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르시스트 어머니와 연을 끊다

자발적 고아로 살아온 10년,, 나르시스트들은 간지럼을 타지 않는다.

by 카일 박

"왜 이렇게 늙어 버렸니 늙어도 아주 흉하게 늙어 보인다" "내가 괜히 의사를 만들었구나 참나"


의사가 되어 한국을 방문한 내게 어머니가 했던 12년만의 첫 대사 였다. 외국에서 사는 내게 인격이나 외모 지적은 생경했지만 포인트는 "내가 괜히 의사를 만들었구나" 였다. 나의 노력으로 사선을 넘어, 언어 장벽과 35살의 나이를 극복하며 이루어 낸 것이 아니라 어머니가 만든 거였다. 당연히 어머니의 성과다. 하지만 서글 펐다


"'수고했다', 정도는 말 해 줄 수 있잖아 그러면 고아가 되지 않을 수도 있었어 그 한마듸면 충분 했어 엄마"


유투브에 나르시시즘 전문가들이 많지만 대부분 관념적 이야기들이다. 왜곡된 자기애적 인격 장애. 자신을 사랑하는 건 좋다. 비극은 자신만을 사랑함이다. 자신이 세상의 중심이고 다른 사람은 독립된 인격체가 아닌 자신을 위한 소품이다. 그 소품이 자식일 경우 치명적이다. 완벽한 인격이 없듯 어머니도 완벽하지 않다. 하지만 모든 어머니들이 자식을 사랑한다는 편견을 버리자. 내 이야기를 할 수 있다는 건 심연의 상처를 치유까진 아니더라도 어느 정도 극복 되었음이다.


nature2.jpg


오래전 내가 사귀었던 분은 딸이 둘이다. 미국에서 태어난 딸 둘을 이혼 후 아기때 부터 훌륭하게 혼자 키웠다. 세번 이혼, 각각의 결혼 생활이 삼개월이 넘지 않은 과거가 전혀 문제가 되지 않을 정도다. 위대한 어머니다. 외국에서 자라면 한국 언어와 문화를 반반씨만 안다 그 애들은 달랐다 내가 영어를 하면 미국 사람이되고 한국말을 하면 한국 사람이 되었다. 읽고 쓰기 조차 완벽했다. 예의 바르고 공손하며 인사성도 밝다. 동생은 아르바이이트를 하고 직장 생활을 하는 언니는 일년 동안 돈을 모아 해마다 여름에 한국에 나가 할어 버지의 임플란트를 해드리고 할머니의 김장을 도와 드린다. 아름답다. 내 눈에 치명적인 위험이 보이기 전까지.


여기 시험을 망친 두 아이가 있다 한 아이는 어머니에게 혼이 날까 자신을 걱정 하고 다른 아이는 어머니가 속이 상함을 걱정한다. 둘중 누가 건강한 인격일까? 두번째 아이는 성숙하고 속이 깊어 보이지만 첫번째 아이가 정신적으로 건강하다. 첫째 아이는 독립적으로 자기 인생을 살고 자신이 중심이다 두번째 아이는 어머니의 인생을 산다. 자신이 행복해야 한다. 누군가를 위해 사는 인생은 건강하지 않은 왜곡된 삶이다. 많은 경우 결혼전까지 문제로 드러나지 않는다. 하지만 결혼 상대가 결정되고 부터 비극은 시작된다 (박수홍을 봐라 결혼 전 얼마나 애틋한 가족이었는가). 안타깝게도 그녀의 두 아이는 엄마의 행복을 위한 삶을 살도록 개스 라이팅 당하고 구조화 되었다.


nature3.jpg


그녀는 외국에 살면서도 직장이 없이 한국 부모님께 지원을 받았는데 한국에 형제가 있음에도 부모를 모시는건 외국에 사는 그녀 몫이다. 이 분 또한 게스 라이팅 당한 걸 수도 있다. 왜곡된 관계는 대물림 된다 (내가 아이를 갖지 않은 이유다). 문제는 두 딸을 자신의 행복을 위한 말로 사용한다. 아이는 아이 다워야 한다. 두 딸의 인생 목적은 불균형 스럽고 또래 나이 답지 않게 그들 어머니의 기뿜만을 위해 존재 했다. 꿈이 모냐고 묻자 엄마를 행복하게 해 드릴 계획들만 가득했다. 세상은 내가 선택하고 내가 변화의 주체일때 행복해 진다. 다른 사람의 행복을 위해 사는건 자신의 삶의 주인됨을 포기하는 거다. 부모의 입장에도 마찬가지다 자식의 행복이 내 행복이 될 수도 있으나 궁긍적으로 자신이 행복해야 자식한테도 그 행복을 물려 줄 수 있다. 누군가를 희생 시키는 행복은 그 누군가에겐 불행이다. 나 자신의 이야기가 없는 이들은 남의 이야기로 자신의 존재를 확인한다.


tree.jpg


이 두딸의 어머니는 지속적으로 결혼은 늦게 하면 할 수록 좋고 안해도 상관 없다 말한다. 내 머리속에 종이 울렸다. 내 어머니도 그랬다. 내 결혼을 적극적으로 반대 하셧다. 늘 상대를 문제 삼는듯 햇지만 결국 개달았다 어머니는 내 결혼 자체를 원하지 않으셨다는 걸. 이제 본격적으로 나의 나르시스트 어머니 이야기를 하자 앞으로의 스토리가 다소 충격적일 수 있으나 팩트만을 이야기 하겠다 생각만으로도 힘들어 진다. 하지만 누군가에게는 내가 가는 길이 편한 아스팔트 길이 되기를 바라며 글을 올린다. 살다 보면 상처가 깊어도 이유가 분명하면 점이 절 온다 하지만 사소하더라도 이유가 분명치 않으면 고민이 된다. 원인을 몰라서다. 내 여전히 독립적이지 않을 지 모르는 자아가 삶의 파도를 이겨 내는 순간 순간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내 인격의 내제한 모순을 거두고 이론과 실천의 괴리가 사람이 되어 걸어 다니는 발자취를 조금이라도 줄여 보는 작업일 거다 그 시작은 솔직함일거다.


어머니여 자식들이여 두려움을 두려워 하지 말자 나는 두렵다고 말 하는 순간 두려워 하는 나도를 만난다 두려움의 친구, 두려움을 공유하는 관계가 만들어 진다. 나와 어머니는 한쪽의 져주는 척과 한쪽의 이기는 척 역할 배분을 못했다. 어머니는 자신의 겸손을 드러내기 위해 나를 깍아 내는 일에 능숙하셨다. 그 겸손이 누군가에겐 결손이 되어 살게 했다는 것을 모른체.


"타인이 나를 노예로 만들었을지 모른다 해도 나 자신을 쥐어 짜서 내 안의 노예 근성을 한방울 한 방울 뽑아 내야 하는건 바로 나 였다" 끝나지 않은 일, 비비언 고닉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나를 전시하는 박물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