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요한 건 마음을 움직이는 것

by 아피탄트

1.

"아니, 약국에 왜 장난감을 팔아요?"


비단 약국만의 얘기는 아닐 것이다.

아이들이 주로 다니는 곳 혹은 부모님이 아이들을 데리고 다닐만한 곳엔 심심찮게 아이들의 시선을 사로잡기 위해 장난감이 진열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그것도 딱 아이의 눈높이에 맞춰서, 가장 낮은 곳에서부터.


그런데 아이들은 비용을 지불할 수가 없기 때문에, 계산은 늘 부모님의 몫이 된다.

반대로 부모의 입장에선, 매번 이런 곳을 지나칠 때마다 아이가 원하는 걸 사줄 순 없다.

갖고싶은 걸 갖지 못하게 되는 아이는 울거나 떼를 쓰기도 하고, 부모님들은 그 이후에 전개되는 상황까지 해결해야 한다.

그러다보면 아주 당연하게도, 화살이 나에게 올 때가 있다.

"아니, 약국에 왜 장난감을 팔아요?"


아이들을 현혹해서 경제적인 이윤을 창출하려는 거 아니냐고 묻는 듯한 그 날카로운 질문은 아프지만 완전히 부인할 순 없고, 그 사실 자체를 부정하는 건 자기 기만이다.

그러나 그런 지적을 일부 수용하면서도,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들을 납득시킬 수 있어야 한다.

"저희도 소매업이니까요."라거나 "저희 말고도 아이들 장난감 파는 곳은 많은데 왜 저희한테만 그렇게 말씀하세요?" 따위의 대답은 틀린 말은 아닐지언정, 그런 질문을 한 사람들을 납득시킬 순 없다.


중요한 건 마음을 움직이는 것이다.

그걸 염두에 둔 나는 두가지 중 하나를 말씀드린다.


"약국이 1층에 있고 나가면 바로 차도가 있다보니, 생각보다 위험한 상황이 생겨요. 특히 처방 받아오신 약을 설명드릴 때는 보호자께서 온전히 아이에게 집중할 수가 없다보니, 그 틈에 아이들이 문을 열고 약국 밖으로 나가는 경우가 있어요. 그래서 저희 나름대로 아이들의 시선을 묶어놓을 수 있는 게 뭘까 고민했는데, 아무래도 장난감만한 게 없더라고요."


"저희는 약국이라는 공간이 아이들에게 좋은 기억으로 남아있는 공간이었으면 좋겠어요. 병원이든 치과든 약국이든 주로 아프고 컨디션이 좋지 않을 때만 찾게 되다보니, 아이들에게 긍정적으로 기억되기가 쉽지 않아요. 약국의 경우는 받아가는 약들이 맛도 없고 되게 쓰잖아요. 그 기억들이 성인이 되어서도 영향을 끼쳐요. 그래서 약 한두알만 먹어도 충분히 호전될 상황에서 약국이라는 공간과 약에 대한 기억때문에 그냥 참고 마는 경우를 꽤 접하거든요.

그러다보니 저희는 약국만큼은 좀 열려있는 공간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을 했어요. 컨디션이 안 좋고 아플 때, 혹은 더 건강해지고 싶을 때 편하게 찾는 곳이길 바라고, 그 시작점은 어렸을 때 방문한 약국에 대한 경험에서부터이지 않을까 생각해요."


내 변명(?)에 대한 반응은 다행히 꽤 긍정적이었고, 적어도 그 자리에서 만큼은 다 납득하고 수긍하셨다.

그리고 두번째로 얘기했던 공간에 대한 경험의 힘은, 요즘도 느끼고 있다.



내가 어렸을 때에도 약국에는 '텐X' 이라는 씹어먹는 비타민 영양제가 있었다.

맛도 되게 좋아서 어쩌다 그걸 가지고 유치원이나 학교에 가는 날엔 다 나도 하나만 달라며, 원래는 없던 인기를 누릴 수 있었다.

그리고 그 때 나랑 같이 그 비타민 영양제를 나눠먹던 내 또래들이 지금은 다 어른이 되었고, 이제는 일을 해서 본인이 직접 번 돈으로 약국에 '텐X'을 사러 온다.

'진짜 어른이 된다는 건 내가 번 돈으로 '텐X' 한 줄을 사서 하루만에 다 먹는 거야.'라는 우스갯소리를 하면서.


그러니 나는 아이들에게 약국이 더 긍정적인 기억으로 남아있는 공간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2.

마음을 움직일 수 있다면, 더한 갈등까지 이어질 수 있는 상황을 해결할 수도 있다.

왜 이렇게 오래 걸리냐며(실제로 오래 걸리지 않았지만) 항의하던 손님에게 이렇게 답했던 적이 있다.


"지금 놓여진 환경에서 최대한 빠르게 해드렸고, 이게 저희의 최선이에요. 그런데도 저희가 그런 말씀을 들으면 정말 속상해요."


"아 죄송합니다. 제가 무례했네요."


서로 존중하는 마음만 남아있다면 결국엔 더 나은 방향으로, 서로에게 이익이 되는 방향으로 그 마음을 움직여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거라 믿고 있다.


그런가 하면, 단순히 의학적인 정보의 나열만으로 상대를 설득하기 어려운 경우도 있다.

특히 약을 복용하지 않는다고 그 결과가 바로 나타나지 않는 경우가 그렇다.

역시 그런 순간에도 어떻게 하면 마음을 움직일 수 있을까 고민한다.


이를테면 혈압약, 고지혈증약, 당뇨약 등을 복용하시는 분들.

그들에게 "내가 이걸 꼭 먹어야하나요?" 라는 질문을 가끔씩 듣는다.

그럴 때 나는 단순히 처방전에 나와 있는 약만 주고 끝내는 게 아니라, 복용함으로써 얻을 수 있는 이점, 복용하지 않았을 때 발생 가능한 위험 등 도움이 되는 정보를 제공해 의심이나 걱정 없이 약을 복용하도록 하게 만들어야 한다.

그런데 가끔씩 단순한 의학적인 정보를 나열하는 것만으로는 와닿지 않아 하는 환자들이 있다.

무슨 말씀인지는 잘 알겠지만, 그래도 당장 안 먹는다고 큰일이 나는 건 아니니까 먹고싶지 않다는 분들.


"주변의 소중한 사람들을 오랫동안 건강하게 뵈면서 지내셔야죠. 그 첫번째 출발점이에요."


의학적인 정보를 제공했을 땐 움직이지 않던 분들이, 위처럼 말씀드릴 땐 움직이게 되는 경우도 있다.



3.

그러니 내가 약학을 전공했다고 해서, 철저한 논리와 이성의 영역인 과학에서만 머물러선 안 된다.

결국은 사람을 대하는 게 업이고, 사람을 잘 대하려면 그들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어야 함을 잊어선 안 된다.


이런 내 마음도 벼리고 또 벼려서 나에 대한 불신, 약에 대한 불신, 약국에 대한 불신을 가진 사람이 내게 찾아오더라도 그들을 설득시킬 수 있는 약사가 되고싶다.

수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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