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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인한 오월,

여름의 문턱에서

by Dear Lesileyuki

오래전에 이미 정해진 것 같은 일들이 하루 동안 일어났고, 암이란 의사의 확진이 있자마자 정해진 플랜에 따라 움직이는 것처럼 한꺼번에 앞으로의 일정이 통보됐다. 이쯤 되면 잔인한 사월이 아니라 잔인한 오월인 셈이다.

조직검사를 새로 하고 다시 일주일 후 ‘자궁경부원추형 생검술’을 한 후 또다시 조직검사를 기다리는 일주일은 한마디로 지랄 같았다. 이유 없이 화를 내고, 마룻바닥에 굴러다니는 걸 보기만 하면 발로 차버리는 날 보고 아무것도 모르는 남편과 애들은 한 달에 한 번 찾아오는 마법의 시간이 돌아왔냐고 묻기만 할 뿐이다. 심지어 남편은 ‘보통 여자들은 폐경이 언제 온 데?’라고 무심하게 물어서 나의 염장을 질렀다. 그들에게 그 마법의 시간도 이젠 조만간 끝날지도 모른다고 말해주고 싶었지만, 결과가 나올 때까지 조용히 있기로 했다. 왠지 말해버리면 부정이 탈 것 같은 기분이 들었기 때문에.

그러나 결국은 나의 바람과는 달리 암이었다. 암이란 진단이 나오고 ‘건강보험 산정 특례 등록 신청서’까지 병원에서 신청한 후 집으로 돌아왔다. 암 환자에게는 국가에서 지원한다는 간호사의 설명을 듣는 순간 정말 암 환자가 됐다는 실감이 났다. 이젠 빼도 박을 수도 없는 암 환자 진단이 나왔고, 친히 국가에서 5년간 관리를 해준단다. 졸지에 국가가 관리하는 중증 환자가 된 것이다. 내 친구도 안 걸리고, 내 동생도 안 걸리고, 심지어 칠십이 넘은 친정엄마도 안 걸린 자궁경부암에 내가 걸렸다. 나는 더 이상할 말이 없었다.

집안은 텅 비어 있었다. 냉장고 돌아가는 소리가 들리고, 화장실의 환풍기 돌아가는 소리가 들릴 뿐이다. 예고를 다니는 막내 봄은 학교에서 돌아오지 않았고, 남편은 퇴근하려면 멀었고, 레지던트인 가을은 얼굴 보기도 힘들고, 공시족 대열에 들어선 둘째 가을은 학교 도서관에서 10시나 되어야 집으로 돌아온다. 그야말로 제 갈 길이 바쁜 인생들이다.

한동안 불 꺼진 집안에서 우두커니 서 있었다. 모든 동선을 다 알고 있는 집안에서 길을 잃어버린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메고 있던 가방을 바닥에 떨어뜨렸다. 가방이 떨어지면서 내는 '쿵' 하는 소리가 집안에 울린다. 절대고독이란 거창한 말은 하고 싶지 않지만,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가장 가까운 사람들이 나의 고통이나 고뇌를 모르고 있을 때 혼자서만 느끼는 감정이 바로 그런 것이 아닐까. 그러므로 내가 혼자서만 느끼는 지금 이 순간의 감정이 바로 절대고독이 아닌가 하는 생각. 외로움과 두려움이 뒤엉키면서 블랙 리본처럼 나를 동여맨다. 드디어 꼼짝없이 걸렸다.

내가 좋아하는 쇼팽의 피아노곡을 앞으로 몇 번이나 더 들을 수 있을까? 앞으로 내가 매월 내는 카드 값을 60번 이상 결재할 수 있을까? 작살난 중국펀드는 살아생전 반등할까? 일관성이라곤 도무지 없는 생각들이 마음과 머릿속을 예리하게 그어 댄다.

혹시 또 다른 어딘가에 암이 웅크리고 있을까 봐 4박 5일 동안 입원을 해서 온몸을 스캔하듯 훑는 것도 모자라 대장 검사에 방광경검사까지 해야 한다. 시험을 통과하듯이 결과를 지켜보며 초조해하면서 불면의 밤을 보낼 생각을 하니 절로 한숨이 나온다. 확실하지 않은 것은 정말 질색이다.

