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나는 불효자가 아니고, 당신도 못난 부모가 아니에요]

22. 네번째 추적관찰

by 아피탄트

2025년 3월 17일


3월 중순인데 대설 예보가 내려졌다.

병원 예약은 다음날 오전 7시 20분인데, 아무래도 제때 도착하기가 힘들 것 같아 주변 호텔에서 하루 숙박하기로 했다.



2025년 3월 18일


예상보다 더 많은 눈이 내렸던 오전.

전날 미리 오길 잘했다는 생각을 하며 시간 맞춰 채혈실에 도착했다.

7시 20분에 맞춰 진행된 채혈과 채뇨.

늘 그렇듯 확인해야 할 수치가 많아서, 채혈 튜브 4~5개를 채울 정도로 피를 뽑는다.


그 이후엔 곧장 CT 촬영실로 가서 접수 확인을 하고 대기했다.

검사 결과가 나올 때까지 1시간 반 ~ 2시간 정도 걸리기에, CT 예약 시간은 9시 20분이었다.


어느덧 내 차례가 되었고 조영제 투여를 위한 라인을 잡았다.

굵은 바늘은 늘 아프고, 조영제가 들어갈 땐 늘 온몸이 짜릿하다.


이번엔 완전관해 판정 후 1년 째 되는 회차의 추적관찰이라 PET/CT 촬영도 해야했다.

10시 40분 예약이라 CT 촬영할 때 잡은 라인을 유지한 채, 쉴 틈 없이 PET/CT 촬영을 위해 핵의학과로 갔다.

4번째 PET/CT 촬영.

진단을 위해 한 번, 중간 평가 때 한 번, 최종 평가 때 한 번, 그리고 관해 후 1년 차인 이번에 한 번.

시간이 참 빠르다 벌써 1년이라니.


약물을 주입하고 온몸에 고르게 퍼지기까지 40분 가량을 조용히 누워서 대기실에 있다가, 촬영실로 들어가 PET/CT 촬영도 무사히 마쳤다.

모든 절차가 마무리 된 후 시간을 보니 11시 30분 정도가 되었다.



2025년 3월 25일


네번째 추적관찰


영상 판독 결과를 듣는 날.

조금 일찍 도착해 내 차례를 기다렸다.


암 병동엔 여전히 사람들이 너무 많았고, 그 중에선 여전히 내가 가장 어린 것 같았다.

이미 누적된 치료로 인해 지쳐보이는 사람도 있었고, 아직 암을 받아들이지 못해 걱정하고 두려워하는 사람도 있었다.

다들 건강을 되찾고 일상을 되찾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며 기다리는 중, 내 차례가 되었다.


교수님께서는 밝은 모습으로 결과가 아주 좋다고 말씀하셨다.

듀빌스코어(DS)도 1점이 나왔다.(경과가 매우 좋다는 의미)

지난 추적관찰 때 물혹 같은 게 있으니 지켜보자는 말씀에 걱정도 좀 됐었는데, 깨끗하다는 얘기를 들으니 다시 안심이 되었다.

그러면서 이제는 1년이 지났으니, 추적관찰 기간을 기존 3개월에서 4개월로 늘리자고 하셨다.


- 채혈/CT 촬영: 7월 15일

- 외래 진료: 7월 22일





나는 불효자가 아니고, 당신도 못난 부모가 아니에요



제가 암 경험자로서 벌써 2년에 가까운 시간을 지내고 있는데요.

가끔 직간접적으로 암환우들의 소식을 접하곤 해요.

그 중엔 어리거나 젊은 환우들도 더러 있는데, 많은 분들이 크게 아프게 되었으니 불효를 저지른 것 같다고, 그래서 부모님께 죄송하다고 말씀을 하시더라고요.

그리고 반대로 그들의 부모님은 자식이 아픈 게 본인 탓이라며 건강하게 낳아주지 못해 미안하다고 하셔요.


어떤 마음으로 그렇게 생각하고 말씀하시는지 정말 잘 이해하지만, 저는 동의하지 않을래요.

나는 단 한 번도 당신을 원망한 적 없고, 암에 걸렸다고 해서 불효를 저질렀다 생각하지도 않아요.


변함없이 내게 주어진 환경 속에서 나만의 색깔로 내 삶을 가꾸어나갈 것이고, 마찬가지로 당신에겐 당신의 삶이 있을 뿐이에요.

부모에게 자식은 늘 어린 아이같다는 거 잘 알지만, 불안하고 걱정되고 미안하더라도 일단 놓아주고 지켜봐주시는 건 어떨까요.

그렇다고 그 관계에 사랑이 없어지는 게 아니잖아요.

죄책감은 사랑의 부분집합이 아니었으면 좋겠어요.

좋은 어른이 될 수 있게 이끌어주신 당신 덕에, 다들 잘 해낼 수 있을 거예요.


저도 마찬가지예요.

많은 부모가 그러하듯 어렸을 때부터 당신께선 가진 게 많이 없다, 해준 게 많이 없다 미안해 하셨지만,

대신 그 만큼을 사랑으로 채워주셨고, 그게 모여서 지금의 제가 됐거든요.

겨우 나라는 사람이 이렇게 큰 응원과 격려와 행복과 행운 속에서 살 수 있는 것도 오롯이 두 분 덕이죠.


부모로서 마땅히 지불해야할 책임은 이미 오래 전 다 지불하셨어요.

그러니 부디 부모라는 무게에서 더 자유로워지시고, 당신 스스로를 가장 귀하게 여기시길 바라요.

그렇게 서로가 서로에게서 독립할 수 있다면 좋겠어요.

내가 올바르게 성장하길 지켜보며 기다려주신 당신처럼, 이젠 제가 기다릴게요.


이 모든 걸 깨달을 수 있는 시간이어서, 암에 걸린 게 꼭 나쁜 일만은 아니었다는 생각이 드는 요즘이네요.

keyword
이전 22화[여전히 무섭고 가끔은 버거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