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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39, 2부 04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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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흔다흔넷 Oct 30. 2022

나의 기억 (2)

9 said

>> 나의 기억 (1)에 이어    


아무리 “내면의 악”이 시킨 말이었다 한들 본래 심성은 착한 Y는 (끙) 자신이 내뱉은 말에 밤새 스스로를 자책하며 그 속도 편하지 않았을 것이다. 졸지에 난데없이 할큄을 당한 나도 편히 잘 순 없었다. 서로 뒤척이며 자는 둥 마는 둥 하다보니 다음 날 우리 둘 다 컨디션이 그리 좋지 못했다. 그래서 오늘 하루는 서로 떨어져 각자의 시간을 보내기로 했다. Y는 내가 자기 옆에 있다간 계속 상처만 줄 거 같다며 먼저 이같은 제안을 했다. 난 그 제안에 괜히 또 섭섭하고… ‘파리’는 정말 나랑 안 맞고… 이래저래 나는 2년 전에 이어 또다시 ‘파리’에서 혼자만의 시간을 가져야 했다. 이왕 이렇게 된거 기왕이면 기분 좋게 다니자 싶은 마음에 캐리어에서 가장 멋있는 옷을 꺼내 입고 Y보다 먼저 숙소를 나왔다. 



    제일 먼저 ‘마레 지구’로 향했다. 한번쯤 이런 이른 시간에 와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역시 평소보다 사람이 별로 없어 거리는 제법 한산했고 혼자라는 생각은 어느덧 섭섭함에서 자유로움으로 조금씩 변했다. 내 ‘파리 트라우마'는 내가 극복해 보이겠다는 의지도 솟구쳐 올랐다. 가장 빈티지해 보이는 작은 노천 카페에 들어가 에스프레소 한 잔을 시켜 길 가 테이블에 앉아 출근 길 사람들을 구경했다. 어제의 기분을 그림으로, 글로 남겨 보았다. 혼자 있을 때 할 수 있는 일을 해보자 싶은 마음에 열심히 드로잉을 하고 있는데, 지나가던 꼬마가 나를 쳐다보며 손 인사를 한다. 나도 반갑게 인사를 해주었다. 

“굿모닝”

“......”

아 맞다. 여기 프랑스지. 미안;;

‘마레 지구’에는 화랑이나 부티크들도 많아 윈도우 쇼핑을 하는 것만으로도 예술적 감성이 충전되는 듯 하다. 물론 100% 내 성향의 갬성은 아니지만 그래도 보는 재미가 있었다. 골목 모퉁이 어느 작은 빵집에 들러 리얼 “파리 바게트”를 사서 ‘파리’에서 가장 오래되었다는 보주 광장과 근처에 있는 빅토르 위고의 집, 프랑스 혁명의 도화선이 된 바스티유 광장도 가 보았다. ‘파리'가 나랑은 안 맞긴 해도 그래도 나름 2번째 와 본 곳이라고 거리들이 편했다. 갑자기 날씨가 좋아져 ‘콩코르드 광장’ 분수대 앞에 자리를 잡고 앉아 바게트를 먹고 있는데 아이폰에서 갑자기 이소라의 ‘바람이 분다’가 또 다시 흘러 나온다. 우연치곤 정말 신기한 일이다.


‘그대는 내가 아니다. 추억은 다르게 적힌다.’


이번엔 이 노랫말이 유독 꽂혔다. 내가 그렇게 걸리적 거리는 애였나. 난 지금까지 여행이 다 좋았다고 생각했는데 Y는 그렇게 별로였나, 그동안 속으로 얼마나 욕했을까. 갑자기 내면의 에고가 올라와 나를 괴롭힌다. 바게트를 씹으며 어제 밤 Y가 한 말을 곱씹다 보니 나 스스로 점점 내면의 동굴로 파고 들어갔고, 조금 전까지만 해도 자유롭고 가볍던 기분은 한도 끝도 없이 무거워져 갔다. 


얼마쯤 지났을까. 그렇게 이런 저런 생각에 빠져 하염없이 걷다보니 어느덧 ‘노트르담 드 파리 대성당’까지 오게 되었다. 여행 중 다녀 본 수많은 성당 가운데 가장 기억에 남는 성당을 꼽자면 ‘노트르담 성당’이다. ‘노트르담 성당'은 유난히 편하고 나랑 잘 맞는다는 기분이 든다. 좋았던 만큼 이번엔 Y와 같이 오고 싶었는데... 안타까운 마음을 안고 성당 안으로 들어갔다. 입구에서 어느 노신부님 한 분이 다가 오시더니 혼자 왔냐, 어디서 왔냐 묻더니 한국어로 된 가이드 파일 한 권을 건네 주신다. 돈을 내야 하는 건가 싶어 물어보니 그냥 편히 보고 놓고 가란다. 그러면서 나를 위해 성호를 그어 주신다. ‘내가 외로워 보였나, 신부님 눈에 내 마음이 불편한게 보였나’ 왠지 신부님께 내 마음을 들킨 것 같아 괜시리 뭉클해졌다. 


