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려고 해도 도무지 잠이 오질 않는다. 남편은 건너편 침대에서 코를 골고 있다. 그를 보며 ‘그렇지, 당신의 일은 아니지. 그러니 잠을 자지’라는 생각을 하며 한참 동안 그의 등을 바라봤다. 그의 등이 절벽처럼 느껴지기는 처음이다. 이제부터 그의 별명은 ‘숙주’다. 시거니 위버가 나왔던 에일리언 시리즈에만 숙주가 나오는 게 아니다. 일상에도 숙주가 존재한다. 갑자기 숙주라는 단어가 머릿속에서 바글거리더니 울화가 치밀었다. 나는 침대에서 벌떡 일어났다. 도무지 한 공간에 있을 수가 없었다. 순간 사이드 테이블에 놓인 책들이 읽는 용도가 아니라 다른 용도로 눈에 들어왔다.
밤새도록 혼자 거실에 앉아서 영화를 봤다. 모두 한석규의 영화였다. <넘버 3>를 보고 <팔월의 크리스마스>를 봤다. 그리고 그가 세종대왕으로 분한 <뿌리 깊은 나무>를 보고 있는 순간 날이 환하게 밝아왔다.
“엄마?”
일찍 일어난 가을이 영화를 보고 있는 내 곁으로 와서 앉았다.
“음?”
“잘 될 거야.”
가을이 다 알고 있다는 듯 말했다.
“그래.”
“겁나지?”
“의사가 암이라고 말하는 순간 벌써 나는 암 환자가 되더라. 모든 경우의 수를 다 생각하게 되고, 내가 열 번의 봄, 여름, 가을, 겨울을 볼 수 있을까, 25%는 재발한다는 데, 십만 명 중 삼백 명쯤 걸린다는 자궁경부암에도 걸렸는데, 재발 25%는 어떻게 비켜 가나. 등등의 생각들이 머릿속에서 막 폭발하더라. 나쁜 예감은 너무 잘 적중해. 처음부터 의사 선생의 눈빛이 심상치 않더라고. 계속 조직검사가 나와 봐야 한다고만 하고. 그때 감이 좀 오더라. 그래도 설마 했지.”
“좋은 예감도 올 거야.”
“그럼 좋고. 사실 조직검사도 걱정이야. 전이되거나 이러면 어쩌나 등등의 생각. 의사 선생님이 워낙 신중하게 말해서 지금 바짝 졸아 있다. 게다가 노안까지 왔는지 원고 쓰기도 불편하고…. 자연의 순리인가?”
“무슨 자연의 순리까지. 암튼 맘 편히 먹어 엄마. 더 좋은 말이 있으면 좋겠는데…. 없네.”
“알았어. 근데 좀 무섭다.”
“잘 될 거야. 사랑해 엄마.”
“겨울이 너무 다그치지 마. 안 그래도 맨날 너한테 치이는데.”
“사실 겨울이 울 때 나도 눈물이 나오려고 그러더라고. 그래서 일부러 그런 거야.”
놀라운 일이다. 도무지 잔정이라는 게 있나 싶을 정도로 개인주의자인 가을이 사랑을 말하다니.
“병원에는 오지 마. 봄이랑 겨울도 못 오게 해.”
“왜?”
“암 병동에 오는 거 싫어. 카톡이나 해.”
살아생전 적어도 육십 전에는 갈 일 없을 거라 장담했는데 오십 전에 암 병동에 가게 생겼으니 자다가도 벌떡 일어날 일이다. 그것도 암으로 치자면 혼자만 조심해서는 안 되는 교통사고 같은 암, 자궁경부암이니 할 말이 없어진다.
“알았어. 그 대신 한 번은 갈게. 그래도 수술인데. 엄마?”
“왜?”
“사랑해.”
“너, 그 소리 두 번째야.”
“두 번씩이나 내가 인심 크게 썼다. 흐흐”
가을이 제가 생각해도 머쓱한지 웃는다.
너무 시크해서 한창 싸울 땐 ‘너는 심장도 스댕으로 된 년이야’라고 했고, 가을인 내게 ‘엄마는 마녀야’라고 했었는데 암에 걸렸다니까 별명이 찬바람 쌩쌩인 가을이 사랑한다고 말한다. 갑자기 가슴이 뭉클해지려고 한다. 이런 걸 가족애의 부활이라고 하나?
