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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홍신 신고 춤추던 소녀는 , 거기 없다.

by Dear Lesileyuki



6인 병실은 다양한 사람들이 입원해 있다. 병원에는 의사가 있고 병실엔 의사에 버금가는 정보력을 자랑하는 재야(?)의 고수들이 있다는 걸 입원하는 첫날 알았다. 특히 나이 많은 고수의 영향력은 막강했다. 그들의 확신에 찬 말을 듣고 있다 보면 무협지에 나오는 의술 비급을 실시간으로 듣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임상실험에 버금가는 고수가 있는 반면에 참아주기 힘든 진상도 있다.

그중에서 나의 눈길을 끈 사람은 바로 옆 노파였다. 내가 왜 그녀를 굳이 노인이 아니라 노파라고 하는지는 나중에 그녀가 내게 보여준 작태(?) 때문이다. 노파와 여인의 중간에 선 그녀는 보기에도 신산한 세월을 살아온 흔적이 얼굴에 나타나 있었다. 작은 키에 깡마른 노파는 수술하고 들어오면서부터 고통을 호소하며 약 좀 달라고 하도 외쳐대는 바람에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오래전 한 것 같은 눈썹 문신은 그간 흐른 세월 탓에 검은색 염료가 어느 정도 빠져나갔을 만도 한데도 여전히 진한 흔적을 남기고 있어서 흐릿한 노파의 얼굴에서 가장 선명한 색조를 자랑했다. 눈빛은 더 기분 나빴다. 나이 든 여자치고는 새초롬한 눈빛을 가진 노파는 의식이 돌아오자 거만한 눈빛으로 병실을 둘러봤다. 나는 나이에 걸맞지 않은 그런 노파의 눈빛이 왠지 싫었다. 아직도 요기가 남아 있는 늙은 작부의 눈빛 같아서.

종일 아들 셋 자랑을 하지만 한 번도 며느리가 찾아오는 것을 보지 못한 맞은편 영순 할머니는 시끄럽기는 해도 싫지는 않았다.

침대 발치에 붙여둔 표를 보니 노파의 이름이 ‘길 화순’이다. 이름도 맘에 들지 않는다. 노파를 보면 이름에도 그 사람 인생의 이미지가 담겨 있다는 생각이 새삼 든다.

“나는 살만해서 자식들 신세 안 져. 바쁜데 내가 오지 말라고 했어. 병원비도 나랑 영감이 낼 만하니까 그만두라고 했어.”

종일토록 혼자인 맞은편 영순 할머니가 대구에서 항암치료받으러 올라왔다는 옆 침대 아주머니에게 말했다.

“하긴 뭐, 공부 잘하는 아들은 나라의 아들이고 돈 잘 버는 아들은 사돈의 아들이고, 빚 많은 아들이 내 아들이라는 말도 있잖아요. 나도 며느리보다는 딸이 편해요. 아들놈은 결혼하는 순간 바보학교에 입학한 놈으로 변한다니까. 요즘은 효자도 희귀종이라니까. 오죽하면 돈이 효자라는 말이 나올까. 사랑도 요즘을 돈을 먹고 자란다던데”

입원해서 항암치료를 받는 동안 아주머니는 서울에 사는 딸과 남편이 번갈아 시중을 들고 있었다. 암과 함께 친구처럼 지내온지 어언 10년째라는 그녀의 손자 사랑은 유별나 손자의 동영상을 보며 하루하루 힘든 항암치료를 견디고 있다. 늘 모자를 쓰고 있는 아주머니는 딸이 사다 놓는 과일을 주저 없이 병실 환자와 보호자에게 나눠줄 정도로 인심도 좋다.

“손 안 벌리고 자기들만 잘살면 할아버지지.”

영순 할머니가 맞장구를 쳤다. 그러자 대구에서 올라온 아주머니가 고개를 끄덕인다.

“거기는, 남편이 연하여?”

오지랖 넓고 주책맞은 영순 할머니가 영감님이 집에 다니러 간 사이를 틈타 대뜸 내게 묻는다. 요 며칠 남편과 나를 바라보는 할머니의 시선이 심상치 않다 싶더니 더는 호기심을 참을 수가 없었나 보다. 그놈의 저주받을 남편의 동안은 어디를 가든 문제다.