마음은 무거웠지만 그래도 신부님이 주신 공짜 가이드 북 덕분에 2년 전 둘러볼 때와 다르게 찬찬히 성당 외벽 스테인드글라스와 내부 벽화, 설명글을 비교해 가며 열심히 둘러 보았다. 그 가운데 ‘장미의 창’이라 불리우는 스테인드글라스 하나가 내 마음을 끌어 당겼고, 그 앞에서 난 한동안 가만히 서 있었다. 처음엔 아무 생각 없다가도 어느새 내 마음은 또 Y도 같이 왔으면 좋았을걸 하는 생각으로 가득 찼다. 왠지 Y도 이것을 좋아 했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렇게 ‘노트르담 성당’에서 뜻밖의 위로를 받고 성당 밖을 나와 길 건너 ‘셰익스피어&컴퍼니’라는 서점에 들렀다. 워낙 유명한 서점이기도 하고 영화 ‘미드 나잇 인 파리’에도 나온 곳이라 작은 서점 안은 역시나 관광객들로 가득했다. 내가 이 곳을 좋아하는 이유는 오래된 서점 특유의 냄새를 느낄 수 있을 뿐 아니라 내가 느끼는 ‘파리’의 진짜 낭만이 이 곳에만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서점 입구에 써 있는 글귀가 기억에 남아 다시 보고 싶었다. 


 “위장한 천사일지 모르니, 낯선 이들을 불친절하게 대하지 말라”

 “Be not inhospitable to strangers lest they be angel in disguise”


비좁은 책장들 사이로 이런 저런 책들을 둘러 보는데 2층 구석진 공간에서 뜻밖에 Y를 만났다. ‘Y는 어쩌면 위장한 악마일지 모르니 친절히 대하면 안돼.’ 하지만 내 다짐과 다르게 너무도 반가웠고, 한편으론 아찔하기도 했다. 어떻게 인사를 해야 할지, 아는 척을 해야 할지 몰라 주춤거리고 있는데 Y가 먼저 삐죽 말을 건다.


 “너 여기서 왠지 만날 거 같았어.”

 “어.. 나도..”




반나절 만에 만난 Y라 솔직히 반가웠다. 이제 혼자 여행은 충분히 됐으니 같이 다니자고, ‘노트르담 성당’에 멋진 벽화가 있는데 그거 보러 같이 가보자고 말하고 싶었지만 어제 밤 Y가 휘두른 말들에 난도질 당한 내 마음이 아직 아물지 않은 상태라 그냥 인사만 하고는 마치 난 다음 스케쥴이라도 있는 사람처럼 서점 밖으로 먼저 나와 버렸다. 이렇게 쓰니 마치 내가 뒷끝 오지는 사람 같이 보이는데 그땐 어쩔 수 없었다. 내가 막 걸리적 거리고 귀찮다는데 어떻게 같이 있자고 해. 힝… 여하튼 그렇게 서점 밖을 나왔지만 사실 딱히 가야 할 곳이 있었던 건 아니었다. 그냥 버스와 지하철을 타고 파리 시내 외곽 쪽을 돌며 기억을 더듬어 2년 전 묵었던 숙소 근처도 가 보고 (그 숙소는 4존에 있어 시내와는 제법 떨어져 있는 한산한 동네다.) 시내 골목 골목 여기 저기를 정처 없이 부지런히 걸어다니기만 했다. 하필 우산도 없어 갑자기 또 내리는 비를 주룩 주룩 맞아가며 처량하게 쏘다녔다. 