남편이 휴가를 냈다. 사장은 이혼한 부인에게 위자료 덜 주려고 불륜 조작하고, 생활비 끊어서 막스마라만 입던 ‘사모님’이던 부인을 이마트에서 일하게 만들고 회장은 해외법인에 있는 조선족 여자만 건드려서 육십 넘은 부인이 더는 못 산다고 미국으로 가버릴 정도로 부도덕한 사람들이 경영자와 사주로 있는 회사에 충성을 바치던 남편이 일주일씩이나 휴가를 냈다. 수술 일자엔 해외출장이 이미 잡혀 있어서 도무지 날짜를 바꿀 수 없다며 조직검사 하는 동안은 같이 있어 주겠다는 의도였지만 나는 이러나저러나 상관없었다. 그가 있어도 수술을 할 것이고, 그가 없더라도 결국 수술은 할 테니까. 더는 내 인생에 그가 있고 없고는 중요하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입원 준비를 하기 위해 짐을 싸고 있는데 전화가 왔다. 친정엄마였다.
나의 암 소식을 남편으로부터 전해 들은 친정엄마는 대뜸 흥분부터 하시며 목소리만으로는 당장 전화기 속에서 튀어나올 자세였다. ‘그놈의 집구석으로 일찍 시집가는 바람에 그 지경이 됐다며 전화로 엄마도 알고 나도 알고 있는 과거지사를 풀어놓으셨다.
“아 글쎄 그만하셔.”
듣고 있다가 짜증이 나서 한마디 했다.
“그만하긴 뭘 그만해.”
“엄마 맞아? 딸이 암에 걸렸다는데 등신 소리나 하고?”
“속이 터져서 그러지. 내가 너 암 걸렸다는 소리 듣는 순간 얼마나 가슴이 벌벌 거리는지.”
“또 오버하셔. 무서운 걸로 치자면 엄마, 내가 더 무섭지.”
“네가 몰라서 그래…. 내가 더 무서워”
“무슨 소리야. 무서우면 당자인 내가 더 무섭지.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셔"
늘 그렇지만 친정엄마는 내 인생에서 의논과 위로의 대상이 아니다. 세상의 모든 엄마가 철철 넘치는 모성애 자랑하는 건 아니라는 걸 일찍이 깨달았지만, 상황이 상황인지라 이 시점에서는 부아가 치민다. 이쯤 되면 위로가 먼저 아닌가?
“그나저나 조직검사나 잘 나와야 할 텐데.”
전화기 건너편에서 친정엄마가 땅이 꺼져라 한숨을 쉰다.
“...........”
“나는 정말 무섭다.”
“그 무섭다는 소리 좀 그만하시고….”
“칠십이 넘은 나도 자궁이 말짱한데.”
“엄마! 그게 자궁 날리게 된 딸년 앞에서 할 소리야?”
“걱정돼서…. 내가 암에 좋다는 상황버섯 사다 놓을 게 달여 먹어.”
“됐어요.”
‘상황버섯을 달여줄게’가 아니라 ‘사서 보낼 테니 달여 먹어’였다. 일흔이 다된 친정엄마에게 그런 걸 기대하는 내가 어쩌면 무리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섭섭한 마음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다.
친정엄마는 수술할 때나 오시겠다며 전화를 끊었다. 위로된 게 아니라 잠깐의 전화 통화로 몸과 머리가 다 무겁다.
입원하는 날 남편과 함께 책 몇 권과 간단한 집을 싸서 아산 병원으로 향했다.
“맘 편하게 먹어.”
남편이 옆자리에 앉아서 창밖만 내다보고 있는 내게 말했다.
“.........”
“우리 회사 사장 재혼 한대. 나이 육십에 여자는 사십이래.”
“염병 위자료 주기 싫어서 마누라는 불륜도 조작하더니….”
나는 남편 회사의 사장이 싫다. 파리가 내려앉다가 슬라이딩해서 바닥에 내동댕이쳐질 것 같은 빛나는 이마도 싫고, 자칭 열렬하게 연애했다고 해놓고 30년 후에 부인과 위자료 싸움이나 하며 추잡한 삼류 가십거리나 만든 그의 사랑도 혐오한다.
“토요일에 콘도에서 회의 일정 잡는다고 했더니 극구 그날은 피하라고 했다는데 이유인즉 그날이 결혼식이란다. 상대 여자가 아나운서인데 비밀 결혼식 하는 거 보면 초혼은 아닌 것 같지?”
“거기 관둬라. 당신. 완전 쓰레기다. 이혼하고 마담이랑 살지 않았어?”
“결혼은 결혼상담소에서 소개받아 아나운서랑 하고, 섹스는 마담이랑 하는 셈인데 왜 그러고 사는지 도무지 나는 이해가 안 된다.”
세상에 이해할 수 없는 일이 비단 그일 뿐일까. 나는 지금의 나도 이해를 못 하고 옆에 앉아 있는 남편도 이해할 수가 없는데.