“아, 제가 마흔여덟이고 남편이 마흔아홉인데요.”

“이에? 나는 남편을 서른 좀 넘게 봤네….”

암이란 소리를 들었을 때는 기가 막혔지만 영순 할머니 말을 듣는 순간에는 기도 막히고 화까지 났다.

노인들은 나이가 들면 돋보기를 반드시 권장해야 한다는 걸 명문화시켰으면 좋겠다. 그 침침한 눈으로 얼굴의 주름살은 자동제거 된 상태에서 보니 가뜩이나 동안인데 오죽이나 젊어 보이겠느냔 말이다.

“결혼은 언제 했어? 지난번에 온 아가씨가 딸 아녀?”

입원하는 첫날 들린 큰딸 가을을 말하는 듯했다.

“스물에 했는데요. 딸 맞아요. 올해 28입니다.”

“으에? 어쩌다가! 친정엄마 속 뒤집혔겠네?”

젠장 말끝마다 ‘으에,으에’를 남발하는 입을 싸매주고 싶었다.

눈치는 도대체 어디다 가져다 버리고 왔는지 영순 할머니의 호기심은 끝이 없었다. 다행히도 내 옆 침대의 길 화순 할머니가 적절한 시기에 비명을 질러 준 덕분에 도무지 멈추지 않을 것 같던 영순 할머니의 호기심도 일단 거기서 멈췄다.

“아이쿠, 왜 저려 또?”

영순 할머니가 소변량 체크를 위해 변기 위에 올려놓고 소변을 볼 수 있게 만든 이동식 소변 통을 들고 슬그머니 일어난다. 그녀의 호기심은 끝이 없이 샘솟는다. 그녀에게서 샘솟지 않는 건 오직 오줌뿐이다. 벌써 며칠째 소변 조절이 되지 않아서 퇴원을 못 하고 있다.

영순 할머니는 슬그머니 길 화순 노파의 침대 쪽을 기웃거리더니 화장실 쪽으로 간다. 이번엔 부디 소변량 미달로 불합격을 하지 말고 합격을 해서 퇴원하길 바라는 마음으로 작은 덤불이 걸어가는 것 같은 노인의 뒷모습을 바라봤다.

내 옆의 길 화순 노파의 비명은 큰 며느리가 오자마자 또 시작됐다. 내내 잠만 잘 자던 그녀가 며느리가 간병인 침대에 앉자마자 아파 죽는다고 신음을 했다. 덕분에 간호사가 직접 와서 진통제를 이미 맞고 있다고 확인을 해줘도 그녀의 신음은 도무지 멈출 줄 몰랐다.

전날 간호를 했던 작은 며느리와는 달리 큰며느리는 살갑지도 않고 세상의 모든 며느리가 시어머니에게 하는 정도의 간호를 했다. 오렌지색으로 머리를 물들인 아들은 어머니 침상 옆에 앉아서 내내 애니팡을 하고 있다.

길 화순 노파는 큰 며느리는 어려운지 신음을 하면서도 슬쩍 눈치를 봤다. 수족 부리듯이 이것저것 시켜 먹던 작은 며느리와 달리 큰며느리에게는 주스도 챙기고, 나가서 밥도 먹고 오라고 했다. 전날 작은 며느리는 컵라면을 사다 먹어도 아무 말도 하지 않던 노파가 말이다.

밤에도 결국 노파의 엄살에 간호사가 몇 번이나 왔다 갔다 하고 겨우 하루 마지못해 채우듯 있느라 지친 며느리는 간이침대에서 잠이 들었다. 신기하게도 며느리가 잠이 들자 눈만 마주치면 나오던 노파의 앓는 소리도 잦아들고 언제 그랬냐는 듯 나중엔 아들과 도란도란 이야기까지 했다.

침대와 침대 사이에 치워진 커튼 사이로 모자의 말이 들렸다. 나는 노파의 소리처럼 은밀하게 창으로 쏟아지는 달빛 아래서 두 모자의 대화를 들었다.

“내일 갈 거야?”

노파가 아들에게 조심스럽게 묻는다. 말 끝자락에 아쉬움이 담겨 있다. 하루만이라도 더 있었으면 하는 여운이 말 끝자락에 달려 있지만, 아들은 도마뱀 꼬리 자르든 무심하게 잘라낸다.

