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술 전 전날 <환영애광림>을 봤다. 허 편집장이 저장해 둔 소설과 드라마 중에서 단지 제목이 마음에 들어서 선택했는데, 홍콩을 배경으로 한 유명사진작가와 본토에서 홍콩에 온 편의점 아가씨의 사랑 이야기이다. 13부작을 다 보느라 밤을 지새웠다. 그들의 사랑을 훔쳐보느라 잠깐이나마 내가 암 수술을 앞두고 있다는 걸 잊었다. 그들의 여름 소낙비 같은 사랑이 부럽고, 지나간 내 시간에도 분명 있었을 터인데 낡아버린 기억들 때문에 변변치 않은 일상이 된 현재가 슬펐다.
남편은 출장을 갔고 대신 동생이 수술 전날을 함께했다. 남편이 없어서 서럽거나 서운한 것은 없었다. 모처럼 동생이랑 함께 하는 시간이 마냥 좋았다. 아산병원 지하에 있는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고, 금식 전까지 먹을 수 있는 건 다 먹을 작정으로 돌아다녔다.
입원 전날 또 나의 암과 결혼과 시댁의 인생 삼각함수에 대해 일장 연설을 퍼부은 친정엄마는 절에 기도하러 가셨기에 당연히 연락되질 않고, 치매인 시어머니는 알려줘도 금방 잊는 탓에 수술 전날 전화 같은 건 기대도 하지 않았다. 전이가 되지 않았다는 말에 누구보다 좋아한 사람은 친정아버지였다. 모든 게 다 잘 될 거라고 전화를 하셨다. 아버지와 나는 참 닮은 점이 많다. 당뇨가 있으신 아버지가 케이크와 크림빵 같은 단것을 쉽게 포기 못 하시듯이 내가 수술 전날에도 치즈케이크와 블루베리 케이크 사이에서 고뇌하는 것을 보면.
겨울과 봄은 아예 학교를 빼먹고 와서 놀다가 갔다. 덕분에 수술하러 들어온 게 아니라 리조트에 놀러 온 것 같은 기분마저 들었다. 가을은 여전히 바빠서 전화만 했다. 다 잘 될 거니까 걱정하지 말라고. 가을의 그런 담담함이 오히려 마음에 들었다. 길 화순 노파처럼 할리우드 액션으로 오버한다고 한들 나아지는 것은 없다는 걸 가을도 알고 나도 알고 겨울과 어린 봄까지 다 알고 있다. 해서 수술 전야에 우리 사 모녀는 애써 담담한 척했다.
대수롭지 않게 넘어가고 싶었다. 처음에 암이라고 했을 때는 두렵고 당황스러웠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그런 마음보다는 나 또한 인생에서 예외일 수는 없다는 사실을 인정하기 시작했다. 혈압을 체크하러 온 간호사가 말했다. 사람의 절반은 심장질환으로 죽고 절반은 암으로 죽는다고. 그러니 언제든 올 거라면 지금도 나쁘지는 않다고 위로한다. 그녀의 말이 맞기는 하는데 위로는 되지 않는 수술 전야, 도망치고 싶은 밤이다.
수술 전날이라선지 동생은 자고 있는데 잠이 오질 않았다. 아홉 시 이후 금식이라고 해서 아무것도 먹지 못한 탓에 정신만 오롯이 깨어 있다. 슬프고, 간절하고, 먹먹하고, 한없이 외로운 밤이다.
나는 밤새도록 홀로 앉아 내 청춘, 빛나기도 전에 결혼으로 만개해 일찍 시든 그 시절을 기억하며 한때는 내 인생의 BGM이었던 안치환의 노래를 들으며 두려운 시간을 건넜다. 내가 나를 위로하며 이 모든 것 또한 지나갈 것이라고. 그런데 대체 우리가 어느 별에서 만났기에 지금, 이 순간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걸까? ‘귀뚜라미’를 부르는 안치환의 목소리가 나의 슬픔을 울리고 영혼 깊숙이 젖어드는 이전과는 다른 낯선 밤이 생경하다.