갑자기 지금까지 내가 먹어온 소들과 돼지, 싱싱한 회로 둔갑해 나의 미각을 즐겁게 해 준 생선들의 영혼이 몰아쳐 나에게 복수하는 건 아닌지, 그동안 내가 먹어온 온갖 종류의 치즈케이크와 달달한 후식 때문에 오늘의 이 결과가 온 건 아닌가 하는 별의별 생각이 전자레인지 안에서 돌아가는 팝콘처럼 튀어 오른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일은 벌어졌고, 받아들이고 직시하는 일만 남았다. 담담하게 아무렇지도 않은 듯 주어진 시간을 통과해야만 한다. 물론 가족들에게도 이야기해야 하고.

제 기능을 다 하고 완전한 휴식기에 들어간 자궁쯤은 과감히 미련 없이 날려버릴 수 있어야 하고, 그깟 난소쯤은 시크하게 포기할 수 있어야 하는데 문제는 그게 생각만큼 쉽게 용납이 되는 게 아니라는 것이다. 왠지 머릿속에서 자꾸만 ‘거세’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아무리 필요가 없어도 버리기 싫고 간직하고 싶은 물건이 있는 법이다. 출산이라는 거창한 임무가 끝이 났고, 더는 필요 없는 것이라도 자궁이 그냥 있었으면, 죽을 때까지 나와 함께 하기를 바라는 마음도 그 마음과 비슷하지 않을까?

보내야 할 몇 개의 칼럼과 마감이 남은 원고들을 최종으로 확인했다. 적어도 입원하기 전까지는 넘기려고 주방으로 노트북을 가지고 나와 식탁에 앉아 일을 시작했다. 평소 같으면 다음 날이 토요일이라 작업실에 처박혀 두문불출했을 금요일인데 그럴 수가 없었다. 차가운 형광등 불빛이 아니라 주방의 노란 불빛 아래서 일하고 싶었다. 아주 오래전 열정을 가지고 주방 간이 식탁 의자에 쪼그리고 앉아서 밤새워 원고를 작성하던 그 시간을 기억하고 싶어서였을까?

주방에 딸린 다용도실을 개조한 작업실을 갖기 전까지 늘 식탁에서 원고를 썼다. 식욕을 돋워 주고 분위기를 업시켜 준다는 노란 불빛의 조명 아래서 아이들의 간식을 챙기고, 가을이 고 삼 수험생일 때는 라면을 끓여주며 꽤 많은 원고를 썼다. 식탁에서 원고를 쓸 때 좋은 점은 집중력은 떨어지지만, 식구들이 들어오고 나가는 것을 다 볼 수 있다는 점이다.

어릴 때부터 막내 봄은 옆에서 내가 원고를 쓸 때마다 따라서 읽는 버릇이 있었다. 어느 날은 19금의 원고를 영문도 모른 채 읽고 있던 적도 있었다. 그 덕분에 봄은 학습지나 학원을 통해 한글 배우지 않고 자연스럽게 한글을 깨쳤다. 가을은 한 번도 나의 책을 읽은 적은 없지만, 원고가 잘 써지지 않아서 게으름을 피우고 빈둥거리며 집안을 돌아다니면 컵라면을 끓여주곤 했다. 나의 책을 읽지 않는 가을과 달리 겨울은 몰래 책장에서 내가 쓴 책을 꺼내다 읽은 후 시침을 떼고 안 읽은 척했다. 19세가 되기도 훨씬 전에 제 나이에 걸맞지 않은 내용투성이인 엄마의 책을 읽은 덕에 어쩌면 겨울은 생각이 많고 조숙한 아이가 됐는지도 모른다.

식탁에 앉아서 식구들이 돌아오기를 기다렸다. 이렇게 식탁에 앉아서 원고를 쓰며 식구들이 돌아오길 기다리는 것이 얼만지 모르겠다. 생각보다 원고는 잘 써지지 않았다. 모든 신경이 암진단 쪽으로 가 있으니 당연한 일이다. 초여름 밤의 공기가 열어 놓은 창문으로 들어와 내 마음을 어루만지듯 뺨을 스치더니 허공으로 사라진다.