“가야지.”

무심한 아들의 대답이 허공으로 사라지고 노파의 한숨 소리가 이어진다. 핸드폰에서 소리가 들리는 걸 보니 아들은 또 애니팡을 하고 있다. 방광 수술을 한 노파가 또 한숨을 내쉰다. 그래도 아들은 여전히 그놈의 애니팡을 하고 있다.

나는 가만히 누워서 두 모자의 이야기를 들었다. 마치 볼륨을 줄인 라디오 연속극을 듣는 기분이었다. 주로 노파가 이야기했고 아들은 그저 추임새만 가끔 넣는다.

“퇴원하면 혼자서….”

노파가 풀 죽은 목소리로 말한다.

“자주 들를게.”

“입맛도 없고. 오늘 저녁도 거의 못 먹었어.”

아들 앞에서 노모는 거짓말을 하고 있다. 내가 알기로는 아들네가 가면 코를 골고 자고 먹을 것도 잘 먹으면서 괜히 그런다.

“그래도 드셔. 아깝잖아. 다 계산되는 건데.”

“........”

노파가 말이 없다. 아들이 애니팡을 하느라 핸드폰을 두드리는 소리가 귀에 거슬렸다. 갑자기 노파가 불쌍해진다. 정을 구걸하고 있는 것 같아서. 전날 작은아들 내외는 입맛 없다고 했더니 설렁탕을 사다 주던데 큰아들이란 놈은 아까우니 억지라도 먹으라고 하며 애니팡만 하고 있다. 하지만 나의 동정심은 딱 거기까지였다. 세상에서 제일 재미있는 게 말로 씹는 거라더니 팔도에 흩어져 사는 사돈의 팔촌까지 심심풀이로 씹으시며 전국을 돌더니 결국은 그것도 바닥이 나자 병실 이야기로 슬쩍 튼다.

“그런데 말이야….”

갑자기 노파의 목소리가 더 작아졌다.

“왜?”

아들의 목소리는 핸드폰으로 애니팡을 하느라 여전히 노모를 보고 있지 않은지 무성의하다.

“세상에…. 여기 죄다 암 환자들이야. 나만 아니고.”

숨죽여서 한 말이지만 내 귀엔 확성기를 틀고 한 말처럼 잘 들렸다.

그 말은 본인만 빼고 여기 다 재수 없게 암 걸린 사람들이란 뜻이다. 무슨 역병도 아니고 숨죽여서 말하는 소리를 듣는 순간 확 열이 올랐다. 가뜩이나 조직검사에서 혹시나 전이가 됐을까 봐 신경이 곤두서 있는데 노파가 나의 불편한 심기에 불을 지른다. 그간 암으로 인해 죽어 있던 ‘지적질’ 본능이 살아났다.

“말을 삼가시죠? 듣는 암 환자 기분 그렇습니다.”

나는 얇은 커튼을 두드리며 말했다.

순간 아들의 애니팡 하는 소리도, 노파의 숨죽인 쉰 목소리도 멈췄다. 이어 ‘아요요’ 하는 노인의 앓는 소리가 커튼 사이로 들렸다.

다음 날 아침 아들 내외는 미련 없이 딱 하룻밤 간병을 한 후 집으로 돌아갔다. 며느리는 전날 간다고 한 정확한 시간에 병실을 나섰고, 애니팡만 하던 아들은 아까우니 병원에서 나오는 밥은 다 먹으라는 말만 남기고 아내의 뒤를 따라가버렸다. 신기하게도 아들 며느리가 가버림과 동시에 언제 그랬냐는 듯 길 화순 노파의 앓는 소리도 멈췄고, 밥도 잘 먹었다.

온종일 노파는 나와 눈을 맞추지 않았다. 그러나 나의 시선을 일부러 노파를 쫓았다. 그녀의 강파른 얼굴에 문신한 눈썹이 갈매기처럼 떠 있다. 쥐를 닮은 작고 까만 눈으로 병실을 둘러보지만 누구도 그녀에게 말을 걸지도, 눈을 맞추지도 않았다. 병실 안의 모든 사람이 노파에게는 밥 먹으라는 소리도 하지 않는다. 노파는 밤사이 병실의 왕따가 되어버렸다.