전날 먼저 수술한 창가의 여자가 신음한다. 우연히 본 그녀의 눈빛은 올가미에 걸린 상처받은 동물의 눈빛이었다. 산전수전 공중전의 흔적이 그대로 보이는 그녀도 수술 앞에선 무기력했다. 수술 후 빠른 회복을 위해 운동을 강조하는 간호사의 말은 어디다 집어던졌는지 잠만 잤다. 조폭 같은 남편이란 사람은 저녁 늦게 와서 자기 몸집의 절반도 안 되는 간의 침대에 앉아서 마누라에게 화를 내더니 욕까지 했다. 둘의 대화를 듣고 짐작하건대 그는 지방의 어디선가 막일을 하는 듯 보였다. 부부의 대화를 들어보니 그녀의 남편은 일명 공사판의 오야지였다. 그녀의 남편은 없는 돈에 암까지 걸리고 서울까지 오르락내리락하는 게 불만인 듯했다. 하나뿐이라는 아들은 학교도 때려치우고 집에서 논다는데 엄마 간병하러 온 건지 잠자러 온 건지 모를 정도다. 밤이나 낮이나 간이침대에서 자고, 수술 후 가스가 안 나와서 음식을 먹지 못하는 엄마 옆에서 치킨을 시켜서 닭다리를 뜯고 있다.
맞은편 침대의 강단 있어 보이는 아주머니는 오십팔 세이다. 남편과 작은 가내공장을 한다는 그녀는 십 년 전 수술 했는데 난소에 혹이 있어서 검사하러 왔다고 했다. 이미 한 번의 경험이 있어선지 아는 것도 많았다. 덕분에 입원하는 동안 그녀는 65 병동 6인실의 상담원 역할을 톡톡히 했다. 모든 사람이 그녀에게 궁금한 점을 물었다. 어찌나 말을 잘하는지 나 역시 그녀가 말하는 경험담에 귀를 기울일 정도였다.
암 병동의 사람들은 모두 일찍 잠이 든다. 텔레비전이 없는 6인실은 밤 9시만 되면 자동으로 취침모드로 들어간다. 달리 할 일이 없기도 하고, 크든 작든 모두의 마음속에 불안감이 존재하고 있기 때문이다. 다음날 수술을 앞둔 나 역시 불안하기는 마찬가지였다. 마음은 한없이 가라앉는데 정신은 너무 또렷해서 도저히 잠을 잘 수가 없었다.
달빛은 사람의 마음을 건드리는 묘한 빛이 있다. 옆으로 누운 채 블라인드 사이로 뜬 오팔 빛의 달의 움직임을 보며 유난히 긴 밤이 지나가길 기다렸다. 어릴 때 과학책에서 달의 움직임이 그려진 그림을 본 적이 있었는데 달은 정말 그 그림처럼 조용히 움직였다.
달빛 아래서 슬픔이 배제된 불안, 먹먹함, 혹은 약간의 두려움과 불확실함에 대한 당황스러움 등등 내 안에서 미처 연소하지 못한 감정들이 시계추처럼 움직이며 오락가락한다.
수많은 기회의 시간이 있었음에도 다 놓치고 지금의 결과에 이르게 한 나에게 화가 났다. 내 안의 일부가 사라지는 것쯤은 존재하기 위한 최선의 방책이라고 위로해 보지만 내 머릿속에서 ‘개뿔’이란 단어가 지워지지 않는다. 성질대로 따지지도 질문하지도 말고 그저 의사를 신처럼 믿으라고 누누이 강조한 선배의 말이 아니더라도 이 시점에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사람은 그뿐이라는 걸 알지만 도망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더구나 피를 보고 기절한 전력이 있는 나는 차마 말은 하지 않지만, 수술을 앞두고 담담한 표정 뒤에 먹구름 같은 두려움을 숨기고 있었다.
공교롭게도 피는 할머니의 기억과 연결되어 있었다. 어두운 숲을 산책하듯 조용히 밤을 건너는 달을 보고 있자니 오래전 일이라 내 마음속에서 빛바랜 기억으로 남아 있는 그날의 일이 마치 어제 일처럼 떠오른다. 아무래도 달빛의 마법 때문인 것 같다.
정확히 열두 살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한밤중에 갑자기 울며 잠에서 깼다. 창밖에 회색빛 옷을 입은 낯선 남자가 서 있는 것이 보였다. 나는 이유 없이 대성통곡을 했다. 그날도 오늘처럼 달빛이 환했다. 곤하게 주무시던 할머니가 놀라서 잠에서 깨더니 내 이마를 만지셨다. 장독대에 물 한 사발 떠 놓고 비는 것이 다반사인 할머니는 이내 마른 북어랑 물 한 사발을 머리맡에 놓으시곤 비셨다. 나의 울음은 잦아들었고 할머니에게 창밖을 보라고 손가락으로 가리켰지만, 창가엔 달빛이 그린 나무 그림자만 있을 뿐이었다. 감나무 옆에 서 있던 남자는 사라지고 없었다.
