 남편에게 한 말이라 마음속에 깊이 새겨져 있는 경구가 되었다.
얼떨결에 아내의 '투자 주의 경고'와 후배의 '투자 행위 추천'이 내 머릿속에서 맞부딪히는 상황이 되었다.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까?
여러 생각을 하다가 결국 후배에게 추천받은 종목을 아내에게 털어놓았다. 그러고는 아내에게 대신해 줄 것을 요청했다. 아내는 생각보다 큰 관심이 없다. 다만 내가 하는 것보다는 자신이 조금 할 테니 그걸로 갈음하자고 한다.
그러고 보니 후배 말을 들은 셈도 되고 투자 경험이 있는 아내에게 역할을 몰아주는 일종의 타협이 되었다. 대신 나는 이전과 달라진 게 없다. 굿이나 보고 떡이나 먹을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일단 전문가(?) 둘을 간접적으로 연결하고 결과를 기다리는 격이 된 거다.
그런데 생각보다 마음이 흐뭇하다. 금액이나 중요성의 유무를 떠나 그 분야를 나보다 더 익숙하고 잘 아는 누군가에게 의뢰를 했다는 데서 오는 만족감이다.
직장생활에서도 유사한 일들이 벌어진다.
내가 할 일이지만 나보다 더 많이 알고 잘하는 사람을 찾아 그와 함께 하거나 의뢰해서 일을 처리해야 하는 경우가 종종 발생한다. 한 사람이 모든 것을 다 알고 다 잘할 수 있기는 대단히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떤 사람은 자신의 성과로 만들기 위해 모든 것을 움켜쥐는 욕심을 부린다. 특히 리더들 중에 책임감이 앞서서 모든 일을 자기가 해결해야만 직성이 풀리는 사람이 더러 있다.
대부분 자신의 능력을 믿다 보니 얼마든지 해낼 수 있다는 자신감에서 비롯되는 경우다. 하지만 간혹 욕심이 과해 소화를 해내지도 못하면서 남에게 주기는 싫은 이기심이 발동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예를 들어 제품의 디자인을 결정하는 데 전문가의 말보다 자신의 감을 우선 시 하거나, 기술적인 판단을 함에 있어 알량한 지식을 바탕으로 섣부른 지시를 하는 식이다. 이런 경우 자신이 잘 알지 못하는 분야이다 보니 결정을 하기 위해 수많은 what if?(~한다면?)를 붙여가며 검토에 검토를 시킨다. 사실 전문가의 의견을 따르면 되는데도 말이다.
세종은 백성들이 농사일을 하는 데 천문에 대한 지식이 없어 애를 먹는 것을 안타까워 한 왕이다. 그래서 천문 과학에 관심을 기울였고 실질적으로 농사에 도움을 줄 수 있는 해시계, 물시계, 측우기 같은 천문관측 기기를 만드는 데 관노 출신 장영실을 신임하며 활용했다.
대신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승진을 시켜가면서까지 그를 전문가로 인정한 끝에 자신이 숙원 하던 것들을 이뤄냈다. 이 모든 발명품들이 오늘날 장영실의 작품임을 알지만, 그 뒤에 세종이 있었음을 모르는 사람도 없다.
애플의 스티브 잡스는 디자인을 중요하게 여겼지만, 직접 디자인을 하지는 않았다. 대신 조너선 아이브라는 뛰어난 디자이너를 발탁해 그에게 디자인 전권을 위임했다. 아이브는 아이맥, 아이팟, 아이폰의 외관을 탄생시킨 주역이고, 애플의 '감성 디자인'을 상징하는 인물이다. 잡스는 방향을 제시하고, 아이브는 그것을 형태로 구현했다.
삼성 이건희 회장은 사장들에게 CEO보다 더 많은 급여를 주더라도 필요한 인재를 데려오라 했다. 그때까지 사장보다 많은 월급을 줄 사람을 채용한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그런 생각의 틀을 깨며 불러들인 인재들이 세계적인 제품을 개발하고 브랜드를 획기적으로 올린 데 기여했음은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남의 능력을 빌릴 줄 아는 것은 리더에게 있어 아주 유용하고 현명한 능력이다. 전문가가 나 대신 더 좋은 결과를 가져다준다는 데 불편해하고 마다할 이유가 무엇인가? 오히려 호탕하게 웃으며 그를 잘 대우해 주면 될 일이다. 전문가와 경쟁하려 하기보다 그를 잘 대우하고 더 잘할 수 있도록 동기부여하는 능력을 키워야 한다.
그리고 평소에 전문가가 누구인지를 눈여겨보고, 그런 능력자를 잘 모셔오는 것도 리더에게 필요한 역량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아무리 좋은 재목이라도 상대방의 허락과 적극적인 동참을 얻어내지 못하고는 꿰지 않은 구슬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오늘 나는 투자에 대해 잘 아는 후배와, 우리 집 내에서 나보다 투자 전문가인 아내를 간접적으로 연결했다. 그리고 나는 한 걸음 물러서 있다.
어떤 결과가 나올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한 것보다는 나을 것이라는 마음으로 있으면 된다는 생각이다. 직접 모든 것을 하지 않아도, 잘 아는 사람의 손을 빌리는 것, 그것이야말로 조직도 인생도 잘 굴러가게 하는 현명한 방식이 아닐까.
이제 두 손 탁탁 털고 나는 내게 익숙한 일로 돌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