가장 걸리는 건 봄이다. 유난히 어려서부터 잦은 병치레로 가슴을 들었다 놓았다 했던 봄인지라 내가 그 아이에게 느끼는 감정은 다른 아이들과 달랐다. 겨울이 먼저 들어오고 봄은 미술학원에서 12시가 다 되어서 돌아왔다. 아이들은 작업실을 놔두고 식탁에 앉아서 원고를 작성하는 내가 이상한지 이 층으로 올라가며 저마다 한 마디씩 한다.

“엄마, 커피 한잔 타줄까?”

셋 중에서 그래도 커피에 대한 관심도가 제일 높은 겨울이 올라가며 한마디 했다.

“마셨어.”

나는 이 층으로 올라가는 겨울을 보며 말했다.

이어서 들어온 봄은 치마를 제 맘대로 줄여 교복이 아니라 미니스커트 수준의 차림새였다. 살짝 들어가려던 봄은 나와 눈이 마주치자 일단 배시시 웃는다.

“봄, 치마 또 줄였어? 학교 선생님이 뭐라고 않니?”

나는 얼마 전에 사준 교복 치마를 또 줄인 봄에게 잔소리를 했다.

“아냐 엄마 안 줄였어.”

“그럼 아침에 나갈 땐 엄마가 사준 거 입고, 나가서 갈아입는 거야?”

“헐, 엄마 대박! 어떻게 알았어?”

봄이 놀라는 척하며 장단을 맞춘다.

평소 같으면 더 잔소리했을 터인데 하고 싶지 않았다. 안경 너머로 노려보던 시선을 거두고 다시 하던 일을 계속했다.

봄은 이때다 싶었는지 이 층으로 쌩하니 올라가 버린다. 갑자기 사랑이 물밀듯이 봄으로 향한다. 봄은 이런 내 맘을 알렸는지 모르겠다.

‘내 사랑 너에게로 부는 바람이 항상 훈훈하고 아름답기를 기원해’

갑자기 이 모든 시간이 소중하다는 생각이 들며 가슴이 뭉클해진다. 오랫동안 잊고 있던 감정이었다. 이 모든 걸 놓아버릴 자신이 없다. 걱정스럽고 혼란스러웠다. 일은 벌어졌지만, 부디 다른 일은 없기를

세상의 모든 신에게 기도하고 싶어지는 우울한 밤이다.

거실의 불을 끄고 주방의 등만 켠 채 원고를 쓰고 있는데 남편이 들어오다가 주방의 나를 발견하고 그 자리에 주저앉는다. 줄담배까지 피운 덕에 식탁 주변에 담배연기로 자욱해 귀곡산장 분위기까지 연출됐으니 나라도 뒤로 넘어갈 게 분명하다. 더구나 들어오는 남편을 안경 너머로 희번덕거리며 보고 있으니 뒤로 안 넘어가는 게 오히려 더 이상한 일이다.

“아 깜짝이야. 귀신인 줄 알았잖아.”

“이젠 마누라도 귀신으로 보이나?”

“왜 그래 당신 안 하던 짓하고? 설마 나 들어올 때까지 잠 안 자고 기다린 거야?”

겨우 정신이 돌아온 남편이 묻는다. 그가 냉장고 문을 열고 우유를 꺼내 마신 후 맞은편 식탁에 앉는다. 불빛 아래서 보니 동안인 그의 얼굴에도 주름이 자글자글하다. 만인에게 평등한 중력의 법칙의 만든 시간의 흔적이다.

“뭐 쓰는 거야?”

“.......”

“이야, 우리 마누라 언제 대박 나냐?”

그가 양말을 벗어서 구석으로 던지며 말한다.

“대박 나면?"

“음, 당장 회사 집어치우고, 내가 출판사 만들어서 당신 책을 내는 거지”

쓸데없는 농담을 하는 걸 보니 아무래도 하고 싶은 말이 따로 있는 것 같아서 일부러 못 들은 척했다. 건너편 식탁에서 어떤 얼굴을 하고 나를 바라보고 있을지는 안 봐도 본 듯하다.

“엄마, 우리 집으로 좀 모셔오면 안 될까?”

뜬금없이 그가 시어머니 이야기를 꺼냈다. 그의 얼굴을 보니 며칠은 벼르다 한 말인 것 같지만 나는 모른 척하고 싶었다.

그의 마음을 모르는 건 아니지만 그 점에 대해 그 어떤 말도 하고 싶지 않기에 대답 대신 말없이 담배를 피워 물었다.