사람이 좋아서 병실의 분위기 메이커인 대구에서 항암치료받으러 올라온 아주머니조차도 병실 모두에게 남편이 사 온 오렌지를 돌렸으면서 노파는 빼놓았다. 아마 간밤에 있었던 두 모자의 속삭임을 모두 듣고 있었나 보다.

퇴원할 날만 기다리고 있던 영순 할머니가 퇴원할 수 없게 됐다. 소변 연습을 하다가 그만 싸버린 것이다. 결국 다시 소변줄을 달게 된 할머니는 상심이 이만저만 아니었다. 평생이 가도 안 풀어질 것 같은 보글보글 파마머리와 큰 환자복 안에서 휘청거리는 작은 몸이 바짝 마른 대추가 걸어 다니는 것 같아서 보는 것만으로도 안쓰럽다.

소변줄을 빼고 소변을 보는 연습을 하느라 화장실을 들락거리는 데도 도와주는 가족이 없다. 아들만 셋이라는데 퇴근길에 아들과 남편인 할아버지만 잠시 들를 뿐 며느리는 얼굴도 보이지 않았다. 할머니의 말로는 모두 직장에 다녀서 본인이 오지 말라고 했다지만 아무래도 며느리들과 사이가 별로인 것 같다. 가끔 아들들은 퇴근길에 들러도 며느리는 내가 입원 한 이래 한 번도 들리지를 않는다.

저녁에 남편 되는 할아버지가 오자마자 영순 할머니는 집에 가고 싶다고 하소연을 했다. 하지만 요의를 느끼지 못해서 소변줄만 빼면 싸거나 아니면 함량 미달의 소변만을 보기에 퇴원은 쉽지 않을 듯했다.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순간 한숨이 나왔다.

신문을 보고 있던 남편이 왜 그러냐는 듯이 바라본다.

“남의 일 같지 않아서. 난소 날리고, 자궁 날리고 림프까지….”

눈은 프로방스 기행문을 읽고 있으면서, 귀는 할머니와 할아버지의 대화를 듣고 있자니 마음이 심란해진다. 그야말로 한심 지경이랄 밖에.

“잘 될 거야.”

남편이 신문을 보며 역시 건성으로 말했다. 그런 그를 한대 패고 싶었다.

“애들은?”

“봄은 미술학원 다니느라고 늦고, 가을인 시험 기간이래.”

“애들 오지 말라고 해.”

“그랬어. 근데, 유진이란 놈은 누구야?”

“집 앞 편의점에서 알바 하는 대학생인데. 왜?”

“어제저녁에 보니까 봄을 집 앞까지 데려다주던데.”

“애 괜찮아. 나보고 이모라고 부르고 잘 따라.”

“그러다 이모가 장모 되는 거 아냐?”

보던 신문을 내놓더니 남편이 정색하며 묻는다. 역시 마누라의 암보다 딸의 연애가 더 걱정인 남자다.

“당신 상상력 정말 후지다. 그런 애들 아니거든. 봄이 지나가다가 편의점 들러서 수다 잘 떨고, 그러다 골목까지 데려다준 거지. 더구나 유진이 엄마 내가 잘 아는 사람이야.”

“뭐 하는 사람인데?”

“약사야. 내 책 좋아해 주는 사람이고. 왜?”

“내가 볼 적엔 봄이 젤 문제야.”

남편이 한숨을 푹 내쉬며 말한다.

“무슨?”

“걔가 연애를 제일 잘할 것 같단 말이지. 가을이나 겨울인 걱정이 안 되는데. 내 딸이지만 이뻐도 너무 이뻐.”

너무 이쁜 게 문제라도 되는 듯 남편이 볼멘소리로 말한다.

“참 태평이다. 당신 마누라 암 걸려서, 검사받으려고 입원한 거 아시나? 당신은 지금, 딸 연애 걱정할 게 아니라 마누라를 걱정해야 한다니까. 남자가 사십 대에 마누라 잘못되면 인생이 허탕된다. 지금 당신이 막내딸 연애 걱정, 경제신문 보면서 부동산 하락 걱정할 때가 아니셔. 내가 잘못되면 당신 인생이 한 방에 훅 가. 부동산이 바닥을 치는 걸 걱정할 때가 아니라 당신 인생 바닥칠지도 모를 것을 걱정해야 해. 막말로 나 잘못되면 딸 둘도 아니고 셋 데리고 뭐 할 건데? 애가 많아서 재혼 전문 정보회사에서 받아주지도 않아.”