그렇게 저녁 늦게 숙소에 와 보니 Y는 벌써 와서 씻고 일기를 쓰고 있었다. 아침에 나보다 늦게 나왔던 Y는 다행히 우산을 챙겨 비를 맞지 않았다고 한다. 아침과 다르게 기분이 좋아 보이던 Y는 벼르고 벼르던 ‘파리 마카롱’을 드디어 먹어 봤다면서 역시나 제일 먼저 먹은 거 자랑을 한다. 왜 갑자기 친한척이지;; 나는 잠도 잘 못 잔데다 비까지 맞아 상태가 안 좋은데 Y는 오늘 하루 뭐가 그리도 즐거웠는지 하루 종일 있었던 일들을 옆에서 종알종알거린다. 하루종일 신경 쓰며 다녔던 나와는 다르게 Y는 혼자 여행이 즐거웠나보다. 옛 말에 맞은 놈이 발 뻗고 잔다는데 저 녀석은 때린 놈인 주제에 발 뻗고 잘 놈이다. 어느 정도 자아가 강한건 알았지만 이 정도일 줄이야. 슬쩍 얼굴을 보니 어제까지 뽀루퉁 자리 잡고 있던 코 옆에 뽀루지도 사라지고, 자꾸만 실없이 웃는 모양새가 - Y는 자기가 잘 못 한 일이 있으면 괜히 실없이 웃는다. - 아무래도 Y의 또 다른 하이드가 드디어 가신 모양이다. 아, 그 분이 가시고 이 분이 오셨구나. 여자들은 알 것이다. PMS가 끝나면 누가 오시는지를... 




역시나 다음날부터 Y는 전혀 다른 사람이 되어 버렸다. 세상 순둥하고 세상 자애로울 수가 없다. 정말이지 매번 이럴때면 난 정말 미칠 노릇이다. 그렇게 날 주저 앉히고, 아프고 아픈 말로 찌르던 지난 날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다. 정말이지 매번 이럴때면 어느 장단에 맞춰줘야 할지 도통 모르겠다. 그 중 제일 슬픈 건 자신이 그런 말을 했다는 사실을 기억하지 못한다는 것, 우리가 왜 싸웠는지 이유도 모른다는 것, 그리고 그 무엇보다 그래서 덕분에 매번 난 제대로 된 사과를 받아보지 못 한다는 것... 그게 가장 슬프다.



Y의 진상과 꼬장을 한두번 겪은 건 아니지만 그래도 나도 사람인지라 그런 막말을 듣고 마냥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웃을 수 만은 없었다. 당분간 Y를 조심스럽게 대했다. 남들이 보기에 우리가 사이 좋은 친구처럼 보였었겠지만 그 사이 우리 둘만 느낄 수 있는 묘하고 어색한 기류는 어쩔 수 없는 것이었다. 그 날 이후 열심히 ‘몽마르뜨’니, ‘에펠탑’이니, ‘생투앙 벼룩 시장’이니, ‘파리’ 최고의 커피 집도 발견해 가면서 재미지게 여기 저기 많이도 다녔지만 난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사실 기억이 나지 않는다기보다 계속 마음이 무거웠어서 별로 기억하고 싶지 않다고 말하는 편이 더 맞겠다. 호기롭게 나의 ‘파리 트라우마'를 극복 시켜 주겠다던 Y는 자의든, 타의든, 호르몬 때문이든, 하이드 때문이든 뭐가 되었든 되려 내게 더 강한 트라우마를 안겨 준 셈이 되었다.



빨리 떠나고 싶었던 ‘파리’를 떠나던 날 하늘에선 장대 같은 비가 쏟아졌다.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새까맣게 쏟아지는 비를 보며 ‘그래, 마지막까지 나한테 이러는구나.’ 싶어 진절머리가 났다. Y와 나는 아직은 계속 어색한 상태라 안 그래도 서로 조심하고 있는데 비까지 쏟아지니 불편한 것이 이만 저만이 아니었다. 장대비를 맞으며 트램 역까지 갔다가 트램을 타고 다시 지하철을 2번이나 갈아타고 서야 ‘파리 북역’에 도착했다. 2년 전까지만 해도 얼룩진 시트와 오줌 지린 냄새, 일일이 수동으로 문을 열어야 했던 지하철은 신식으로 싹 바뀌어 서울 지하철만큼이나 쾌적했다. 2년 전까지만 해도 낡고 지저분하던 북역은 새로 리뉴얼을 해서 깨끗하게 잘 변해 있었다. 2년 전 내가 갈때만 해도 4시간이나 연착이 되어 개 고생을 한 기억에 각오를 단단히 하고 있었던 ‘브뤼셀’행 열차도 연착 없이 제 시간에 맞춰 잘 왔다. 전날 밤 Y에게 파리 지하철과 북역은 엄청 더럽고, 기차도 더럽게 늦게 온다고 잔뜩 겁을 줬었는데 왠걸 졸지에 난 거짓말쟁이가 되었다. 이쯤되면 이제 내가 왜 ‘파리'랑 안 맞는다고 하는지 충분히 설득이 되겠지. 그냥 우린 안 맞는거다. 그래도 누군가에겐 여전히 낭만의 도시임은 분명할테니 더 이상 욕은 안하겠다. 잘 있어라 ‘파리’야. 그동안 더러웠고 다시 보진 말자. 