암에 걸리고 치매에 걸린 시어머니가 있고, 딸린 자식이 세 명이나 있다는 점만으로 심란해지는 밤에 남편은 앵무새처럼 똑같은 말을 하고 있다.

“나는 장남이고….”

“이미 다 이야기 다 끝난 거 아냐? 어머니, 나 별로 좋아하지 않으시고. 모셨던 10년 동안 좋은 기억 별로 없잖아?”

나는 일부러 더 매정하게 말했다. 착한 맏며느리 완장은 이미 집어던졌기 때문이다.

“다 잊으셨을 거야. 어쩌면 그런 기억은 아예 못 하실 수도 있어.”

“...... 나는 기억하는데, 봄이 지우라는 그 말.”

그제야 남편이 할 말이 없는지 입을 다문다.

“담배 좀 끊어. 그러다 폐암 걸린다.”

멍하니 허공을 바라보고 있던 남편이 퉁명스러운 얼굴로 말한다.

“폐암 안 걸렸어.”

“건강 검진 결과 나왔어?”

“음. 폐암 아냐.”

“다행이네. 그래도 작작 피워. 너무 늦게까지 하지 말고.”

남편이 일어나며 말했다.

“그리고 참, 여보….”

그에게는 말을 해야 할 것 같아서 불러 세웠다.

“왜?”

슬며시 방으로 들어가려던 남편이 뒤돌아본다. 갑자기 마르고 긴 그의 몸을 보고 있노라니 그가 무거운 씨를 품은 채 한여름을 버티어내고 서 있는 해바라기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가 사는 세상도 쉽지만은 않을 텐데 오늘 같은 밤에 하나 더 보태주고 싶지 않았다.

“...... 발은 꼭 닦고 잘 자라고. 무좀균 시트에 떨어질지도 몰라.”

나는 정작 하려던 말은 하지 못하고 얼버무렸다.

“이 사람이. 정말….”

서서 나를 노려보던 남편은 마지못해서 화장실로 들어갔다.

암 탓인가. 갑자기 한동안 사라졌던 측은지심이 생기려고 한다. 하지만 거기까지다. 더 나아가면 아마 남편은 기회가 생길 때마다 비장의 엄마 카드를 꺼내 들 것이 분명하다.

ON을 누르는 순간 싱크대를 새로 설치할 때 옵션으로 받은 라디오에서 드보르자크의 슬라브 무곡 마단조 72번이 흐른다. 갑자기 마음이 바람에 날리는 꽃처럼 후드득 떨어져 가라앉는다. 새벽 두 시면 충분히 감상적인 마음이 될 수 있는 시간이지만 여느 때와는 다른 느낌이다. 마음에 불안이 부유물처럼 떠다닌다. 혼자 있는 밤이 불안하고 추워서 나도 모르게 몸을 움츠렸다. 돌아가신 이후로 한 번도 꿈에 나타난 적이 없던 할머니 김부용 여사가 혹시 이 밤에 늙어가는 손녀를 보고 계신 것은 아닌가 하는 엽기적인 생각을 하면서 거실을 둘러봤다.

담배를 너무 오랫동안 피운 탓인가? 기억이 스멀스멀하더니 가슴이 싸해지고 이내 옥잠화 향기가 스며든 밤공기가 펼쳐진다. 가슴이 슬픔과 그리움으로 인해 팔랑거린다.

“그렇게 이쁘냐? 꽃을 보면 인생이 보여. 살아가는 게 아니라 죽어가는 거라는 말을 실감하게 되지. 봐라. 저 꽃도 시들고 떨어지면 그만이지.”

옥잠화 위로 달빛이 떨어지던 어느 날 밤이었다. 옥잠화의 짙은 향이 스민 밤공기에 취하고, 눈앞에 피운 하얀 꽃에 반한 내가 꽃이 예쁘지 않으냐고 물었더니 할머니가 내게 그러셨다.

그날 할머니와 나는 술을 마셨다. 달도 밝고 꽃도 좋다며 담근 술에 설탕을 탄 술지게미인 제강까지 손녀에게 먹인 할머니는 유난히 슬퍼 보였다.