“알았어. 그만해.”

“나는 일어날 경우의 수를 이야기하는 거야.”

“그놈의 경우의 수 소리는 작작 좀 해라. 커피 안 마시고 싶어?”

남편이 슬쩍 일어나며 묻는다.

“아메리카노.”

“성질부리는 거 보니까 달달한 게 필요한 것 같은데, 캐러멜 마키아토 어때?”

“....... 암세포가 젤 좋아하는 게 포도당이랍니다. 단 것!”

“어 그래? 그럼, 아메리카노 사 올게.”

그는 병원에 있는 게 지루한지 틈만 나면 아산 병원 지하에 있는 몰과 카페를 드나든다. 분위기를 보아하니 오늘도 10분이면 될 거리를 한 시간쯤 지나서 커피 한잔 들고 나타날 게 분명하다.

남편이 커피를 사러 간 사이에 담당 의사 선생이 왔다. 심각한 척하지만, 슬쩍 웃을 때는 제법 멋있는 의사 선생이 모든 조직검사를 통해 알아본 결과 전이가 된 곳은 없기에 일주일 후에 수술한다고 통보했다. 평소에 차분한 목소리로 사람을 잔뜩 겁먹게 하던 의사 선생의 얼굴이 그렇게 믿음직스러울 수가 없었다. 회진 돌 때마다 ‘오직 믿습니다. 하는 얼굴로 의사 선생을 바라보는 병실의 아주머니, 할머니 이하 그 가족들의 심정을 알 것 같았다. 담당 의사 선생이 표표히 사라진 후 나는 어제와는 다른 기분으로 한숨을 돌린 후 환자복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전이가 안 됐다니 그나마 다행이다. 갑자기 담배 한 대가 간절히 피고 싶었다. 역시 습관이라는 것이 무섭다. 가을이 이참에 담배를 끊으라고 했고, 나 역시 이제는 그런 시기가 왔다고, 올 것이 왔다고 생각하지만, 머릿속은 여전히 담배 연기로 모락모락이다. 눈을 감고 주문처럼 ‘스멜스멜’ 하고 있는데 핸드폰이 울렸다. 번호를 보니 허 편집장이다. 그는 병원 로비라고 호들갑을 떨며 문자로 병실 호수 찍으라고 했다.

“허편, 그럼 올라오지. 7층 67 암 병동이야. 그러게 이젠 암이란 말이 입에 착 붙어.”

그가 10분 안으로 올라오겠다며 전화를 끊었다. 아마도 올라오자마자 연애소설 타령을 할 게 분명했다. 그리고 남편과 안면을 튼 사이면서도 서로가 서로에게 비호감인지라 어떻게 앉아들 있을지 그림이 나온다.

옆 침대의 길 화순 노파의 코를 고는 소리가 들린다. 종일 잘 자는 잠을 며느리들만 오면 안 자고 그러는 건 정말 남편의 말처럼 관심을 받고 싶어서 그런 걸까? 어째 남편의 그 말에 사심이 담긴 것 같은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남편이 커피와 조각 케이크를 사 왔다. 그것도 내가 사랑해 마지않는 필라델피아 치즈케이크이다. 입안에 감돌 치즈케이크의 진한 맛을 떠올리자 눈물이 핑 돈다.

“이제 검사 끝났으니까 치즈케이크 조금만 먹어.”

남편이 치즈케이크 반 조각과 커피를 내민다.

페트를 찍어서 암이 전이됐는지 볼 때는 포도당 수액이 아니라 식염수를 준다. 암이 포도당을 좋아해서 검사의 정확성을 떨어트린다고 수액만 맞은 덕분에 손이 떨릴 지경이었다. 그 와중에 치즈케이크를 보니 눈이 돌았다.

“전이 안 됐데.”

“어 그래? 후 다행이다.”

