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 said_
슬금슬금 시작되고 있음을 감지한다. 얽힌 실타래들이 뭉쳐 어느새 단단한 털 뭉치가 되듯이, 내 맘속에서도 온갖 감정적 부스러기들이 뭉쳐 이제 제법 묵직한 덩어리를 만들어내기 시작한다. 평소엔 대수롭지 않게 여겼던 모든 상황에 날이 서기 시작하고, 급기야는 상대에게 무시무시한 폭언의 난도질도 서슴지 않는다. 몸은 두드려 맞은 듯 여기저기 들쑤셔대기 시작하고, 급기야는 나에게 그로테스크한 가학의 칼부림도 서슴지 않는다.
언젠가 사지를 잘라버리고 한 일주일쯤 동면상태에 있다가 깨어났으면 하고 바란 적이 있다. 아니면 몸이 꿈틀거릴 때마다 한 99개쯤 못을 박아버리면 어떨까. 그것도 아니면 이 시간이 다가오는 낌새를 느끼는 즉시, 몸에서 비틀어 뽑아버린 머리를 더는 찾을 수 없는 곳으로 발사시켜 버리는 상상을 했던 적도 있다. 뜨겁고 찐득찐득한 피를 뿜으며 날아가다가 차례대로 두 눈알과 뇌까지 추진체로 분리된다면 더 환상적일 것이라고 생각하며 낄낄거리고 있는 나를 발견하고 소름이 확 끼친 적도 있다.
주기적으로 찾아오는 몸과 마음의 변화. 세상은 이것을 PMS(월경전 증후군)라고 부른다.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순간에도 난 변화의 흐름 속에서 동요하고 있다. 잊을만하면 나의 몸과 마음에 찾아오는 이러한 고통과 번민의 시간들을 ‘호르몬의 장난’이라고 칭하자니 왠지 내가 너무 나약해 보여 썩 마음에 들진 않지만, 가소로운 양심의 가책이 부른 죄책의 나락에 빠질 때면 ‘이 모든 것은 내 탓이 아닌 호르몬 탓’이라고 치부하며 끝을 알 수 없는 그곳에서 빠져나오길 희망할 수 있는 유일한 동아줄이 되어주기도 한다. 주저리주저리 포장해봤자 난 언제 터질지 모를 시한폭탄일 뿐이다. 여행 중이라고 달라질 것은 없었다. 아니 오히려 예측 불가능한 여러 변수들의 집합체라고 할 수 있을 그 시간 동안, 나는 더욱 예민할 수밖에 없었고, 더욱 극단적이고 돌발적일 수밖에 없었다.
이러쿵저러쿵해도 모두 비겁한 변명일 테다. 촘촘한 가시 투성이었던 난 무방비 상태였던 9에게 깊은 상처를 주었다. 그때의 상처들은 아물었겠지만, 여전히 남아있는 그 흔적들은 몹쓸 트라우마가 되었을 테고 이따금씩 9를 괴롭히는 기폭제로 탈바꿈하는 듯했다. 종종 9는 말하곤 한다.
“그때마다 너는 너가 아닌 것 같아. 진짜 고약해.”라고.
‘설상가상’은 눈 위에 서리가 덮인다는 뜻으로, 난처하고 불행한 일이 잇달아 일어나는 것을 말한다. 그리고 ‘설상구상’은 눈 위에 9가 된서리를 맞는다는 뜻으로, 도저히 납득 불가능하고 때론 공포스러운 일에 9가 연달아 무너지는 것을 의미한다. 이제 와서 돌이켜보면 그때 9는 나로 인해 ‘설상구상’의 상태였지는 않았을까 추측만 해볼 뿐이다. 분명 나의 기억은 9의 기억과는 다를 것이다. 그것도 아주 많이. 그때의 나는 내가 아니니까.
파리에서 맞는 첫 아침에 나는 마냥 피곤했다. 스페인에 두고 온 300파운드의 망령이 나의 밤을 헤집어 놓아서 그랬는지, 아니면 그저 낯선 환경이라 그랬는지 잠도 잘 못 자고 마냥 피곤할 뿐이었다. 일어나자마자 하품을 연신 해 대며, 무의식적으로 미간을 찌푸렸다. 나의 심연에선 나도 알 수 없는 불만이 일렁거리고 있었다. 슬슬 전조가 시작되었지만, 나는 그저 여행에서 자연스레 생길 수 있는 피로라고 느꼈고, 대수롭지 않게 넘겨 버렸다. 이때 자각했더라면, 이런저런 불상사를 막을 수 있었을 텐데… ‘후회’라는 말은 뼈아프지만, 후회스러운 경험을 하게 되면 그제야 왜 꼭 그 후회라는 말이 필요한지 절실히 느끼게 된다.
