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의약품 수거함

by 아피탄트

1.

우리 약국에는 폐의약품 수거함, 일종의 의약품 전용 쓰레기통이 있다.

따로 비용은 받지 않고 그냥 호의로, 봉사하는 마음으로 어느 약국에서 처방받고 구매한 약인지와는 무관하게 폐의약품을 받는다.


그러나 호의에는 늘 그것을 이용하려는 사람이 뒤따르기 마련이다.

플라스틱 분리배출함에는 플라스틱만 버려야 하듯 폐의약품 수거함에는 의약품만 버려야 할텐데, 간혹 각종 건강기능식품은 물론 집의 생활 쓰레기까지 가져와서 버리는 이들이 찾아온다.

의약품만 분리해서 버려달라는 안내문은 거들떠보지도 않는 그들은 유독 바쁘고 손님을 응대하느라 신경 쓸 겨를이 없을 때, 그래서 내가 대응하지 못할 때 조용히 와서 조용히 가는 것 같기도 하다.


2.

그런 일들을 계속해서 겪다 보니 사람에 대한 신뢰가 떨어지고, 신뢰가 떨어지다 보니 이젠 폐의약품 수거함에 무언가를 버리고 있는 사람들을 보면 의심부터 하게 된다.

그런 의심들이 어느새 나를 더 날카롭게 만들고 있었다.

폐의약품을 수거하냐는 질문을 받을 때마다 나는, 늘 끝에 의약품만 버려야 된다는 말을 덧붙이곤 했다.


3.

한가한 어느 일요일이었다.

밝은 목소리의 어느 젊은 여성 손님이 와서는 정중하게 폐의약품을 버려도 되냐고 물어보셨다.

날카로움이 내재화된 나는 또 의약품만 버려야 된다는 걸 강조했고, 큰 비닐봉투에 한가득 담겨있는 약을 보니 혹시나 다른 것도 있는 건 아닌지 의심이 되어 직접 나가서 봉투를 들여다보기도 하였다.

봉투 속에는 정말 의약품만이 있었고, 무안해진 나는 잘 정리해서 버리고 가라는 말씀을 드리며 다시 자리에 앉았다.


한 5분 정도 지났나, 폐의약품 배출을 끝낸 그 손님께서는 감사하다는 말씀을 하면서 약국을 떠났다.

그런데 감사하다는 말씀을 울면서, 그리고 더 큰 울음을 참으려는 듯 하셨다.

그 울음을 통해 추측건대, 돌아가신 부모님의 약을 폐기하러 오신 것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4.

이내 내가 앞서 했던 행동들이 참 부끄러워졌다.

쓰레기통에 늘 쓰레기만을 버리고 가는 건 아니라는 걸 잊고 있었다.

아마 그 손님께서는 남아있는 부모님의 약을 폐기함으로써 이제 정말 부모님을 보내드린다고 생각하시지 않았을까.

더군다나 약은 늘 그들의 삶과 함께하며 살기 위해서 마지막까지 드셔야만 했던 것일 테니, 끝내 이를 폐기한다는 건 부재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음을 의미하기도 할 것이다.

폐의약품 수거함에 함께했던 추억과 주고받았던 사랑도 담아두고 갈 수 있다는 걸 일요일의 어느 손님 덕에 깨닫게 되었다.


호의를 이용하는 무례한 사람들에게 실망하더라도, 냉소하며 그들과 동화되지 않으려고 노력해야지.

그렇게 몇 번을 실망할지언정, 내가 그들과 같은 모습으로 다른 이들에게 무례해지지 않도록 부단히 갈고 닦아야겠다.

수요일 연재
이전 10화조수석에 늘 사람을 태우려는 이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