남편이 얼굴 가득 함박웃음을 짓는다. 그런 남편의 얼굴이 너무 젊어 보여서 또 부아가 치밀었다. 수술실에 들어가 자궁, 난소, 림프까지 다 날리고 폐경 증상에 갱년기 증후군을 준비도 없이 맞이할 ‘상실의 시대’를 겪을 생각을 하니 괜히 웃는 얼굴도 밉살스러웠다. 백치미 충만한 남편은 정말 버겁다. 하루아침에 폭삭 늙는 약이 있다면 밥에 섞어 먹이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하지만 결국 그도 끝물이라는 생각을 하며 달달한 치즈케이크 먹는 일에 집중했다. 당 때문인지 며칠 전까지는 절망 여사였는데 금방 긍정 여사로 돌변한다.

“허 편집장 왔데. 조금 있으면 올라올 거야.”

남편의 대책 없는 젊어 보이는 얼굴에 질투가 난 나는 괜히 퉁명스럽게 말했다. 요즘은 그가 숨만 쉬고 있어도 부아가 치민다.

“왜, 또 청첩장 가지고 온대?”

남편의 반응이 시큰둥이다. 평소에도 그는 이혼을 두 번이나 했다며 허 편집장을 곱지 않은 시선으로 보곤 했는데 세 번째 이혼했다니까 아예 이젠 사람 취급을 하지 않는다.

“여보, 개인의 사생활은 코멘트하는 게 아니야.”

“누가 뭐래? 나는 당신 친구 중에서 그치가 젤 맘에 안 들어. 빤지르르 해가 지고. 넥타이랑 양말 색이랑 맞추는 밥맛 인간.”

호랑이도 제 말을 하면 온다고 하필이면 그때 허 편집장이 나타났다. 아마도 남편의 말을 그가 들었을 것이다. 웃음을 참고 있는 허 편집장의 얼굴을 보니 확실했다. 그는 또 남편을 골려 먹을 심산인 듯했다.

“어휴, 얼마나 심려가 크신지? 제가 오늘은 바빠서 양말이랑 넥타이 색을 못 맞췄는데 어쩌나?”

넉살 좋은 허 편집장이 손을 먼저 내밀고 악수를 청하자 남편은 마지못해서 손을 내민다. 의자에 앉아 있던 남편이 일어나며 자리를 양보하자 허 편집장은 냉큼 주저앉는다.

“그건 뭐야?”

나는 허 편집장이 들고 온 상자를 보고 물었다.

“어, 석류. 알아보니 식물성 에스로트겐이 많다고 하네.”

“아직은 자궁이랑 난소 다 있는데.”

“앞으로 없어질 거잖아. 내가 평생 석류는 대준다.”

“아니 왜 허 편집장님이 제 아내 석류를 댑니까?”

팔짱을 끼고 듣고 있던 남편이 발끈한다.

“아니, 그게 아니고 이 작가는 제 출판사에서 책을 냈고, 낼 것이기에 저는 작가 관리 차원에서, 뭐 잘 못 됐나요?”

너무나 분방한 사고의 소유자여서 도무지 종잡을 수 없는, 정신세계가 우주로 가기 직전인 그를 남편이 이해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평범한 직장인이며, 한 집안의 온순한 장남으로 살아온 남편에게 허 편집장은 거의 외계인이며, 진상이다. 둘 사이엔 넘을 수 없는 사차원의 벽, 이름하여 ‘넘사벽’ 이 있는 것이다. 그런 그에게 남편은 그저 입이 떡 벌어질 뿐이다.

“혹시 <분홍신>을 보셨나요?”

난데없는 분홍신 타령에 부동산과 주식 빼곤 일반상식에 한없이 약한 남편이 멍해진다.

“안데르센의 분홍신 말입니까? 신발 신고 미친 듯이 춤추며 돌아다니다 죽는 그 잔혹동화?”

남편이 내심 칼을 갈았다. ‘잔혹동화’에 힘을 주어서 말하는 걸 보면.

나는 터져 나오려는 웃음을 참으며 내가 암 환자며 조만간 수술을 받을 사람이란 것도 잊고 두 남자의 미묘한 심리전을 지켜봤다. 같은 대학 출신이고 같은 학번임에도 불구하고 만나서 통성명을 하기 전까지는 한 번도 마주친 적이 없는 두 남자이다. 그만큼 둘의 사이는 멀고도 멀었다.