차가 신호등에 걸리자 남편이 갑자기 손을 잡았다. 그러나 전기가 통하지 않는다.
“왜?”
“파이팅 하자.”
“개뿔. 그놈의 도덕성 제로인 회사나 관둬. 월급 많이 주면 뭘 해. 보고 배울 롤 모델이 없잖아.”
괜히 암 따라서 부아가 치민 나는 남편 회사를 싸잡아 비난했다. 남편이 말없이 듣고만 있다.
신호등이 다시 파란 불로 바뀌었다. 남편의 차가 좌회전을 해서 아산 병원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순간 궁금해졌다. 나는 지금 인생 앞에서 좌회전 중인지 아니면 우회전 중인지.
병원까지는 차로 십 분도 걸리지 않았다. 바로 집 근처라 기분 좋은 날엔 산책 삼아 걸어도 좋은 만큼 가까운 거리였다.
산책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역시 인생은 선방이라는 것이 쉽지 않다. 푸른색으로 반짝거리는 병원 유리창을 보면서 긴 한숨을 내쉬었다. 남편도 심란한 지 덩달아 한숨을 내쉬려다가 나와 눈이 마주치자 언제 그랬냐는 듯 한숨을 삼켜버린다.
입원 절차를 밟고 7층으로 올라갔다. 엘리베이터에 내린 순간 가슴이 쿵 내려앉는다. ‘중증 암 환자를 위한 병동’이니 외부인 출입을 금해 달라는 안내문 때문이었다. 보호자와 간호사를 제외한 모든 사람이 암이라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어선지 다 같아 보였다. 그런 나의 맘을 아는지 모르는지 남편은 6인실이지만 창가라서 좋다며 너스레를 떤다. 창문 너머로 30분 전까지 에스프레소를 마시던 집이 보인다. 이전에는 느껴보지 않았던 낯선 설움이 가슴속에서 올라온다. 이미 입원해 있던 환자의 호기심이 어린 시선도 부담스러웠다. 이번엔 또 어떤 암 환자가 왔나 하는 호기심 가득한 눈빛들이 일제히 내게로 향했다.
커튼을 치고 환자복으로 갈아입었다. 갑자기 울고 싶어 졌지만 애써 침을 삼키듯 목으로 넘겨버렸다. 커튼 너머에서 남편이 내가 가지고 온 책을 정리하다가 한마디 한다.
“성균관 입학해? 다산 정약용 시선, 박지원의 열하일기? 뭐 이런 책을 가지고 왔냐.”
“읽고 싶던 책이야. 생각 없이 몰두하기도 좋고. 심경이 복잡할 땐 오히려 그런 책이 좋아.”
“...... 전이나 안 됐으면 좋겠다. 초기에도 전이가 되는 수도 있다는데.”
남편이 드디어 실감이 나는지 한숨을 푹 쉬며 말했다.
지인들이 카카오톡으로 문자를 보내는지 핸드폰에 계속 신호가 뜬다. 확인해 보니 내용은 다 잘 될 거야, 힘내 등등의 말들이다. 그들이 바라는 것만큼 별일 없으면 하는 것이 나의 바람이기도 하다. 카카오톡의 노란색 말풍선을 보며 내가 아는 모든 신에게 기도했다. 달게는 받겠으나 가능하다면 가볍게 지나가달라고.
검사하는 내내 남편은 같이 있었다. 연애 시절 이래 거의 온종일이라고 할 만큼 같이 있었던 적은 처음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대화를 나누는 것은 아니었다. 검사를 하지 않을 때 그는 신문을 보고 나는 책을 읽거나 아니면 아이패드로 검색을 하는 것이 그가 하는 일의 전부였다. 그도 아니면 나는 침대에서 그는 보호자 간이침대에서 잠을 잤다.
어딜 가든 검사받는 곳에는 남편이 있었다. 단지 문제라면 검사받는 동안 대기실 의자 한쪽에서 늘 졸고 있다는 것이다. 그 잠깐의 시간도 남편은 정신 바로 차리고 마누라 옆을 지켜주는 것이 아니라 쏟아지는 졸음을 어쩌지 못해서 몸을 비튼다.
평소 그렇게 싫어하던 대장 내시경, 위내시경을 하고 냄비 손잡이 타는 냄새가 코를 찌르는 액체를 마신 후 PET를 찍고를 MRI를 촬영하고 나니 비로소 내가 암에 걸린 것을 실감했다. PET를 찍으러 들어간 통속에서 나의 미련함에 통탄하고, 결사적으로 산부인과 멀리한 덕에 오늘의 이 지경에 이르렀다는 사실에 어이없어했다.
