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마농 Sep 25. 2021

나도 많이 걸려봐서 잘 아는데, (1/2)

 지금 여기는 대학병원 이비인후과 외래진료실. 여자 친구는 몇 십분 째 의료진에 둘러싸여 고음을 지르는 중이다. 먼저 온 1, 2년 차 레지던트들은 심각한 표정으로 서로를 마주 보더니 고개를 가로젓고 고년차 레지던트에게 콜을 한다. 3시간 동안 무려 4명의 이비인후과 의사 손을 거쳤는데 도통 해결될 기미가 보이질 않는다. 그렇게 몇 시간 같은 몇 분이 지나고 바닥에 크록스 신발 끄는 소리가 들린다. 멀찌감치 세상만사를 통달한 표정으로 흰 가운 휘날리며 누군가 터벅터벅 걸어온다. 풍기는 포스가 다르다. 과연 이번에는 길고 긴 고통을 끝낼 수 있을까?   


  나주, 영광, 횡성, 이천 등 각 시군의 이름을 들으면 자연스레 연상되는 특산물들이 있다. 나주와 영광은 명절 전날 삼촌이나 고모가 선물로 줄 것 같은 큼지막한 배와 짭조름한 굴비가 연상된다. 횡성은 백화점 식품코너에서 350,000원 가격표를 써놓고 황금빛 부드러운 보자기에 포장되어 있는 한우가 생각난다. 마지막으로 이천 하면 당연 쌀 아닐까? 전 국민의 주식인 4차 산업혁명의 쌀, 하이닉스의 10 나노미터 반도체가 이천의 특산물이다. 이쯤에서 서해안에 위치한 나의 고향을 소개하려 한다.  

 "고향은 군산이에요."

 대부분은 생소하다는 표정을 짓는다. 이런 상황은 이미 익숙하니, 최대한 상대방이 머쓱하지 않도록 전라북도에 있는 도시 또는 전주 옆에 있는 도시라고 간단히 언급하고 스포츠나 연예계 소식으로 화제를 돌린다. 그런데 뜨문뜨문 군산이라는 도시를 익히 잘 알고 있다는 표정으로 손뼉을 치며 이렇게 외치는 사람들이 있다.
"군산오징어!"

그 말을 들으면

"가보진 못했지만 맛있는 집으로 알고 있어요!"

반갑게 웃으며 이야기한 후, 전과 마찬가지로 화제를 돌린다. '군산오징어'는 잠실을 본점으로 하는 오징어불고기 체인점 상호명이다. 사실 군산 앞바다에서는 3-4월에는 주꾸미, 9~10월에는 꽃게가 꽤 잡히지만 오징어 어획량은 동해안에 비해서 현저히 저조하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 군산시가 프랜차이즈 상호명처럼 오징어를 앞세워 명함을 내미는 건 택도 없는 일이다.

 그렇다면 군산의 특산물은 과연 뭘까? 그 주인공은 바로 '박대'다. 군산시에서는 향토사업단을 꾸려 유명세가 떨어지는 생선인 박대를 지역 특산물로 적극 홍보 중이다.


 근해 어획종, 진행 중인 향토사업 등을 꿰고 있어 누가 보면 고향에 애정이 깊다고 오해할 수 있는데, 중학교 이후로 지금까지 객지 생활을 해서 지역소식에는 까막눈이다. 누군가 군산 여행을 가니 맛집을 소개해달라고 부탁해도 인스타에서 찾아보라는 말만 할 뿐이다. 군산이라기보다 군산의 수산물에 대해 유독 잘 아는 이유는 다름 아닌 아버지 때문이다. 아버지는 근 30년 동안 수산물을 취급 및 유통하시며 우리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셨다. 가정환경 탓인지는 몰라도 어릴 적부터 육고기보다 물고기를 많이 먹고 자랐는데, 조기에 형성된 식습관 덕분에 또래 친구들에 비해 생선 바르는 기술은 항상 우위에 있었다. 한 번은 고등학교를 입학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 급식시간에 생선구이가 배식됐다. 주위에 앉은 몇몇 친구들이 가시를 발라먹는 것이 귀찮다며 반찬에 손도 데지 않고 자리에서 일어나려고 할 때, 생선가게 집 아들이란 사명감에 불타 아직 생선 맛을 모르는 몽매한 녀석들을 다급히 멈춰 세웠다.

"내가 생선가시 발라줄게. 10초면 돼!"

 거뭇한 수염 자란 덩치 큰 소년들은 얼마 지나지 않아 내 앞에 아기새마냥 앉아서 생선 살만 쏙쏙 집어먹기 시작했다. 호기심 많은 친구가 오물오물거리며 질문을 한다.  

"사자성어대로 생선은 머리가 맛있어?"

 전문가는 아니어서 정확한 답변이 아닐 수 있겠지만, 구이로 먹는 생선 대부분은 부위별로 맛 차이가 크진 않다. 물론 예외가 있다. 가자미과 생선 같은 경우, 바닥에 한쪽 면을 붙이고 살기 때문에 배면과 등 면에서 확연한 식감 차이가 존재한다. 결국 '생선의 머리냐, 몸통이냐, 아니면 꼬리냐?'라는 질문에, 살 발라먹기 편한 부위가 있다고 대답할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결론을 확대 해석하면 생선 머리는 발라먹을 살이 전혀 없으니 쓸모없는 부위라고 오해할 수 있다. 우리 집 식탁 비밀을 하나 말해주자면, 사람도 얼굴에 볼살이 있듯이 대부분의 생선 얼굴에도 쌀 한 톨 정도 크기의 살이 있다. 그 부분까지 야무지게 먹는 사람은 여태껏 나를 제외하고 우리 아버지밖에 보지 못했다. 고향집에 내려와서 아버지와 생선구이를 먹게 되면 식탁 위에서는 그야말로 자강두천, 생선 해체쇼가 펼쳐진다.