“어휴, 주영작가의 남편 되시는 분은 거기까지가 한계입니다. 제가 말하는 분홍신은 그 분홍신이 아니라 영화 <분홍신>입니다. 말하자면 보리스라는 오페라 단장이 빅토리아 페이지라는 발레리나를......”

또다시 남편이 제일 싫어하는 허 편집장의 그 ‘잘난 척 설교’가 시작된다. 그도 자기 일 빼곤 다 아는 남편과 비슷한 성향이다. 아마도 그래서 남편이 허 편집장을 싫어하는지도 모른다.

허 편집장이 말한 분홍신은 배우 ‘안톤 월브룩’과 ‘모이라 시어러’가 주연한 영화를 말하는 것이다.

발레 단장 보리스가 우연히 파티에서 만난 빅토리아 페이지라는 소녀의 재능을 발견해서 최고의 발레리나로 키우고 <분홍신> 공연으로 스타를 만들지만, 그녀는 사랑 때문에 춤을 포기하고 떠난다. 그는 재능 있는 무용수가 사랑 때문에 예술을 버리는 것은 낭비라고 하며 예술과 사랑 사이에서 갈등하는 빅토리아를 다시 불러 분홍신을 공연하게 하지만 연인에 의해 양자택일을 강요당한 빅토리아는 공연 직전 달리는 기차에 분홍신을 신은 채로 몸을 날려버린다. 인상적인 것은 보리스 역의 ‘안톤 윌브룩’이 여주인공 없이 공연하는 무대를 어둠 속에서 바라보는 마지막 장면이다. 하얀 중절모가 너무 잘 어울렸던 그의 모습과 어둠 속에서 무대를 바라보는 보리스의 애잔한 눈빛이 오랫동안 남는 영화다.

“그 보리스 단장의 마음이 제 마음이라는 거지요. 재능 있는 예술가가 사랑이나 결혼 때문에 예술을 포기하는 건 낭비라는 생각에 전적으로 동감합니다.”

너무나도 당당하게 가슴을 쭉 펴고 말하는 허 편집장의 얼굴을 남편이 기가 막힌 지 뚫어질 듯이 쳐다본다. 남편이 일 년에 열 번쯤 화를 내는데 지금이 바로 그 시점인 듯해서 먼저 선수를 쳤다.

“글쎄 내가 그 정도는 아닌 것 같은데, 좀 오버하는 것 같은데 허편?”

“내가?”

“난 천부적인 재능이 있지도 않고, 사랑과 예술 사이에서 갈등한 적도 없는 철저한 생계형 작가고, 그 영화의 결말처럼 기차에 몸을 날릴 생각도 없거든.”

“비유가 그렇다는 거지 뭐. 사과할게요. 내 비유가 심했다면.”

허 편집장이 손을 내밀자 남편이 주머니에 손을 넣은 채로 꿈쩍 않고 바라보기만 한다. 남편이 단단히 화가 났다는 증거이다.

“아, 싫으시구나. 그럼 제가 빨리 갈게요. 그전에 이건 전해주고 가야 할 것 같은데….”

“뭔데?”

허 편집장이 늘 매고 다니는 가방에서 아이패드를 꺼내 내민다.

“연애적 감수성이 죄다 죽은 건 아니잖아. 그렇다면 부활시켜야지. 수천 년 동안 무덤 속에 있던 씨앗도 싹을 틔우는데, 만물의 영장 인간의 연애적 감수성이 소멸할 리는 없다는 게 나의 생각이거든.”

“그래서?”

“만화 포함해서 연애소설 백 권 저장했어. 다행히 전이 안 됐다니까 책은 읽을 수 있을 거 아냐?”

“너무한 거 아냐? “

“아니 당신이 너무해. 맨 날 돈 되는 카피나 쓰고. 자기가 가진 재능을 무시하고 내팽개친 채 놀기만 하잖아!”

그가 남편 들으라는 듯 의도적으로 버럭 소리를 지르는 바람에 병실의 사람들이 시선이 우리에게 집중됐다. 특히 며느리만 없으면 늘 잠만 자는 옆 침대의 길 화순 노파는 눈이 작아서 온통 검은 눈동자만 있는 것 같은 눈을 반짝거리며 바라보고 있었다. 삼각 불륜을 보는 것 같은 눈빛이다.