옥색 치마저고리를 입은 할머니는 달빛 아래서 옥잠화를 보며 담배를 피우셨다. 아직도 기억한다. 기분 좋게 서늘한 가을밤공기에 스민 담배 연기와 어우러진 옥잠화 향기를. 생각해 보면 며느리와는 사이가 안 좋았지만, 유난히 손녀를 끼고돈 할머니는 친정인 광산김 씨의 어르신이 아니라 서초동에 숨어 있는 철학자였다.

현관으로 나가 계단에 앉아서 시들어버린 장미를 보며 담배를 피웠다. 갑자기 할머니, 내 사랑 김 부용 여사가 그리웠다. 순간 나도 모르게 눈물이 핑 돌았다. 하늘을 보니 별빛이 흔들린다. 눈물을 손등으로 닦으며 담배 연기를 밤하늘로 올려 보냈다. 꿈에라도 나타나시면 좋으련만 어째 한 번도 나타나지 않으실까? 섭섭하다. 할머니에게도 섭섭하고 예고편 없이 뒤통수를 때린 나의 별수 없는 인생에도 섭섭했다.

예전과 다른 아침이다. 도저히 침대에 누워 있을 수가 없었다. 클래식 마니아인 남편이 틀어 놓은 오페라 가수의 노래가 사람을 미치게 했다. 나라면 이 아침에 데이비드 보위의 노래 <star man> 듣겠건만 남편의 그 미친 것 같은 클래식 사랑에 한 번도 데이비드 보위의 노래를 토요일 아침에 들은 적이 없다. 그가 해외 출장이나 가면 모를까.

침대에서 몸만 빠져나와서 어슬렁거리며 딸들과 남편의 웃음소리가 들리는 주방으로 갔다. 토요일 아침에 모처럼 만에 식구들이 다 모였다. 남편은 토요일 아침이면 늘 그렇듯이 식탁에 앉아서 아침 신문을 보며 에스프레소 한 잔을 마시며 우아를 떠는 게 인생 최대의 즐거움이다. 주변에 세 딸이 있으면 행복 그 자체고.

여느 때처럼 남편은 갓 간 원두를 들롱기 커피 머신에 넣고 에스프레소가 내려지는 모습을 흐뭇한 얼굴로 보고 있다.

봄은 소시지와 계란프라이를 요즘 들어 건강 염려증에 걸린 가을은 생협에서 사 온 유기농 채소로 샐러드를 만들고 있다. 꼼꼼한 겨울은 테이블 세팅을 하고 있다. 그동안 내가 행복의 의미를 너무 거창하게 생각하지 않았나 싶을 정도로 아름다운 풍경이다.

잠자리에서 일어난 그대로의 차림으로 계란 노른자가 적당히 익어서 토스트에 발라먹기 딱 좋을 정도로 만드느라 불 조절에 여념이 없는 봄이. 늘어진 흰 티셔츠 자락으로 싱크대 위에 떨어진 샐러드드레싱을 슬쩍 닦는 가을. 금방 흐트러질 냅킨의 각을 잡는 겨울. 한동안 나는 저들에게 어떤 말을 해야 할지 고민하며 아침부터 울부짖는 남자의 노래를 들었다.

“저 남자 좀 어떻게 할 수 없나?”

카루소가 흘러나오는 스피커를 보며 말했다. 갑자기 남편이 애지중지하는 값비싼 스피커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 저 망할 스피커가 뱅앤올룹슨이라고 했든가?

“왜? 영혼을 울리는 소리잖아.”

남편이 이 아침에 저보다 좋은 음악이 어디 있냐는 듯 해맑은 얼굴로 묻는다. 감탄을 금할 수 없다. 나이 오십에 저렇게 해맑은 얼굴을 할 수 있다는 사실이.

“당신의 영혼을 울릴지는 모르지만 나는 심란해.”

“나는 당신의 그 데이비드 보위가 더 심란하거든. 애들 아무 소리도 하지 않는데. 당신과 나 사이의 음악적 취향의 간극은 너무 커.”

비단 음악뿐일까? 수도 없이 많아서 일일이 말하자면 숨이 찰 지경이다.

“그래서 저 우렁차다 못해 푸줏간 아저씨 같은 목소리를 들으며 아침을 먹어야 해?”

가을, 겨울 봄은 또 시작됐다는 얼굴로 남편과 나의 얼굴을 본다.

“어째 두 분은 한 번도 의견일치를 못 보냐?”