날씨는 흐리지만 비는 내리지 않았고 간간히 햇살도 비친다. 무턱대고 나갔다가 너무 추워서 다시 집으로 돌아와 옷을 껴입고 나왔다. 9는 지난번 혼자 파리에 왔을 때도 그렇게 춥고 외로웠다며 여전히 파리가 맞지 않는다고 중얼거렸다. 나는 대꾸하지 않았다. 마치 맛있게 차려진 밥상 앞에 앉아 신나 있는데, 상대가 맛없어 보인다고 불평하면 밥맛이 똑 떨어지듯, 9가 툭 뱉어버린 말은 막 생애 첫 파리 여행을 시작하려는 내게 그날의 날씨보다 더 차가운 물을 끼얹는 것 같았다.
그래도 난 노력했다. 즐거워지려고. 그 노력 끝에 파리가 내게 준 세 가지 기쁨 중 첫 번째를 드디어 만나게 되었다. 루브르 박물관에 도착했을 때는 말 그대로 실감이 나지 않았다. 작가 댄 브라운의 소설 ‘다빈치 코드’의 마지막 부분에서 예수의 성배가 숨겨진 그곳의 묘사는 내게 신비로움 그 자체를 선사했었다. 상상 속에서만 존재하던 그 유리 피라미드가 내 눈앞에 있다니! 흥분해서 사진을 찍다가 바닥에 넘어지기도 했으나 그저 즐거웠다. 걸어가면서 pont des arts(퐁데자르) 다리와 pont neuf(퐁네프) 다리도 보고 시테 지역을 거쳐 마레지구 구경을 했다. 흥미로운 빈티지 옷가게와 멋진 카페가 엄청 많았다. 몇몇 상점에 들어가 보기도 했지만, 9와 나는 금세 너무 피곤하고 힘들어졌다. 9는 또 역시 파리는 내게 이런 곳이라며 3번은 절대 안 오겠다면서 중얼거렸다. 거슬렸다. 무언가 불쾌하게 파닥거리더니 욱하고 올라오려는 걸 나는 애써 억눌렀다. 단언컨대, 내게 일말의 기력이라도 남아있었다면 분명히 나는 터져버렸을 것이다. 다행히 피곤에 쩔은 나는 집에 가는 내내 지하철에서 졸음과의 사투를 벌여야 했고, 그렇게 위기는 무사히 지나가는 듯했다.
다음 날, 느지막이 일어나서 다시 루브르로 향했다. 어제 루브르의 겉만 핥았다면 오늘은 속을 진정으로 음미하는 날이다. 루브르에 들어가자마자 역 피라미드 조형이 우리를 맞았다. 루브르를 꼼꼼하게 보고 싶다는 욕심에 오디오 가이드를 빌렸지만, 결과적으로 실패였다. 사용법이 어색해서 헤매느라 정작 작품 감상에 방해가 되었다. 스마트폰과 이어폰 그리고 오디오 가이드의 줄이 꼬이면서 내 동선도 꼬였다. 앞부분에 나왔던 ‘가나의 결혼식과 늙은 어부’에 대한 설명만이 기억난다. 그래도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그림들을 쌩눈으로 감상했던 그 순간들은 내게 신선한 충격으로 남아있다. 드농관으로 진입했다. 드디어 모나리자다! 모나리자 근처에는 관광객이 언제나 바글바글하다. 좀 더 가까이 보고 싶어 한걸음 한걸음 인내심 있게 기다리며 나아갔다. 드디어 정면에서 그녀를 본다. 아니 그를 보는 걸까? 형언할 수 없는 미묘한 기운이 풍긴다. 평면에서 탈피한 듯한 입체적이고 그윽한 존재감. 은밀하면서도 의뭉스러운 미소. 잠시 모나리자에게 홀린 듯했다. 간간히 통증으로 신호를 보내는 몸과 점점 더 예민해지는 마음에서 잠시 벗어날 수 있었다.
