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내가 가져다주는 반전
신호는 녹색으로 바뀌었건만 앞으로 갈 수가 없다.
앞차가 좌회전을 하려는지 오른쪽에서 비스듬히 들어와 2차선 절반을 가로막고 서 있었다. 주행을 하기 위해선 3차선으로 옮겨야 하는데, 뒤에서 달려오는 차들이 속도를 줄일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결국 신호가 다시 바뀔 때까지 기다리기로 한다. 내 차 뒤에도 한대가 같은 모습으로 멈춰 있다. 잠시 후 신호가 바뀌고 앞차는 미안하다는 표시도 없이 유유히 유턴을 한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오늘따라 그냥 '그럴 수도 있지.' 하고 넘어간다. 뒤차도 마찬가지다. 보통 이런 상황이면 화가 난 것이 느껴질 만큼 경적을 울려대기 마련인데, 둘 다 묵묵히 있었다.
그렇게 사거리를 지나 평소라면 좌회전을 위해 기다려야 했던 다음 신호에서 이번에는 일사천리로 신호가 떨어진다. '이게 웬일?' 순간 '아까 화를 내지 않고 기다린 것이 복이 되어 돌아왔나?' 하는 생각이 들며 푸흣~하고 웃음이 새어 나온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차선을 바꾸는데 앞 차가 전진을 하지 않는다. 그러다 보니 내 차가 두 개 차선을 비스듬히 막아서 있다. 아침 상황의 반대가 된 것이다. 안절부절못하며 조금이라도 앞으로 붙여보려 해 보지만 자칫 부딪힐까 두려워 포기하고 앞차가 움직이기만을 기다린다. 뒤에 차 한 대가 서 있는데, 이 차도 아침의 나처럼 그냥 기다려준다. 마치 다 이해한다는 듯이.
잠시 후 차들이 움직이고 내 차도 정상적으로 주행이 가능해졌다. 비상등을 켜서 뒤 차에 미안하고 고맙다는 표시를 하고 달린다.
아침에 겪은 일을 저녁에 반대로 겪고 나니 참 묘하다는 생각이 든다. 다행인 건 아침과 저녁에 모두 신경질 안 내고, 욕을 먹지도 않고 무사히 지나갔다는 것이다.
만약 아침에 짧은 순간을 못 이기고 경적을 울리며 신경질을 냈으면 저녁의 내 상황엔 어떤 변명을 할 수 있었을까?
야구 경기에서도 비슷한 장면을 가끔 보게 된다.
앞 이닝에서 치명적인 에러로 점수를 내 준 선수가, 타석에 들어서서는 팀을 살리는 결정적인 한 방을 날리는 경우다. 만약 감독이 실수를 호되게 질책했는데 그 선수가 곧바로 중요한 타점을 올리면, 감독의 얼굴이 어떻게 될까?
며칠 전 프로야구 경기에서 실제로 이런 일이 있었다. 에러로 4점을 내주는 빌미를 주었던 선수가 다음 이닝에 홈런을 치며 추격의 발판을 마련한 것이다. 경기 뒤 인터뷰에서 "선수가 치명적인 실수를 해서 질 뻔한 위기가 있었는데 그때 어땠냐?"는 질문에 감독은 "나도 현역시절에 그런 에러를 많이 했다."라고 답을 한다. 질책 대신 '그럴 수도 있지' 하고 참았다는 거다. 실수를 지적하는 게 잘못은 아니지만, 때로는 꾸지람보다 인내가 더 효과적임을 알 필요가 있다.
순간의 인내가 얼마나 중요한지는 역사에서도 볼 수 있다. 영조는 사도세자의 기행과 폭력성에 분노하여 결국 뒤주에 가두어 죽이는 극단적 결정을 내렸다. 《영조실록》은 당시 상황을 이렇게 전한다.
“임금이 대로하여 이르기를, ‘차마 볼 수 없도다! 그 패악이 이미 극도에 이르렀으니 어찌 참을 수 있으랴’ 하고, 뒤주를 가져와 세자를 가두게 하였다. 세자는 애걸하며 ‘아바마마, 다시는 그러한 짓을 아니하리이다’ 하고 빌었으나 임금은 듣지 않고 문을 닫게 하였다.”
그러나 아들을 잃은 뒤 영조는 깊은 후회에 빠졌다. 세손(훗날 정조)을 세자로 삼으며 신하들에게 “지난날 분노를 억누르지 못하여 종사를 어지럽히고 가정을 깨뜨렸다. 내 허물이 크니 후세에 부끄러움을 전하리라”라고 한탄하였다. 결국 영조는 사도세자의 명예를 일부 되살렸지만, 순간의 화는 한 왕조의 비극이 되었고, 뒤늦은 후회는 이미 아들을 되돌릴 수 없었다.
직장에서도 이런 경우가 종종 있다.
조금만 참았다면 아무 일 없이 넘어갈 일을 순간적으로 언성을 높여 상대의 기분을 상하게 만들고, 결국 스스로도 찜찜한 상황에 빠지곤 한다. 심지어 어떤 경우엔 오해로 이런 일이 벌어져, 나중에 정말 쥐구멍에라도 들어가고 싶은 심정이 되기도 한다. 하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라 주워 담을 수는 없고, 상대와의 관계에 생채기만 남고 만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이 저지른 잘못을 안다. 그런데 여기에 소금 뿌리듯 질책까지 받으면, 스스로 반성하고 개선하려던 마음이 사라지고 오히려 반감이 생길 소지가 있다.
리더는 이런 점을 헤아릴 줄 알아야 한다.
한 소리 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더라도 그 순간을 꾹 참고 넘어가면, 상대가 알아서 더 잘해보고자 노력하는 결과를 만나게 된다.
오래전 모셨던 상사가 한 말이 있다.
화가 나서 온 사람에게는 대꾸보다는 들어주는 게 상책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그 말을 듣고 있기가 여간 힘든 게 아니란다. 그래서 자신은 의자의 엉덩이가 닿는 부분에 손에 쥐는 작은 오재미를 놓아두고 있다고 했다. 인내가 필요할 때 손을 뒤로 가져가 그걸 쥐었다 폈다 하면서 꾸~욱 참는다는 거였다. 내게 보여 주는 데 하도 쥐었다 폈다를 많이 해서 겉이 닳고 닳아 있었다.
이렇듯 어려운 것이 인내심이기에 그걸 참고 견디면 달디 단 결과가 온다고 하는 게 아닐까
화가 나는 일이 있으면 한 번쯤 참아보는 실험을 해보라.
생각보다 좋은 일이 생길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