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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농 Sep 18. 2021

프롤로그

언젠가는 글을 쓸 줄 알았어.

'원내생 진료실? 그게 뭐야?" 


 의료법 27조 제1항에는 "의료인이 아니면 누구든지 의료행위를 할 수 없으며, "라고 명시되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면허자가 남몰래 의료행위를 하다가 적발되는 경우에는 5년 이하의 징역이나 5천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위반했을 때 비슷한 형량을 부과하는 법들 가운데서 특히 의료법 27조 제1항은 사회적인 관심도가 높은 편이다. 보통 눈썹 문신, 타투 등을 제외한 무면허 의료행위가 이뤄지다가 적발되면 공중파 9시 뉴스에서 다뤄지기 때문이다. 하기사 처벌 강도가 높은 편이고 애당초 의료행위는 진입장벽이 높기에, 섣불리 무면허자가 의료행위를 도전할 가능성은 지극히 낮아서 매스컴에서도 흥미롭게 다룰만한 소재다.

 하지만 나는 겁도 없이 햇수로 2년째 무면허 치과진료 중이다. 그것도 서울 한복판 대학병원에서 말이다.


 사실 위에서 언급한 조항에는 몇 가지 예외가 있다. 그중 하나가 원내생 진료실 같은 케이스다. 메디컬 학과를 전공하는 학생에게는 보건복지부령으로 정하는 범위에서 부분적인 의료행위를 허락해준다. 따라서 전국에 있는 11개 치과대학병원에서는 교육 목적으로 학생 신분인 본과 3, 4학년에게 치과 진료를 할 수 있는 특별한 권한을 준다. 물론 슈퍼바이저(찐 치과의사) 교수님 지도 하에 모든 과정이 이뤄진다.


 소개가 늦었다. 나는 치과대학 본과 4학년 학생이며, 현재 동기 CC로 활동 중이다. 아! 참 그리고 내년에는 CC 활동은 그만두고 부부로 새로운 활동을 시작하려고 한다. 그러다 보니 지금은 모든 게 서투르다. 예비 치과의사로서 환자를 진료할 때도, 예비 신랑으로서 결혼을 준비하는 것도. 그렇지만 서툴던 순간이 지나고 시간이 흘러 문뜩 어벙벙했던 그 시절을 회상해보면, 너무나 성실히 누렸던 시간과 푸릇했던 모습이 기특하고 안쓰러워 남몰래 머리를 숙이고 미소를 지을 때가 많다. 

 

 글을 쓰게 된 두 가지 이유 중 하나는 사진을 잘 찍지 않아서다. 

 수많은 기억들이 바쁜 생활에 떠밀려 너무나 쉽게 휘발되는 것을 여러 번 봤다. 당장 생각나는 것 하나는 예식장 투어를 하던 날, 첫 번째로 들렸던 곳에서 매니저님이 계약에 관한 설명을 하시다가 6인 시식권을 제공하겠다고 했다. 맛있는 결혼식 뷔페를 그것도 6명이나 공짜로 먹게 해 준다는 소리에 깜짝 놀라  

 "밥을 먹을 수 있어요?" 

라고 되물어보며 어떤 친구들이랑 와서 이 맛있는 밥을 같이 먹어야 하나 생각하던 찰나에, 나만 빼고 나머지 사람들이 박장대소하기 시작했다. 알고 보니 통상적으로 예식장과 계약하면 양가 부모님을 모시고 6인 이서 밥을 먹을 수 있는 시식권을 준댄다. 조금은 창피한 순간이었지만 나의 무식함으로 결혼식장의 화려함에 기가 눌려 의기소침해졌던 우리 커플의 분위기가 사르르 녹아내렸던 행복한 순간이었다. 만약 결혼식장을 배경으로 셀카라도 찍어뒀다면 '이때 우리가 그랬었지'라고 회상할 가능성이라도 있을 텐데 사진도 남겨두지 않은 우리에게 이 추억의 유통기한은 길어야 1~2년 일 것이다.

 나중에 진짜 치과의사가 되고 진짜 부부가 되면 뭐든지 미숙했던 그래서 가슴 뛰고 설렜던 이 시절이 머릿속에 생생하게 남아있지 않아 남몰래 머리를 숙이고 웃을 일이 사라질 것 같았다. 흐르는 시간은 잡지 못하니 잊혀 가는 기억이라도 잡고 싶어 글을 쓰기 시작했다. 


 글을 쓰게 된 나머지 이유는, 설명하긴 힘들지만 언젠가는 글을 쓸 줄 알았다. 

 무라카미 하루키 작가님, 김연수 작가님 사이에는 몇 가지 공통점이 있다. 그중 하나가 바로 '마라톤 광'이라는 점인데, 두 분 다 마라톤을 준비하며 적은 수필도 있을 정도로 달리기에 진심이시다. 나도 좋아하는 취미 중 하나가 달리기다. 몇 년째 주 1회 이상 홍제천을 10K 이상 뛰고, 강원도에 가서 20K 산악마라톤을 해본 경험도 있다. 물론 Strava 어플도 깔려있다. 

 1년 전 어느 날 졸졸 흐르는 물소리를 들으며 홍제천을 달리는데 갑자기 글을 쓰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야구장에서 경기를 관람하던 중, 높이 뜬 공이 햇빛과 함께 내려오는 모습을 보고 소설을 쓰겠다고 다짐한 무라카미 하루키 작가님처럼. 마치 그 일을 하려고 태어난 사람처럼 글을 쓰기 시작했다는 김연수 작가님처럼. 

 하지만 계시처럼 내게 온 작문 욕구는 금세 바쁜 학교 생활의 뒷전으로 밀려났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여자친구와 부모님 사이에서 결혼식 날짜를 조율하며 마음 복잡한 하루를 보낸 2021년 8월 중순. 여느 날과 다름없이 홍제천에서 나이트 러닝을 하던 중 7K 쯤 달렸을 때, 느닷없이 오늘의 감정을 글로 남겨두고 싶다는 생각이 마음 안에서 요동을 치고 심장을 더욱 빠르게 뛰도록 만들었다. 아니 글쎄 심박수가 평소 달리기에서는 150 정도였는데, 170까지 올라가는 거 아니겠는가? (물론 센서 오작동일 가능성이 높다.) 그렇게 발소리도, 심장도 쿵쾅쿵쾅 거리며 방에 들어와서는, 씻지도 않고 의자에 앉아 인생에서 처음으로 과제가 아닌 쓰고 싶은 글을 적었다. 


 앞으로 쓸 글은 크게 3종류로 나눌 수 있다. 첫 번째로 유독 처음에 배우는 건 무엇이든지 느린 나의 이야기. 두 번째로 원내생 진료실에서 함께 성장해가는 예비 치과의사 커플의 이야기. 마지막으로 부부가 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예비 신랑 신부의 이야기. 언젠간 능숙한 사람이 되어 미숙했던 모습을 돌아볼 날이 오길 바라며 기록을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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