“너무 착취하는 거 아닌가, 허편?”

“아니. 이 작가는 지금 그 어느 때보다도 에너지가 필요해. 우리 해보자고. 죽여주는 연애소설 한번 만들어 보자고.”

“왜, 정약용이나 허균을 소재로 소설을 만들어 보고 싶은데.”

남편이 어련하시겠냐는 듯 입을 삐죽이며 허편집장과 나를 본다. 출판하기만 하면 족족 삼 땡인 주제에 진지한 우리 둘이 그의 눈에는 웃길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기는 하지만 명색이 남편이면서 그런 눈빛을 보내는 그가 얄미워 눈을 흘겼다.

“당신은 그거 하지 마. 역사소설 쓰면 정말 안 본다. 계향과 허균의 러브스토리라면 몰라도”

허 편집장이 손사래를 치며 말했다.

“아니 하나만 물읍시다.”

듣고 있던 남편이 끼어든다.

“네, 물어보세요.”

“왜 꼭 연애소설이어야만 하는 겁니까?”

“치유가 필요한 시대니까 위로받고 싶은 시대니까. 말이죠, 출판에도 사이클이 있어요. 지금은 위로가 필요한 시대죠! 정부도 다 함께 행복하자고 말하잖아요? 국 민 행 복 시대! 뭐 그게 가능할지는 모르지만.”

“혹시 본인이 위로받고 싶으신 건 아니고?”

드디어 남편이 깐족인다. 가만히 듣고만 있을 그가 아니다.

“이보세요, 이 작가 남편과 저는 위로가 아니라 치유가 필요한 사람이구요. 암튼 이건 병원에서 할 이야기는 아닌 거 같고 동문회 같은 데서 만나면 한번 밀도 있는 대화를 나눠보자고요. 그런데 동창회는 나오시나? 회비는 꼬박꼬박 내는 거죠?”

보아하니 남편이 졌다. 허 편집장은 데카르트의 혀와 미스터 빈의 능청을 가진 사람인지라 가계부를 꼼꼼히 적는 일반인인 남편은 상대하기가 버거운 존재인 것은 확실하다.

나른한 병실의 사람들에게 한 편의 요란한 코미디를 선사한 허 편집장이 돌아가자 남편은 애꿎은 석류박스를 발로 찼다.

“아주 나쁜 놈이야. 저러니 이혼을 세 번씩이나 하지. 제 할 말은 다 해. 저놈은 죽어서 혀만 지옥 갈 거야. 그런데, 저 인간 당신을 너무 과대평가하는 거 아냐?”

“왜 그러면 안 돼?”

남편과 달리 나는 허 편집장과 이야기를 하면 단거리 여행을 갔다 온 것처럼 기분이 좋아진다. 분명 내가 이해하는 그가 있고, 그가 분석한 내가 있기에 그런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와 나는 세상을 향에 맞춰진 주파수가 같다.

“왜 남의 가정을 부정하고 흔들고 지랄이야.”

남편이 아무리 생각해도 분한지 허 편집장이 나간 문 쪽을 흘겨보며 말했다.

흔들림. 지금이 바로 그때인 듯하다. 누군가 만 번 흔들려도 견디어야 하는 게 중년이라고 했는데, 단 한 번의 흔들림도 없었기에 신이 나에게 이런 발끝부터 올라오는 진동을 겪게 하는 건가? 나의 중년은 사랑으로 흔들리는 것이 아니라 암으로 흔들렸다. 허상이 아닌 실존적인 존재 때문에 내 인생이, 나의 중년이 흔들린다. 발로 찰 때는 언제고 석류를 까고 있는 남편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남편은 석류 하나를 단 몇 분 만에 걸레를 만들어 버리는 신공을 부린 후 붉은 구슬 같은 영롱한 석류를 입으로 가져가더니 날름 먹어버렸다. 당연히 날 줄줄 알고 애틋한 마음으로 지켜보려고 다짐했던 나는 순간 어이가 없었다.

“이런 미친! 당신이 그걸 왜 먹냐?”

지켜보던 나는 6인 병실이 떠나가라 소리를 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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