사람들이 점차 더 많아지고 앞줄에 서 있는 내게도 압박감이 느껴질 무렵, 슬그머니 빠져나와 리슐리외관과 설리관으로 향했다. 상대적으로 사람이 적어서 작품들을 훨씬 더 여유롭게 감상할 수 있었다. 그림들도 정말 매력적이었지만 <비너스>나 <승리의 여신, 니케>와 같은 조각상들은 말 그대로 조각같이 아름다웠다. 루브르에서 만난 모든 예술작품들은 시공간을 뛰어넘어 영험한 기운을 뿜어내는 듯했다.
압도적인 그 기운이 흐르면서 차고 넘쳐 익사할 것 같아질 때쯤, 그래도 정말 좋겠다고 느껴질 때쯤, 루브르를 나와 파리가 내게 준 두 번째 기쁨인 튈를리 정원으로 향했다. 생각했던 것보다 규모가 크고 예뻤으며 편안했다. 분수 주변의 아무렇게나 놓인 녹색 벤치에 거의 누워(일반 의자와 거의 누울 수 있는 의자 2종류가 있었다) 잠시 ‘쉼’을 즐겼다. 분수에서 솟아올랐던 물줄기가 더 작은 물방울로 쪼개지며 산발적으로 흩뿌려지고, 쨍한 햇살을 받아 반짝반짝 빛나는 미세 입자들은 마치 춤을 추는 듯했다. 부디 이 거룩한 고요 속의 충만한 여유로움이 내 안에 둥지를 틀어 주기를, 그리하여 동요하는 나의 몸과 마음에 안식과 평화가 되어주기를.
파리의 야경을 즐기기에 딱 좋은 날이었다. 가는 길에 라데팡스 역에서 와인 1병도 사고 원래 있던 칩도 챙겼다. 개선문도 보고 청담동과 흡사한 샹젤리제 거리도 걸어보며 바토무슈 선착장에 다다랐다. 유람선에 올랐을 때, 운이 좋게도 이미 입장한 다른 사람들보다 앞자리에 앉을 수 있었다. 출발하면서 계속 지나치는 주요 건물들에 대한 안내방송이 이어졌고, 9와 나는 가져온 칩을 게걸스럽게 먹으면서 와인을 홀짝거렸다. 뒤에 앉은 미국인 커플과 건배도 했다.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파리 야경을 감상하는 유람선은 한 번쯤은 타볼 만한 것 같다. 갑자기 내린 소나기 때문에 축축한 공기가 에펠탑을 감쌌고, 사진 속 우리는 비에 젖은 생쥐꼴이었지만 봐줄 만했다. 9가 예전에 혼자 파리에 왔을 때도 셀카만 찍어대서 속상했는데, 왜 자기 사진은 많이 안 찍어주냐면서 볼멘소리를 했다. 내가 너무 소홀했나 싶어서 원하는 대로 심혈을 기울여 찍어주었다. 슬슬 귀찮고 힘이 들기 시작했지만 참았다. 여기까진 꽤 괜찮았다. 오늘은 이렇게 위기 없이 잘 보내나 싶었다. 하지만 9와 나는 집에 오는 길에 서로 감정이 상했다.
돌이켜보면 정말 별거 아닌 것 같은데, 늘 화근은 생각지 못한 곳에서 생긴다. 결국 난 폭발했고, 감정의 잔해들은 고스란히 9에게 박혀 버렸을 것이다. 그때 나의 몸은 이미 치사량을 넘은 피로와 짜증에 점령당한 상태였고, 동지를 잃은 나의 머리는 자기라도 살겠다며 - 마치 마법사가 공격당하는 자신의 성을 지키기 위해 강력한 주문으로 방어막을 씌우듯 - 화염이 이글거리는 방어막으로 무장한 채 모든 공격을 막아내는 동시에 그 모든 공격에 더 극심한 충격을 장착하여 상대에게 되돌려주고 있었다. 무방비 상태였던 9는 아마 더 큰 상처를 입을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집에 돌아와서도 우리는 내내 서먹서먹했다. 이 모든 상황을 무시하고 싶으면서도 죄책감에 시달리는 내가 견디기 힘들었다. 판단이 흐려지고 있었다. 빌어먹을. 일단 내겐 시간이 필요했다. 간신히 안간힘을 짜내어 9에게 말했다. 내일은 서로 각자의 여행을 해보자고. 그렇게 생각할 시간을 가져보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