가을이 말없이 테이블 세팅 중인 겨울에게 말한다. 봄은 게스 레인지 앞에 서서 그러거나 말거나 제가 좋아하는 소시지 맛보느라 정신없다. 그런 봄의 뒤통수를 가을이 뒤집개로 때리자 봄이 소시지 훔쳐 먹다 걸린 고양이 표정이 된다.

“당신 샌드위치 안 만들어?”

남편이 얄밉게 한마디 던진다.

암 진단만으로도 머리가 댕댕거리는데 아침부터 그놈의 카루소 때문에 더 정신이 없어서 내가 샌드위치 담당이라는 걸 잊고 있었다. 평소 같으면 다양한 햄에 채소를 올리고, 치즈까지 넣은 후 마지막으로 반쯤 익힌 계란 프라이를 넣은 특제 홈메이드 샌드위치를 만들었겠지만 모든 걸 다 생략하고 오직 호밀빵에 치즈와 블랙 올리브를 끼운 샌드위치를 만들었다.

평소의 푸짐했던 샌드위치를 기대했던 남편과 세 딸의 눈에 실망의 빛이 가득하다.

“우리 메뉴가 언제 바뀐 거지?”

육식 마니아인 남편이 세 딸에게 묻는다. 딸들은 고개를 저으며 어떻게 된 일이냐는 듯 나를 본다. 그러거나 말거나 그들의 시선을 무시하고 한입 먹었다. 역시 입 안 가득 지금까지 느끼지 못했던 이름하여 프로방스의 시골 맛이 퍼진다. 물론 내가 생전 알지 못했던, 요리잡지의 표현을 그대로 빌린 애매모호, 건강에는 좋으나 입은 쉽게 받아들일 수 없는 맛이다.

“건강에 좋아.”

건강에 너무 충실한 덕분에 맛은 그저 그런 샌드위치를 입속 한가득 넣은 채 말했다. 샌드위치는 입안에서 계속 맴돌 뿐 도무지 넘어가질 않는다.

“적응할 기간을 줘야 하는 거 아냐? 이건 사자보고 갑자기 풀 뜯어먹으라고 하는 것과 같은 거라고.”

“햄에 발암물질이 있데. 앞으로 죽 이렇게 먹을 거야.”

“한창 자라는 애들한테 동물성 단백질이 얼마나 필요한지 알아?”

남편이 아이들을 핑계로 고기와 인스턴트식품이 적절히 조합된 식탁의 필요성을 언급한다.

“당신은 이미 다 자랐고, 애들도 성장판이 다 닫혔거든.”

나는 아이들을 빙자한 그의 원성을 무시한 채 눈을 치켜뜨고 허공을 응시한 채 되새김질하는 소처럼 샌드위치를 씹었다.

“엄마 왜 저러냐? 당신 석류 먹을 때가 된 거 아냐?”

남편은 애들의 응원을 좀 얻어 볼 요량으로 딸 셋을 번갈아 본다. 셋 다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고개를 흔든다.

물론 남편이 지적한 것처럼 내게 석류와 친해질 시기가 다가오고 있는 것은 알지만 그 터질 듯이 붉은 알갱이를 머금은 석류가 떠오르자 순간 부아가 치밀었다. ‘다들 멀쩡한데 나만 왜?’라는 생각이 들어서일까?

“....... 암 이래.”

도무지 맛에 정이 가질 않는 호밀빵을 조금씩 뜯어먹으며 말했다. 생각보다 말하고 나니 편안했다.

“헐, 역시 피해 갈 수가 없는 거구나, 분당, 아님 송파 할머니?”

막내 봄이 요플레를 먹으며 외할머니와 친할머니 중 누구냐는 듯 천연덕스럽게 묻는다. 순간 헛웃음이 나왔다.

그러나 남편은 순간 멈칫한다. 오래 함께 산 내공에서 나온 직감은 무시할 수 없는지 남편이 조용히 마시려던 에스프레소 잔을 내려놓으며 나를 본다.

내게 샐러드가 담긴 접시를 건네려던 가을도 조용히 접시를 내려놓으며 나를 본다. 그런 가을의 눈빛이 심상치 않다. 역시 가을은 직감적으로 느끼고 있는 걸까? 겨울은 그런 가을을 보며 눈빛으로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나는 중이냐고 묻고 있다. 그들의 눈에 스치는 불안감을 나는 말없이 바라보며 지독히 맛없는 호밀빵을 씹었다.

