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란 누군지도 모르는 세상 사람들에게 호소하는 것이다.
문학적 사랑의 관점에서 난 게이였다. 첫사랑은 헤밍웨이였고 다음은 무라카미 하루키였다. 그 후 성 정체성을 다시 찾기까지 즉 한강 작가를 만나기 까지 20년이 흘렀다. 노벨상 작가 책을 한글로 읽는 행복과 내 성 정체성도 찾았다. 문학적 성 정체성에 다소 균열은 있었으나 완전히 분열되지 않았었다. 여전히 헤밍웨이 문체의 세련됨과 하루끼의 참을 수 없이 투명한 명랑한 문장을 사랑하지만 한강의 빛과 물질에 관한 이론이나 시간의 지평선에서 영향을 주고받는 사랑도 좋다. 그녀는 내게 영향을 미쳤다. 사람이 주고받는 영향은 생각보다 크다. 소멸하면서도 흐트러짐이 없는 영향. 창에 달라 붙은 눈은 작은 물발울이 되어 마음을 적시고 내려 쌓인 눈은 세상에 하얀 칠을 한다. 사라지는건 없다 사고는 전염되고 사랑이 오염되기도 하지만 나는 나대로 그녀는 여전히 그녀인 체로 살아간다.
무라카미를 사랑하기 전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를 사랑했다. 노인과 소년은 함깨 낚시를 하던 어부다. 나이를 초월해 인생의 깊이와 아무 상관 없는 어부의 길을 가는 두 사람 대화가 좋았다. 서툰 노인의 낚시 실력으로 아무 소득이 없는 아이 아버지가 아이를 데려간 후 얼마의 돈을 벌어 온 소년이 노인을 찾았다.
"할아버지 돈을 좀 벌었왔어요 오늘은 맥주를 좀 사드릴까해서요" 노인은 말한다
"그래? 알았다구. 같은 어부의 호의를 거절할 이유가 없지! 가자고"
소년을 어부로 인정하는 꼰대 같지 않은 노인의 세련됨이 좋았다. 두번째 사랑은 무라카미 하루키였는데 어느날 그의 단편집에서 그가 헤밍웨이의 영향을 받았다는 인터뷰에 감동했다 마치 베스트 프렌드로 각각 알고 지내던 두 사람이 알고 보니 서로가 베스트 프렌드였다는걸 알게된 기쁨이었다.
위대한 게츠비의 작가 스콧 피츠 제랄드는 헤밍웨이 만큼 하루끼가 사랑하던 작가다. 피츠 제랄드는 무명이던 헤밍웨이를 유명 편집자에게 소개해 그를 유명 작가의 반열에 올려 놓았다 하지만 이후 피츠 제랄드가 영혼을 끌어 모았다는 작품 "밤은 부드러워"에 대해 헤밍웨이가 혹평을 한것도 모자라 신랄할 편지를 써서 보내 제럴드를 슬프게 했다.
" 나쁘진 않지만 자기 연민이 많고 훌쩍 거리는 느끼이다"
제랄드는 내상을 입었고 자신감을 잃어 갔다 자신이 발굴한 작가로 부터의 실랄한 비판을 들었으니 안 그렇겠는가 피처 제랄드는 이렇게 대응했다.
"어니스트는 아무래도 사다리 꼭대기에 있는 사람에게 손을 내미는게 특기인것 같다"
이 두 사람의 이야기를 하루끼는 그의 단편집 모음 "잡문집"에 소개한다 우리는 시간이 흐른다고 착각하기 쉽지만 사실 시간은 고정되어 있고 우리가 변한다. 후에 헤밍웨이는 "나중에 다시 읽어 보니 처음보다 헐씬 좋았다"라고 그를 위로 했고 사실 밤은 부드러워는 지금도 서점에서 베스트 셀러다. 나는 최근에 무라까미 하루끼가 부뤄워할만걸 나도 갖고 있다는걸 알았다. 그는 뉴욕을 그리워 한다 물론 마라톤 중독자인 하루끼가 뉴욕에서 열리는 풀코스 마라톤에 참여 하기 위해서긴 하지만 난 뉴욕에 산다. 뉴욕 뉴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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