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 세번째 추적관찰
추적관찰이 다가오면 불안해진다.
그리고 불안함이 찾아올 때마다, 완전관해 판정을 받았을 때 처음 그 마음가짐을 잊지 않으려 한다.
그렇게 연말을 맞이해 이번에도 한국혈액암협회에 50만원을 기부했다.
혼자서 이겨내기엔 암이 참 가혹한 질병이었다.
몸도 마음도 무너뜨리고, 남은 삶엔 늘 불확실성이 따라다닌다.
돈도 많이 든다.
항암치료 한 번 받을 때마다 적게는 수십만원에서 많게는 수백만원, 심지어는 수천만원의 비용이 들기도 하니까.
어째서인지 암과 싸우면서부터, 다양한 사연을 가진 주변의 암환자들이 눈에 밟히기 시작했다.
또 그런 그들이 무너지지 않도록, 다시 건강히 돌아올 수 있도록 하는 작은 마음이 되어주고 싶다고 감히 생각해왔다.
물론 내 마음의 크기가 그들이 감내해야할 여러 어려움에는 한참 미치지 못할만큼 보잘것없고 사소하겠지만,
그럼에도 차곡차곡 쌓이다보면 시나브로 뜨거워져서 결국엔 우리 모두를, 나아가서는 세상을 더 따뜻하게 만들어줄 거라 믿고 있다.
지금껏 내가 이뤄온 모든 성취들이 오롯이 나만의 힘으로 이루어낼 수 있었던 게 아님을 잘 알고 있고,
감사하고 과분하게도 내가 마땅히 누렸어야할 것보다 훨씬 많은 것들을 누리며 살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많은 분들의 도움 덕에 암을 이겨낼 수 있었음을 잊지 않고,
그 간극의 아주 조그마한 부분만이라도 삶에서 가장 어려운 시기를 보내고 있을 암환자들을 위하고싶다.
- 10:00 채혈
- 10:30 피부과 진료
- 12:00 CT 촬영
지난 번과 달라진 건 10시 반에 피부과 진료까지 예약을 해뒀다는 거였다.
조금 딜레이 되어 걱정했으나 무사히 예정된 시간에 모든 검사를 마무리할 수 있었다.
예약 시간은 오후 2시.
한시 반 쯤 도착해서 잠시 기다리다 진료실에 들어갔다.
교수님께서는 결과를 찬찬히 보시더니 특별히 문제될 거 없다, 좋다고 말씀하셨다.
그러다 사진 한 장을 보여주시면서 말씀을 이어가셨다.
"여기 보시면 물혹처럼 생긴 게 하나가 남아있네요."
"이건 완전관해 판정을 내릴 때부터 있던 건데, 그 때도 세포 성장의 징후가 하나도 없었고, 9개월이 지난 지금까지도 크기 변화 없이 똑같긴 해요."
"일단 계속 지켜봅시다."
나와서는 다음 예약을 잡았는데, 다음 추적관찰이 딱 1년 째 되는 회차라 PET-CT도 찍게 될 거라 하셨다.
- 3월 18일: 채혈, CT, PET-CT
- 3월 25일: 외래 진료
운전을 하며 집으로 돌아오는 길엔 마음이 다시 무거워졌다.
분명히 저번과 같은 소견인데, 물혹처럼 생긴 게 남아있단 말을 들으니 다시 불안해졌다.
완전관해를 받고 난 지난 9개월처럼 앞으로도 별 일 없을 거라고 생각을 하면서도, 다른 한 편으로는 아직 완전히 끝난 게 아니구나, 혹시나 재발하면 어떡하지라는 생각이 계속 들곤 했다.
만약 재발해서 다시 항암치료를 받아야 한다고 하면, 솔직히 잘 해낼 자신이 없거든.
아무래도 많이 무섭고 버거웠나보다.
잘 이겨내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말 한 마디에 흔들리는 내가 참 작아지는 오늘이다.
그렇지만 포기할 생각은 없다.
여전히 나에겐 삶을 더 긍정적인 방향으로 이끌 많은 기회가 남아있고, 가장 행복한 순간은 아직 오지 않았을 테니까.
매일이 맑다면 사막이 될 거라는 말이 있었지.
가끔은 비도 오고 눈도 내려야 더 비옥해지지 않을까.
지치지 않고 몸도 마음도 가꿔나가야지.
그래서 궂은 비에도 떠내려가지 않고, 많은 눈에도 파묻히지 않는 단단한 사람이 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