 최근 들어 코로나 때문에 학교, 기업, 관공서 등의 단체 급식이 멈췄다. 가계의 주된 수입원이 단체 급식에 사용되는 수산물 납품으로부터 나왔는데, 길이 꽉 막혀버린 셈이다. 이렇게 판로가 막히니 아버지는 새로운 수익 창출을 위해 인터넷 상품 판매로 눈을 돌리셨고, 군산의 특산물 박대가 그 주인공으로 낙점됐다.

 초기에는 대중적인 조기, 고등어 등이 물망에 올랐지만, 이미 그 시장은 레드오션이어서 후발주자인 우리 집이 경쟁하기에는 어려움이 많았다. 그러던 중 때마침 군산시 향토사업단에서 박대를 가공, 판매하여 지역 특산물로 홍보할 업체들을 모집하기 시작했다. 내 통밥에는 시 차원의 지원도 있을뿐더러, 타 어종에 비해서는 블루오션이기에 아버지께서 새로운 시장에 진입하신 게 아닌가 싶다.  

 아무튼 이러나저러나 노난건 나였다. 원체 박대를 좋아하다 보니 고향에 내려갔을 때만 감칠 나게 먹는 것이 아쉬웠는데, 이제는 서울에서도 아버지 상품을 받아 손쉽게 요리해 먹을 수 있게 된 것이다.

 기대는 곧바로 현실이 됐다. 정말 시도 때도 없이 박대를 구워 먹기 시작했다. 일주일에 두세 번 프라이팬에 식용유를 둘러 박대를 구워 먹었다. 이렇게 구이를 해 먹을 때마다 여자 친구에게 밥 잘 챙겨 먹고 있으니 걱정 말라는 보고 겸 자랑 사진을 보냈다. 그녀는 원래 생선구이를 선호하지 않았지만, 질리지도 않고 일주일에 몇 번씩 먹는 나를 보며 한 번쯤은 먹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나 보다.    

"박대 살 수 있는 사이트 링크 보내줘! 나도 사 먹을래!"

그럴 순 없다고 했다. 당장 자취방 냉동실만 열어도 낱개 포장된 박대가 몇십 마리는 있는데, 어찌 사 먹으라고 하겠는가? 곧바로 아버지께 연락을 드려 여자 친구가 먹고 싶어 하니 한 박스만 보내달라고 요청드렸다.

"예비 며느리 먹을 건데 좋은 상품만 골라 담아 줘야겠네!"

  며칠 후 박대를 담은 상자가 그녀의 집에 도착했다.

"이렇게 생긴 생선은 난생처음 봐!"

 물고기 준전문가로서 전라도 해안가에 살지 않는 이상 접하기 쉽지 않은 생선이라는 설명과 함께 맛은 어떠냐고 조심스레 물어봤다.

"아주 담백하니 맛있어!"

안도의 한숨이 나왔다. 앞으로 결혼하면 한 달에 두어 번은 박대를 먹는 것이 작은 소망이었는데, 혹여나 그녀의 입에 안 맞으면 어떡하나 걱정했었다. 다행스럽게도 박대는 나와 그녀의 취향이었다.  


여자 친구의 군침을 돌게 한 박대 구이다.

 

 2021년 6월 13일 일요일, 야속하게도 힘든 일들은 함께 손을 잡고 난데없이 우리 일상의 문을 두드린다.

 내일부터 기말고사 시험이 시작된다. 월요일 첫 시험은 '임상고정성보철학', 암기해야 할 양이 많고, 작년 수업과 다른 부분도 많아 꽤나 까다로운 과목이다. 시험에 대한 만반의 준비는 마쳤지만, 아침부터 여자 친구 걱정이 머리를 맴돈다. 느닷없는 걱정에 대해 궁금할 수 있는데, 그녀는 매주 일요일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아르바이트를 한다. 월요일 시험을 온전히 준비할 절대적인 시간이 부족하며 남들 공부하는데 일을 한다는 스트레스도 얼마나 크겠는가? 남자 친구로서 최대한 멘털 케어를 해주기 위해 시간별로 응원의 메시지 그리고 꼭 외워야 할 내용들을 정리해서 보내주었다.  

 해가 서서히 질 무렵, 그녀에게 무사히 일을 마치고 집에 도착했으며 이제 저녁을 먹으러 가겠다고 연락이 왔다. 이렇게 성실하고 씩씩한 사람이 세상에 어디 있겠는가?

 "식사 맛있게 하고 남은 시간 열심히 공부하자!"

 진심을 담은 응원의 메시지를 보내고 드디어 마음 편히 책을 펴는데, 그녀에게 갑자기 연락이 온다.

 

"나 목에 생선 가시가 걸린 것 같아. 응급실 가야 하나?"

 귀엽다. 바닷가 사람들 입에서는 들어보지 못했던 신선함이 잔뜩 느껴진다. 이후 나는 그녀의 엉뚱함과 귀여움에 취해 순간 상황 판단력이 흐려져 책임지지 못할 말을 내뱉었다.

 "나도 많이 걸려봐서 잘 아는데, 암시랑토 안 해!"

 그 이후 벌어질 다사다난함은 생각하지 못한 체.



-- (2/2)에서 이어집니다.

 

   




작가의 이전글 프롤로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