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하며 땀 흘리는 자 vs. 현안 쫓아다니며 땀 흘리는 자
저녁 식사 자리에서 AI와 관련된 주제로 화제가 넘어간다.
참석자 중 한 사람은 AI분야에서 요즘 핫한 전문가요 교수다. 또 다른 한 사람 A는 AI와는 직접 관련이 없을 것 같은 인사분야에서 일하고 있다.
그런데 둘의 얘기를 듣다 보니 A의 지식이 상당하다. 교수조차 '그걸 알고 계시네요' 할 정도다. A의 옆에는 그와 같이 일하는 후배가 앉아 있었는데 교수가 농담을 섞어 말한다. "같이 일하면서 피곤하시죠?^^"
어떻게 그렇게 많이 알게 되었느냐고 궁금해서 물으니 겸손하게 '그냥 호기심이 많아서 이것저것 찾아보고 공부하다 알게 되었을 뿐'이란다.
AI분야는 많은 사람들이 연구와 상용화를 하면서 하루가 다르게 발전하고 있어 그 추세를 따라 잡기가 만만치 않다한다. 그래서 교수도 힘들어할 지경인데 그를 놀라게 할 정도이니 어느 수준인지 가늠이 되리라.
갑자기 교수가 건넨 농담처럼 A와 함께 일하는 사람들이 진짜 피곤할지가 궁금해진다.
농담 섞인 질문에 같이 온 부하사원은 씨~익 웃기만 할 뿐 대답을 안 한다.
리더가 많은 것을 알면 피곤한 게 사실이다. 대충 전문가의 말을 듣고 넘어갈 일도 세세하게 묻고 따져서 긴장이 될 수밖에 없다.
문제는 아는 정도에 있다.
얼치기 상식 수준의 지식을 다 아는 것인 양 착각하고 덤비면 이보다 피곤한 일이 없다. 남의 말은 이해를 못 하고 자신의 주장만 옳다고 우겨대니, 아무리 바로 잡으려 해도 결국 추가 검토의 숙제만 더해진다.
반면, 제대로 아는 경우엔 정확하게 부족한 점을 짚어낸다. 거기다 자기의 아이디어와 방향까지 알려주기 때문에 속이 시원할 따름이다. 비록 리더가 많은 것을 알고 있다는 것을 전제로 준비를 해야 돼서 과정이 피곤하긴 하지만 최소한 엉뚱한 지점에서 시간을 허비할 가능성은 적다.
당연히 성과는 후자에게서 나온다.
리더가 되면 공부를 게을리하기 쉽다.
자료 검토와 회의 그리고 보고 준비에 많은 시간을 할애하다 보면 진득하게 앉아서 생각과 공부를 할 시간이 부족해진다. 이런 이유로 많은 리더들이 공부를 하지 못하는 것을 어쩔 수 없는 일로 치부하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공부와 연구는 실무자들이 하면서 검토 결과를 만들어야 하고 리더는 그걸 보고 판단만 하면 된다는 착각에 빠진다.
과연 그럴까?
조선시대 왕들은 경연이란 걸 했다.
집현전이나 홍문관, 규장각의 학자들과 유교 경전을 공부하는 것은 물론, 국가 운영에 필요한 정책을 연구하고 이를 토론하는 시간을 가졌다. 우리가 알고 있는 왕 중에서 세종과 성종, 정조는 경연에 진심이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세종은 경연을 하기 위해 젊고 학문적 열정이 강한 인물들을 집현전에 모아 연구에 전념케 하였고, 정조는 과거시험에 급제한 인재 중에서 뽑은 초계문신들을 규장각에서 양성하며 그들과 경연하기를 좋아했다.
당대의 천재 엘리트 집단과 학문과 정책을 논하는 왕의 식견이 어느 수준이었을지는 짐작이 가고도 남는다. 실제로 경연을 중시했던 왕들이 조선 역사에서 가장 많은 업적을 남긴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었다.
삼성 이건희 회장은 회사의 미래와 관련된 사유와 공부로 밤잠을 설칠 정도였다. 모르는 분야에 대해서는 전문가들을 불러 물어보는 것은 물론 본인 스스로 분해하고 반복해서 보며 이해하기를 거듭했다.
그런 데서 누구도 넘볼 수 없는 통찰력이 솟아 나왔고 임원들이 불려 가 회의를 하고 오면 그의 혜안과 지적에 혀를 내둘렀다고 전해진다.
공부는 하지 않고 구성원들에게 책임만 강조하는 리더십은 진정한 리더십이라 할 수 없다.
아주 오래전 어떤 선배가 한 말이 떠오른다.
그분은 엔지니어였고 나는 인사담당이었다. 늦은 시각 같이 일을 마치고 헤어지는 데 하는 말 "자기는 좋겠다. 위로 갈수록 공부할 필요 없이 도장만 들고 기다리면 되잖아." "나는 지금 들어가서도 전공서적과 기술 공부를 하지 않으면 기술자들을 리드할 수가 없어. 언제까지 이래야 할지 모르겠어."
당시 지원부문에서 일하는 사람들을 약간 비꼰 말 같기도 했지만, 실제 엔지니어 리더들의 현실을 얘기한 거라 공감이 갔던 적이 있다.
그런데 많은 시간이 흐른 지금, 아직도 그 말이 맞을까?
지원부문이라고 공부 안 하고 결재만 하겠다고 덤비면 존경받는 리더로 자리를 지킬 수 있을까?
그때는 맞았을지 몰라도 지금은 틀렸다. 이젠 누구도 예외가 없는 시대가 되었다. 세상의 변화는 빛의 속도로 이루어지고 그 흐름을 따라잡지 못하면 한 순간 잘못된 판단으로 이어진다.
공부하지 않는 리더는 새로운 기회를 발굴하거나 미래를 설계할 능력이 부족하기 때문에 눈 앞에 닥친 현안에 매달리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이런 일들은 언뜻 보기에는 복잡하고 어려워 보이지만 실제로는 가장 쉬운 일이다. 왜냐하면 당장 처리해야 할 문제이기에 모두가 힘을 모아 어떻게든 해결하기 때문이다. 리더는 마치 자신이 문제를 해결한 것 같이 굴지만, 실은 모두가 힘을 모으면 충분히 처리할 수 있는 일이었을 뿐이다.
반면 공부하는 리더는 다르다. 현실에서 벌어지는 일은 방향을 제대로 잡고 있는지만 챙기고, 나머지는 실무자에게 맡긴다. 어차피 해결될 일인 줄 알기 때문이다.
그의 관심은 항상 미래와 본질에 있다. 앞으로 닥칠 일들을 고민하고 새로운 흐름을 공부하며 시야를 넓히기를 게을리하지 않는다.
금방 눈에 들어오지는 않지만 이런 리더가 진짜다.
리더십 연구에서도 학습하는 리더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피터 센게는 '학습하는 조직'에서 리더가 학습을 주도할 때 조직 전체가 성장한다고 했다. 변화가 빠른 시대에는 리더 스스로가 공부하는 사람이어야 한다는 뜻이다.
그러니 진짜 리더가 되고 싶으면 지금이라도 공부로 발길을 옮기기 바란다.
도구는 널려 있다.
결심과 의지가 필요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