“유감스럽게도 내가 암 이래. 다음 주에 4박 5일 입원해서 조직검사받고, 다른 데 말짱하면 곧바로 수술받기로 했어. 의사 말은 그렇게 오래된 것 같지는 않다고 하는데, 암은 암이잖아. 자궁경부암.”

암이란 말에 토요일 아침의 브런치 타임이 일순간 초토화됐다. 다 식어버린 에스프레소 커피를 앞에 두고 한동안 남편이 말이 없었다. 산부인과 레지던트여서 잘 아는 가을은 맥이 빠지는지 한숨을 내쉰다. 감수성 풍부한 봄의 눈에 갑자기 눈물이 그렁그렁해지더니 뚝뚝 떨어진다. 비교적 덤덤한 표정의 겨울이 그런 봄의 뒤통수를 때린다. 분위기를 더 다운시킨 봄이 못마땅한 것이다.

나는 설명서를 읽는 사람처럼 의사가 내게 알려준 사실들을 이야기했다. 사실 나는 살면서 이런 날이 올 거라는 생각을 한 적이 없는데, 와버렸다. 신문에서 통계로만 확인하던 수치에 내가 속하게 됐고, 드라마에서 단골로 등장하는 암 환자가 되어버린 것이다.

“...... 초기이기는 하지만 다 들어내야 하는 관계로 소변 줄도 오래 달고 있을 거래. 자궁 주변의 장기들을 건드릴 수 있어서 수술 후 부작용이 있을 수도 있다네. 그건 가을이 잘 알 거야. 그쪽 동네니까.”

그동안 생각이 많이 걸러졌는지 처음처럼 마음이 요동치지는 않는다. 그 사이에 내 안의 두려움 일부가 증발하여 버렸나 보다. 오히려 나는 당황해하는 가족들의 얼굴을 담담한 표정으로 바라봤다.

남편과 세 딸에게도 암이란 단어는 뉴스나 혹은 신문에서나 볼 수 있는 단어였다. 그들은 당황해서 할 말을 잃은 듯 한동안 말이 없었다. 오직 고비사막에서 날아온 먼지 같은 무거운 침묵만이 온 집안에 두껍게 내려앉았다.

시어머니에게 치매진단이 내려졌을 때 본인에게는 행복한 병이라고 위로를 하던 남편이 한동안 침묵을 지키다가 이내 나의 게으름과 나의 식습관을 분석하기 시작하더니 죄다 바꾸어야 한다고 열변을 토한다. 순간 식탁을 건너뛰어서 들고 있던 호밀빵으로 그의 입을 틀어막고 싶었다.

본인의 미래만 빼고 세상의 모든 것을 다 아는 것 같은 남편을 보고 있자니 머리가 아파진다. 하여튼 남편의 잔소리는 일생에 도움이 안 된다. 헌신적인 병간호를 하는 남편은 애당초 글러 먹었다. 갑자기 긴병에 장사 없다는 고전적인 멘트가 스친다.

“그만하지? 암 때문에 머리가 아픈 게 아니라 당신 그 잔소리 때문에 머리가 아프다 정말.”

“암 이래잖아.”

남편이 목에 핏대를 세우며 말한다.

“자궁경부암이 식생활과 뭔 상관이래? 그건 성생활하고 관계있는 거라고! 외길 내 인생에 어떤 문제점이 바이러스를 유발했을 것 같아?”

열받아서 숨도 안 쉬고 내뱉는 바람에 그렇게 말 잘하던 남편이 입을 다물었다. 순간 모두가 찬물을 뒤집어쓴 것 같은 정적이 흘렀다.

“아빠, 지금은 아빠가 그럴 때가 아닌 것 같다.”

갑자기 가을이 비장한 목소리로 말했다.

암이란 단어가 주는 중압감 때문인지 좀처럼 이성을 잃지 않는 남편이 한숨을 내쉬며 의자에 주저앉는다.

“자궁경부암은 백신도 있다는데?”

철없는 봄이 한마디 하자 겨울이 봄의 뒤통수를 쥐어박는다.

“왜 때리는데?”

“병신아 입 다물어. 그건 미리 맞는 거야.”