신장조영술을 하는 동안은 ‘남편’이 말 그대로 남의 편이어서 남편이라고 한다는 말을 실감했다. 검사하는 동안 소변을 참고, 다시 비우고, 물을 먹은 후 결과치에 부합한 소변이 나올 때까지 안절부절못하며 쉴 새 없이 물을 마시는데 남편은 또 졸고 있다. 젠장 누가 부부는 일심동체라는 오묘한 말을 주절거렸을까? 그가 꿈속 어딘가를 헤매고 있는 그 순간은 완벽한 이심 이체다. 졸고 있는 그에게 암은 나의 일이지 간절한 그의 일은 아니다. 순간 나는 마시려던 물컵을 내려놓고 남편이 보다가 의자에 놓아둔 신문지를 말아서 그의 코를 때렸다. 그 바람에 단잠을 자던 그가 화들짝 놀라서 깬다.
“왜, 사람을 때리고 그래?”
“이 상황에 잠이 와?” 밤에도 자고 낮에도 자고….”
“그렇다고 남편 면상을 치냐?”
“붕어처럼 물만 들이켜고 있는 사람 앞에서 잠이 오냐고?”
나는 고생하고 있는데 남편은 속 편하게 졸고 있었다는 사실이 화가 나서 신경질을 냈다. 버럭 열을 낸 탓인지 순간 지금까지 신호가 오지 않던 방광에서 신호가 왔다. 나는 자다가 면상을 신문지로 맞아서 기막혀하는 남편을 두고 화장실로 내달렸다.
화장실 변기에 올라앉아서 생각했다. 한 번도 이런 날이 올 거라는 생각을 하지 못했기에 이 상황을 받아들이기 힘들지만 그래도 가는 데까지는 가보자고. 그가 잠을 처자든 말든 그것은 상관하지 말자고.
돌아와 보니 남편은 나처럼 물을 마시며 간절히 오줌이 나오기를 기다리는 아줌마와 할머니들 틈새에 앉아서 경제신문을 읽고 있었다. 남편이 비워진 방광을 촬영하러 들어가는 나를 흘겨봤다. 나중에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똑같이 해주리라 다짐을 하며 나는 그런 남편을 무시했다.
온통 하얀 방이 나의 마음을 서늘하게 했다. 긴장한 내게 아들뻘의 촬영 기사가 신발을 벗고 올라가라며 친절하게 설명을 해줬다. 2 리터 이상의 물을 마셔서 채우고 다시 비운 방광을 촬영하기 위해 촬영대에 올라가 누웠다. 눈이 부신 천정의 하얀 형광등을 보며 생각했다. 이보다 더 나쁠 수는 없을 것 같다고. 어느 시점부터 내 안에 바이러스가 잠복해 암으로 변형되고 있었는지 알고 싶어졌다. 이름도 괴상한 유두종 바이러스는 도대체 언제 무슨 이유로 나에게 와서 문제를 일으켰을까?
자연 소멸도 된다는데 나는 왜 암이 된 것일까? 정말 입원 전에 통화한 엄마의 말이 맞는 건가? 그로 인한 스트레스로 인해 내가 한 방 먹은 것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자 암담해진다.
남편과 함께 마지막 방광경 검사를 하러 비뇨기과에 갔다. 잠은 이미 충분히 잤기에 남편이 졸고 있을 일은 없을 것으로 생각했는데 더 어이없는 일이 벌어졌다. 매사에 모든 서류와 영수증은 검토가 기본인 남편의 안테나에 납득되지 않는 요금이 청구된 사실이 걸린 것이다. 남편은 대단한 걸 발견한 사람처럼 흥분하며 간호사에게 달려갔다. 마누라가 암에 걸린 그것보다 더 대단한 발견이 있기는 한 건지 그는 반경 오십 미터 이내의 사람들은 다 들을 수 있을 정도의 목소리로 국가에서 암 환자는 분명 치료비 일정 부분을 부담하는데 일반 청구로 됐다며 따지는 바람에 비뇨기과에 있던 모든 사람이 나를 바라봤다. 당황한 간호사조차도 나의 진료비영수증을 보고 ‘암 환자’라는 부분에서는 목소리를 낮추는데 남편인 그는 한껏 목청을 높였다. 순간 그의 목을 비틀고 싶었다. 더는 그 자리에 있고 싶지 않아서 나는 슬그머니 그 자리를 떴다.
역시나 아무리 생각을 해보아도 그는 대책 없는 사랑이 만든 내 인생의 오류임이 분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