이후 할머니는 작은 집 제사에 다녀오시고 그날 밤 화장실에서 쓰러지셨다. 나는 잠결에 엄마가 하는 말을 들었다. 화장실에서 쓰러지셔서 큰일이라고. 듣기로 화장실에서 쓰러지면 다시는 일어나지 못하고 돌아간다고 했다. 하지만 엄마의 걱정처럼 할머니는 돌아가지 않으셨다. 그 이후로 할머니는 풍에 걸리신 채로 3년을 더 사셨다.
나는 할머니랑 같이 방을 썼다. 할머니의 좌변기도 시중도 들고, 마루에서 놀다가도 반신불수가 된 할머니가 머리로 벽을 두드리며 나를 부르면 곧바로 달려가곤 했다. 할머니는 논리적인 엄마를 피할 수 있는 따뜻한 아랫목 역할을 해주셨기에 나는 할머니와의 의리를 저버릴 수가 없었다.
술을 담그고 난 설탕을 탄 재강으로 술을 가르쳐주시고, 할머니의 청자 담배도 한 모금 맛보게 해 주신 덕에 나는 유난히 할머니와 친했다. 엄마한테 객기를 부리고 할머니에게 도망치면 그만이었던 시절이었다. 그랬던 할머니가 어느 날 나를 기절초풍하게 했다.
그날도 나는 할머니가 머리맡에 키우시는 귀뚜라미에게 연한 배춧잎을 주고 잠이 들었다. 그 귀뚜라미는 약대에 사는 큰고모가 할머니에게 가져다주신 것이었다. 어린 나이인데도 나는 밤에 귀뚜라미의 울음소리를 들으며 잠드는 것이 너무 좋았다. 그때는 가을이었고, 마른 옥수수 대와 수숫대가 바람에 흔들리는 것처럼 어린 내 마음도 왠지 모르게 흔들렸고, 가끔 귓가에 이상한 바람 소리가 들렸다. 아마도 내 마음속에서 배반과 의리가 마찰음을 일으키는 소리였을 게다.
한밤중에 잠이 깼다. 어디선가 아삭아삭하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누운 채로 고개를 돌려 소리가 나는 쪽을 봤다. 오늘처럼 달빛이 스며드는 창가에 할머니가 벽에 등을 기댄 채 비스듬히 앉아 있었다. 할머니는 배춧잎에 귀뚜라미를 싸서 막 입에 넣으려는 중이었다.
늘 은비녀로 쪽을 쪘던 머리를 중풍에 걸리면서 엄마에 의해 단발로 잘린 할머니가 날름 그것을 입에 넣고 씹었다. 순간이 심장이 멈추는 것 같았다. 나는 말도 못 하고 숨을 죽인 채 할머니를 봤다.
할머니는 달빛이 그림을 그려 놓은 창가에 앉아서 반복적으로 씹었다. 마치 추잉검을 씹는 것처럼. 이어서 할머니는 하얀 사기대접을 들더니 물을 마셨다. 토할 것 같았다. 하지만 그것이 물이 아니란 것은 할머니의 입가에 묻은 피를 보고 알았다. 할머니는 손으로 입가에 묻은 피를 닦으셨다. 눈이 마주친 할머니가 웃으셨다. 나는 그날 밤 그대로 기절했다.
나중에 알았다. 귀뚜라미는 낭만적 가을밤을 위한 소품이 아니라 고모가 중풍 치료를 위해 가져다준 민간요법이었고, 할머니를 한밤의 흡혈귀로 만든 피는 중풍에 좋다고 해서 소사에 사는 막내 고모가 구해다 준 오리의 피였다는 것을.
납량특집 같았던 그 가을밤의 기억 때문에 이후로 귀뚜라미는 낭만적 소도구가 아니라 소름이 돋는 소리로 들리고, 피만 보면 이유 없이 맥이 빠지고 심지어는 졸도까지 했었다. 지금도 나는 간호사가 피를 뽑으러 오면 심장이 뛰고 아득해진다.
어린 나의 눈에는 엽기적이었던 할머니의 심정이 이제야 간절히 이해되니 우스운 노릇이다. 내 사랑 김부용 여사, 너무 오랫동안 잊고 있어서 미안한데 새삼 그립고 간절해진다. 할머니야 ‘여태껏 잊고 잊다가 암 걸리니까 내 생각이 나냐, 요년아’ 하시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