겨울이 무뚝뚝한 얼굴로 말했다.

가족 중에서 누구보다 가을이 냉정하게 대처했다. 가을은 나의 담당의가 그 분야에서는 꽤 유명한 사람이라고 일단은 의심 많은 남편을 안심시켰다.

너무 지루한 일상의 반복이라 그 어떤 일도 일어날 것 같지 않던 집안에 나의 암 선고는 충격이었다. 남의 일이라고만 치부했던 일이 벌어지자 남편은 이미 인터넷으로 자궁경부암에 대한 모든 정보를 검색하기 시작했고, 수술 후 올 수 있는 후유증 사례까지 찾아내서 프린트하는 바람에 사람을 질리게 했다. 오죽하면 무던한 겨울이 제 아빠에게 그만 좀 하라고 화를 낼 정도였다.

겨울이 울었다. 비교적 덤덤한 겨울인데 암이 주는 일반적인 공포감 혹은 엄마가 걸렸다는 두려움 때문인지 참았던 눈물을 터트렸다. 오히려 여린 봄은 가을이 옆에 앉아서 입만 삐죽 내민 채 울상이다.

“병신같이 왜 울고 지랄이야.”

이 층에서 내려오던 가을이 소파에 앉아서 훌쩍이는 겨울에게 한마디 한다. 역시 의학도다운 반응이다. 하지만 지랄이란 단어는 좀 너무했다 싶어서 가을에게 한마디 하려는데 눈이 새빨개진 겨울이 가을을 쏘아본다.

“언니 네가 더 병신이다! 엄마가 암이라는데 씨….”

모처럼 만에 겨울이 세게 나갔다.

“씨 뭐? 그럼 쳐 울면 해결돼?”

두 딸의 싸움을 지켜보던 남편은 요즘은 암도 친구처럼 같이 가는 시대라고 누군가 그랬다며 겨울을 위로한다. 하지만 한번 터진 겨울의 울음은 멈출 줄 몰랐다. 그런 겨울의 우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가슴이 애잔해진다. 더불어 남편에게 말하고 싶어진다. 당신이 그럼 나 대신 친구 해보시던지라고 말이다.

“나는 엄마가 오 년 동안 재발 할까 봐 조마조마한 것도 싫고, 항암이나 방사선 치료받을까 봐 걱정이라고. 언니 너는 병원에서 암 환자 많이 봐서 엄마가 암을 걸려도 충격 안 받지? 그래 너는 독한 년이니까.”

겨울이 처음으로 제 언니에게 들이박았다. 종종 싸움은 있었지만 ‘년’ 자까지 써가면서 덤비지는 않았다.

“미친. 너 자꾸 깝죽거린다. 엄마 있는 데서 아주 질질 짜고 있을 거면 방에 들어가서 쳐 울든지 아니면 짜져 있어.”

그 한마디에 겨울이 소파에서 벌떡 일어나더니 이 층으로 올라가 버리고 그 뒤를 봄이 졸졸 따라간다.

“봄이 시집갈 때까지는 존재해야 하는데. 육십을 넘길 수 있을까?”

나는 봄의 뒷모습을 보며 말했다.

“이 여편네가 진짜. 소설가 아니랄까 봐 아주 소설을 쓴다. 늙어서 나 혼자 어쩌라고.”

남편이 노려보며 말했다.

“재미없을까 봐서?”

“그럼 다 늙어서 혼자 뭐가 재미있겠냐?”

“아, 그러시구나.”

“내 미래엔 늘 여우 같은 마누라와 토끼 같은 세 딸과 함께 있어.”

“아 그러시구나. 그동안 왜 나는 몰랐을까?”

“그러게, 왜 당신만 몰랐을까?”

화가 났다. 내가 남편만큼 건강을 챙기고 살았다면, 챙기는 김에 제 건강만 챙기지 말고 마누라 건강도 좀 챙겼으면 이런 일은 없었을 거라는 부질없는 생각들이 추적추적 내리는 가랑비처럼 마음에 내려앉는다. 인생 자체가 갑자기 우기에 들어간 것처럼 마음이 축축하고 우울하다. 그런 나를 가을이 바라본다. 아마도 앞으로 벌어질 일들을 이미 알고 있기에 가을 역시 편하지는 않을 것이다.

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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