 



    ‘파리'를 떠나 도착한 ‘브뤼셀’에 머무는 3박 4일 동안 나는 감기 몸살로 고생을 했다. 아마 지난 번 혼자 비를 맞고 다닌데다가 Y와의 계속되는 미묘한 어색함에 기분이 가라 앉아 있는 것도 어느 정도 컨디션에 영향을 주는 듯 했다. 이렇게 정신적으로 좋지 못할 때는 악몽을 자주 꾸는 편인데 ‘브뤼셀’에 있는 동안 계속해서 악몽을 꾸느라 살도 점점 빠져 갔다. ‘브뤼셀’ 시내는 우리가 오기 한 달 전 테러의 영향으로 경비도 삼엄하고, 들어오는 교통 수단들도 많이 취소되고 줄어들어 관광객도 별로 없어 전반적으로 차분하고 조용했다. 오히려 그런 분위기가 지금의 나의 기분과 잘 맞아 나쁘지는 않았다. 반면 그 분이 가시고 다시 마음의 평화를 되찾은 Y는 ‘파리’에서 와는 확연히 다른 ‘브뤼셀'의 흥을 장착하셨다. 착한 말투도 함께 돌아왔다. 기운이 없는 나를 위해 유기농 맛집도 검색해 데려가 주고 발걸음도 나와 맞춰 천천히 걸어주었다. 다시 평소처럼 물어볼 상황이 생기면 알아서 척척 해결해 왔다. 게다가 평상시엔 잘 먹지도 않는 초콜렛이며 (하긴 ‘벨기에’에 왔으니 초콜렛은 먹어줘야겠지만) 온갖 과일과 시럽으로 얼룩진 와플이며 (하긴 ‘벨기에'에 왔으니 와플은 먹어줘야겠지만) 설령 내가 입맛이 없다 해도 홀로 꿋꿋히 삼시 세끼를 꼬박 꼬박 챙겨드시는게 식욕도 다시 돌아왔다. 

어느날은 ‘브뤼셀' 시내에 있는 악기 박물관을 구경하고 나오는데 ‘스페인'에서 기다리던 전화가 걸려 왔다. Y는 긴장한 듯한 표정으로 제법 오랫 동안 통화를 하더니 보살 같은 표정으로 전화를 끊는 것이다.

 

“왜? 뭐래? 찾았대?”

 “아니. 없대. 아무래도 못 찾을거 같애. 어쩔수 없지 뭐"


아까의 그 보살 같은 표정은 지난번 ‘파리'에서 쓰던 쿨 가면과 달랐다. 이번엔 찐이었다. 끝내 300 파운드는 찾지 못하게 되었지만 Y는 이번엔 정말 300 파운드를 놓아주는 듯 했다. Y의 PMS가 끝난 것은 정말 다행이었다.

 


인간은 망각의 동물이다. 인간은 본성상 망각하는 동물인 것이다. 망각은 결코 이성능력의 부족이나 타성력이 아니라, 삶에 필요하고 삶을 가능하게 하는 힘이다. 그것이 의식 이전에 발생하는 욕구나 충동들의 모순과 대립의 과정들에 대한 정보를 차단할 뿐만 아니라,



프로이트가 ‘억압’이라는 단어로 말했던 것처럼 고통스러운 기억을 밀어내어 정신적 질서와 안정을 찾게 하는 기능을 하기 때문이다. 이 장치에 의해 인간은 행복감과 건강함을 느끼게 된다. 이러한 자연적이고도 동물적인 망각의 힘은 '의지의 기억'에 의해 제거된다.

[니체 ‘도덕의 계보’ 중에서]



인간은 망각의 동물이다. Y는 동물이었다. ‘파리'에서의 Y는 기분이 태도가 되어 마치 동물처럼 굴었고, ‘브뤼셀'에서의 Y는 망각의 동물처럼 그것들을 죄다 잊었다. 여행에서 돌아와서도 서로 달랐던 기억들은, 그래 어쩌면 Y가 잊은 그 기억들은 상처 받은 나보다 오히려 본인이 더 아프고 쓰라린 기억이었기에 의지의 기억에 의해 제거된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렇다면 이제 나도 그만 이 글을 마지막으로 ‘파리’에서의 기억은 내려 놓아야 겠다. 혼자 갔었던 불쾌했던 ‘파리'도, 둘이 갔었던 외로웠던 ‘파리'도 모두 도려내야겠다. 그렇게 내가 잊어야 앞으로 계속 ‘파리'를, ‘브뤼셀'을 그리고 Y를 더 좋아해 줄 수 있을 것 같으니까. 추억은 원래 다르게 적히는 법이고, 기억은 결국 타인의 것이니까. (71억은 내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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